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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Jan 10. 2024

온톨로지의 기원

Origin of Ontology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책 중에 가장 어렵고 그 어떠한 철학책도 형이상학만큼 중요한 책은 없다고 할 정도이다. 형이상학은 ’ 존재란 무엇인가?’, ‘실재의 본성은 무엇인가?’, ‘만물의 제일원리는 있는가?’와 같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존재 자체로서의 존재에 대한 고찰을 통해 존재의 본성에 관하여 모든 것을 통합한 하나의 일관된 관점을 제시하려 한 것이 형이상학으로 존재론(Ontology)이 더 정확한 제목이다. 이와 같은 질문을 다루는 학문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 철학’ 또는 ‘존재를 존재로서 다루는 학문’으로 분류하였다. 모든 것의 가장 위에 있는 철학적 사유를 논함으로 모든 학문의 학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철학적 사유의 끝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이후 형이상학의 의미는 확장되어 인간 의지, 불멸 뜨는 신과 같은 것들에 대한 탐구를 뜻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품은 근본 문제는 만물에 관한 여러 학문이 있을 텐데 이를 총괄하는 하나의 지배적 학문이 존재하는가이다. 이러한 학문의 학문이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세 단계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우선 이를 다루는 형이상학이 학문으로 존재함을 보이는 것으로 이는 모든 것에 공통된 어떤 본성이 있음을 보이는 것과 같다. 다음으로 주제 대상의 본성을 찾는 것이 두 번째 임무이다. 이는 곧 존재에 대한 의문이며 실체 안에서 실체를 실체로 만들어 주는 것을 찾는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실체의 최상위원인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면 종료될 것이다. 이렇게 존재에 관한 논지가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존재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그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사유를 먼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는 논증을 위해서 우선 선대 철학자들의 사유를 언급하고 이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당연히 존재론 이전 철학자들의 사유를 바탕으로 하였고 이를 발전시켜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발전은 매우 창조적이어서 이전의 사유는 뒷받침 정도로만 쓰였다고 할만큼 창의적이다. 선대 철학자들의 사상은 형이상학 제시를 위한 비판의 대상으로 쓰였다는 것을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논지를 관철하기 위해서라도 이전 철학자들의 사유를 정확히 전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남긴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언급된 문헌 중에 형이상학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들 사유의 핵심은 형이상학의 내용에서 주로 기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사상은 만물이 어떤 하나로 구성되었는가, 아니면 다자로 구성되었는가 하는 ‘하나’ 또는 ‘다자(多者)의 문제로 요약된다. 예로 엠페도클레스의 흙, 물, 공기, 불이 사물을 이루는 환원될 수 없는 요소인가 아니면 탈레스의 물처럼 같은 요소의 서로 다른 형태인가를 따졌다. 모든 것에 특성이 있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특성을 가지므로 존재의 본성은 특성이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통 본성이 존재하면 존재하는 것은 본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하나 또는 다자 개념에서 특성 앞에 모든 것은 하나 또는 다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유는 정적인 개념이므로 어떻게 다자가 있고 변화가 있는가의 동적 개념으로 발전한다. 동적 개념을 주된 화두로 내세운 인물은 파르메니데스가 대표적이다.     

 

플라톤은 BC6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사유가 된 존재론의 요약으로 하나는 인정하지만, 다자는 하나와 대응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에 하나가 모여 구성된 다자는 하나를 전제하므로 하나와 대응되는 개념은 무규정적 이자(二者)라고 주장한다. 무규정적 이자란 통일성이 없는 규정되지 않은 다수를 의미한다. 다수를 구성하는데 어떤 규정이 없으므로 다자가 아니라 이자로 고려될 수 있다. 플라톤에 의하면 만물은 일자와 무규정적 이자로 구성한다. 더 나아가 만물이 같은 집합에 속한다고 여겨 만물은 하나의 단일 학문, 즉, 하나의 단일한 앎에 포섭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플라톤은 제 일원리를 앎으로서 만물을 아는 학문의 학문과 제한된 주제의 원리들로 이루어진 개별 학문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데아를 존재의 핵심 사유 대상으로 놓은 것이다. 즉, 하나는 따로 존재하는 이상적 원본인 이데아의 세계이고 소위 무규정적 이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데아의 모상인 감각적인 세계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에 대한 반박을 통하여 플라톤의 존재론적 관점을 의미론적 관점으로의 전환을 지향한다. 즉, 존재란 이데아처럼 우리와 동떨어져 있어 우리의 감각 세계와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온톨로지는 우리 안에 다가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분이다. 그렇다면 과연 존재에 관한 논지를 어떻게 꾸려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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