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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Jan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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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란 우리 생활 곳곳에 있는 모든 것을 존재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특정의 시간에 어느 장소에서 어떤 존재가 있다는 생각을 의미하는 것뿐이다. 마치 우리가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논증하는 것이 생각의 차원이 다른 사유의 대상인 것처럼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증 또한 보통의 생각으로 나올 수 없는 매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존재를 정의하려면 그 방식과 속성을 빠뜨림 없이 망라함은 물론 이들을 체계적으로 기술해야 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19세기 중엽에 멘델레예프는 원자량을 가벼운 것에서 무거운 순으로 나열하여 원소의 주기율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때까지 발견된 원소가 약 60여 종이므로 만약 원소에 규칙성이 있다면 우리는 당시에 미처 발견되지 않은 원소들을 예측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멘델레예프가 예측한 원소들은 차례로 발견되었다. 멘델레예프는 어떻게 원자량을 기준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원소는 각각 수많은 특징적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개개의 원소들은 맛도 다르고 색도 다를 뿐만이 아니라 화학적 반응도 천차만별일 테고 고체, 액체 또는 기체로 있는 것 등 모두 다른 속성을 가진다. 이들 모든 속성을 기준으로 나열해 봤자 규칙은 전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규칙성은 오직 원자량을 기준으로 배열해야만 나타난다. 7개의 원소마다 아래로 성질이 같은 족(family)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로소 원소 전체가 의미 있게 나열할 수 있는 규칙성을 드러낸다. 존재를 논하려면 이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만 주기율표의 경우보다 매우 어렵고 더욱 근본적인 것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존재라는 것 자체가 주는 근본성 때문이다.     

 

존재가 무엇인가를 얘기하기 전에 잠깐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자. 1930년대 사회학자가 문맹인을 대상으로 어떤 실험을 수행하였다. 문맹인 농부에게 망치, 톱, 손도끼 및 통나무 그림을 보여주고 같은 것끼리 나눠보라고 요구했다. 물론 각각은 다르지만, 통나무와 다른 세 개는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통나무는 재료이고 나머지 셋은 재료를 다루는 도구이다. 하지만 농부는 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쓰임새에 따라 나눌 수 있음을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서 망치 등은 구체적 개념이지만 재료와 도구는 네 가지 다른 것들로부터 끌어낸 추상적 개념이다. 삼각형, 사각형의 도형들이 섞여 있는 데서 구분하라는 요구도 실패로 돌아갔다. 형태가 달라도 삼각형, 사각형의 집합을 구분할 수 없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문맹인 사람은 대상을 추상적으로 나누지 못하므로 고등 수준의 인지 발달이 이루어지도록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배워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사회생활을 영위하여 나가는 데 이러한 나누는 일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분류하는 일은 더욱더 어렵게 된다. 고도의 학습 능력은 고도의 추상적인 분류를 더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이는 비단 인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생물은 분류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 아메바는 먹을 것과 먹지 않을 것을 분류하여 생존을 영위한다. 아베마가 하는 일은 할 것과 하지 않을 것, 오직 두 가지이지만 이로부터 생존한다. 다세포 생물로 올라갈수록 분류하는 가짓수는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능력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장착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이성적 추리 능력을 가지기 때문에 여타 동물과 구별된다. 인간은 이성적 추리 능력으로 고도의 분류를 수행하고 생활하여 살아간다. 사실 우리가 사회에서 일상적 생활하거나 고도의 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일을 하거나 모두 분류를 수행하는 일에 속한다. 우리는 분류를 통해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평생 분류를 통해 생활을 영위하고 자기 학습을 거쳐 고도의 추상적 분류의 능력을 갖추면서 살아 나간다. 모든 사고의 능력은 올바르게 나눌 수 있느냐의 능력에 달려있다. 인간 개인을 넘어 사회가 형성되는 것도 분류와 깊은 관련이 있다. 특정 사회들은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전통과 현재의 규율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이것들이 바로 분류이다. 이처럼 분류가 매우 중요한데 존재를 정의하기 위해서 분류를 통해서 모든 가능성의 존재를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빼먹는 것이 절대로 없어야 한다. 그게 온톨로지(Ontology), 즉 존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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