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배려는 플레이리스트에서부터

한쪽으로만 듣는 노래

by 김단한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덕분에 숱한 조수석 생활을 이어왔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해야 할 일에 관하여 어느 라디오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운전하는 사람이 최대한 편안하게 운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조수석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면, 물 뚜껑을 따서 최대한 편안하게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빨대가 있으면 더 좋겠죠. 시종일관 말을 걸어주면서 운전석에 있는 사람이 졸음운전을 하는 사태를 애당초 막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본인이 잠을 자면 안 되겠죠. 또, 운전석에서 보기 어려운 내비게이션의 촘촘한 면을 봐주시는 것도 필요합니다.' 목소리는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말했다. '안전한 운전은 조수석이 만드는 겁니다!' 그 말은 너무도 강렬해서 나는 조수석에 앉을 때마다 조바심이 났다. 운전면허처럼 조수석에 특화된 면허 같은 것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나는 무한한 배려라는 항목에서 드물게 만점을 받은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점은 따놓은 당상인 나에게도 어려운 부분은 있다. 어렵다기 보단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노래를 선곡하는 일이다.


노래의 선곡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트는 것보단 철저히 운전석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선곡한다. 한곡씩 틀 때마다, '크' 하며 운전을 하는 이의 입꼬리가 올라간다면 성공이다. 좋아하는 음악의 취향이 맞거나 교집합의 넓이가 꽤 넓은 상대라면 음악을 고르는 건 어렵지 않다. 제일 좋은 방법은 운전하는 사람의 플레이리스트를 그대로 트는 것인데, 이 일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요즘엔 워낙 실시간으로 교통정보가 휙휙 바뀌어 내 주변의 사람들은 차의 내비게이션과 자신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을 함께 틀곤 한다. 그러면, 당연히 나의 스마트폰이 남겠고 거기에 들어있는 처량하기 그지없는 노래들이 차 안을 가득 메워야 하는 것이다.


난감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과 생각과 취향이 흩어지는 기분이 든다. 노래를 선정하는데 나는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사실, 나는 멀미가 심한 사람이라 양쪽 귀를 전부 이어폰으로 틀어막지 않으면 장기간의 이동이 버겁다. 줄 이어폰이 대세였을 때도, 나는 누군가와 한쪽씩 노래를 나눠 듣는 것을 버거워했다. 나는 나의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또 오른쪽 귀에서 왼쪽 귀로 무한히 이어지는 크고 빵빵한 볼륨을 좋아했기에. 이어폰을 나눠서 착용하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노래가 뚝뚝 흘러 떨어지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추락하는 노래를 듣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래서 과연 내가 노래를 나눠 듣지 않았을까.


나는 노래를 혼자 듣고 싶어. 이 짧은 한 마디를 못해서 나는 기꺼이 한쪽 귀로만 노래를 들었다. 노랫말과 상대방의 말이 겹치게 되면 나는 생전 처음 외계어를 듣는 사람의 표정을 하곤 했다. 그리곤, 다시 상대에게 집중. 그러다 보면 다시 멀미, 그래도 떠난 이어폰은 돌아오지 않고, 나는 종착지에 다다를 때까지 어지러움과 약간의 두통을 견뎌야만 했다.


이런 나도 차 안에서는 과감히 이어폰을 포기했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쉬지 않고 대화를 창출해낼 수 있는 사람'일까. 다들 나를 조수석에 앉히려 했다. 뒷좌석은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며 자는 척을 하기 딱 좋은데. 나는 그곳이 2시간 거리든, 3시간이든, 아니면 4시간 30분이 걸리든, 뜬눈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노래를 선곡하는 역할을 맡곤 했다.


운전하는 사람이 절대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간간히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게 만들려면 갖은 노력이 필요했다. 어쨌든,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않아도 되고, 나는 조금 더 쉴 수 있으니까 좋은 노래를 선정하는 것은 필요했다. 나는 우선 운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가수를 대강 파악한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데, 간혹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나에게 어떤 노래를 틀어달라고 권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수와 노래를 시작으로 하여 비슷한 노래, 당시 유명했던 노래, 요즘 유명한 노래를 천천히 틀어내면 완벽한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이 일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된다.


나도 뒷좌석에 타고 싶다.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주야장천 들으며 운전을 하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운전면허가 있어야겠지. 나는 나의 에너지의 총량을 온전히 나에게만 쏟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에너지를 플레이리스트에 쏟고 만다. 그러니, 목적지에 도착하면 파김치가 된다. 뒷좌석에 실려온 이들은 말한다. '어째 운전한 사람보다 더 피곤해 보이냐?'


알아서 나오는 좋은 노래들을, 생각지도 못한 순간 듣고 싶었던 노래가 흘러나와 짜릿한 그 순간을, 온전히 혼자만 느끼고 싶다면 너무 욕심쟁이일까. 욕심, 좀 부려도 좋지 않을까.


내가 조금 더 힘차게 나의 무언가에 대해 어필할 수 있다면 쓸데없이 빠져나가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