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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Jan 15. 2024

존재를 말해주는 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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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본 생각이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데아는 진본인데 우리 세상이 아니고, 형상(form)은 우리의 세상 모두에 내재하여 있다. 재료는 형상과 결합하여 개별 사물이 된다. 그러므로 형상은 개별 사물의 존재를 각인시켜 주는 장치이다. 더 이상 이상적 세계를 상정할 이유가 없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사물을 설명할 준비가 되었다. 감각의 우리 세상은 이데아의 모사로서가 아니라 실제 세상으로 우리의 경험으로 알게 되는 사실이 진리임을 주장하기 위해서 우선 사물을 정확히 정의하는 게 중요했다. 그만큼 스승인 플라톤의 아성이 큰 것도 있지만 사물 안에 있는 형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과 같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이 실체로서 기능하려면 사물의 존재를 얘기하는 방식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사물은 주어로서 주어가 이러하다고 존재를 말할 수가 있다. 주어를 설명하는 술어는 변한다. 플라톤이 존재를 얘기할 때 변치 않는 술어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치 않는 주어에 주안점을 두었다. 즉, 변하지 않는 주어에 주어를 설명하는 여러 술어가 존재를 알려준다. 이를 범주(category)라 일컫는다.  

   

범주는 특정 주어에 곁들여지는 술어로 이루어진다. 하나의 주어에 여러 술어로 주어의 존재를 가리키는 분류의 가짓수이다. 범주는 모두 10개로 이루어진다. 술어의 가짓수가 10개란 의미로서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때, 상태, 소유, 능동과 피동이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란 인물로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위대한 과학자이다 ‘로 그를 표현할 수 있다. 그의 존재는 위대한 과학자라는 실체로써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는 그리 크지 않은 키를 가졌다 ‘라는 양으로서 표현할 수 있다. 길이나 무게 등이 양에 속한다. ’ 그는 지성을 매우 존중한다’라는 질로서 그를 표현할 수 있다. 질에는 지성 존중과 같은 추상적인 것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냄새, 색상 또는 미소 등이 관련이 있다. 관계로서의 표현은 ’ 그의 스승은 플라톤이다 ‘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 또는 부모와 자식, 주인과 물건 친구 간의 관계로 그를 표현 가능하다. ‘그는 대부분 뤼케이온 학당에 머물렀다’라는 장소로서, ’ 그는 어제저녁에도 동물 분류 연구에 매달렸다’라는 시간으로서 현재, 과거와 미래가 있다. 이밖에 ’ 그는 앉아있다’라는 상태로, ’ 그는 반지를 끼고 있다’라는 소유로, ’ 그는 학문 연구에 매달렸다’라는 능동, ’ 그는 말년에 아테네 시민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라는 피동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를 표현할 수 있다. 이들 10개의 범주는 모두 상호 배타적이고 존재자 전체를 서술한다.      


10개의 범주 중에 첫 번째인 존재의 실체를 말해주는 범주는 여타 범주와 다르다. 실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반면에 다른 범주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실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체는 특권적 지위를 가지고 가장 중요하다. 실체는 범주의 첫 번째 의미로서 우선적 존재의 사람, 동물, 식물 등의 구체적 개체를 의미한다. 주어가 참인 존재는 그 자체이고 실체이다. 이 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가 최고이며 시공간 사이의 사물은 모사일 뿐이라는 플라톤의 입장과 상반된다. 범주란 얼핏 보면 단순 문장의 문법 같지만, 형이상학의 존재론과 깊은 관계가 있다.

    

실체의 의미는 주어에 의해 서술되지 않고 다른 것이 그것에 의해 서술되는 것이다. 실체는 다른 범주와는 달리 따로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실체가 다른 범주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실체를 전제로 양이나 질을 따질 수 없듯이 양이나 질이 없는 실체를 상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체는 존재를 아는 것에서 단연 다른 범주를 앞선다. 어떤 사물이 그것의 질이나 양 또는 어느 장소에 있는지를 파악할 때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때 그것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실체를 제외한 다른 범주의 실체에의 의존성은 질과 양의 범주는 실체의 질과 규모 등을, 그 밖의 다른 범주는 실체들이 상호 연관된 방식으로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실체와의 연관성은 자신의 존재를 실체에 의존하게 되어 이들 각각은 어떤 실체의 안에서만 존재한다. 예를 들어, 희다(white)는 표현은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것이 희다고 할 때처럼 어떤 실체의 존재를 요구한다.  

    

단일 범주 내에서 덜 일반적인 것에 대한 더 일반적인 것의 관계는 명확하다. 예를 들어 사람은 동물이라는 표현은 있어도 동물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있을 수 없다. 즉, ’ 유‘가 ’종‘에 대해 말해진다. 이로부터 보편과 특수의 개념을 끌어낼 수 있는데 보편(자)는 여럿에 대해 공통으로 말해지는 것, 특수(자)는 보편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편적 존재는 그보다 낮은 단계의 보편(자) 및 특수(자)에 대해 말해진다.     


존재로서의 존재 연구에 범주의 실체는 당연히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된다. 구조상 실체의 존재론적 우선성이 주어져야 하므로 실체 연구는 중요하다. 그러나 도대체 실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 존재‘라는 말 자체가 애매하여 존재에 관한 단일학문이 존재하는지 의문 시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체를 제외한 9개의 범주의 다양한 의미가 모두 실체라는 단일한 중심 의미와 연관되어 있으므로 존재는 설명할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한다. 이 맥락은 존재를 가리키는 10가지 범주 외에 다른 예는 없으므로 범주야말로 존재를 설명하는 기반이라는 뜻일 것이다. 실체라는 의미는 일차적 의미의 존재이며 실체와 연관된 의미는 자연스럽게 파생된다. 연관된 의미란 일차적 의미의 존재와 적절히 관련되는 한에서 만의 존재를 의미한다.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 대한 설명은 어떤 방식으로든 실체를 지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존재로서의 존재 학문은 존재의 중심인 실체에 관한 설명을 포함하는 것이 필수이다.      


범주를 세움으로써 우리는 개별적인 사물(실체)들과 이것들의 성질 및 관계 간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 즉, 범주는 존재를 논하는 데 첫 단계이다. 개별적 사물들을 실체로 만드는 게 무엇인지 탐구한다. 이것이 질료인지 아니면 형상인지, 변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양극단 둘의 대립을 다루게 된다. 변화 설명의 도구인 능태와 현실태 또한 존재를 설명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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