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혼자이길 바랍니다, 만

수락 아니면 거절

by 김단한

'어디를 가는 것보다 누구랑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장소가 어디든, 같이 동행하는 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풍경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아주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서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자. 내 옆엔 그다지 친하지 않은 누군가가 있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같이 흘러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도 나도 바다를 보고 뻘쭘하게 서 있다. 바다를 나의 오른쪽이나 왼쪽에 두고 하염없이 걷고 싶고, 앞으로 좀 나아가 발도 담가보고 싶은데, 둘 다 움찔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다. 눈은 바다를 보고 있지만, 온 신경은 별로 친하지 않은 그 사람에게 가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혼자 가느니만 못한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차라리 혼자가 낫다는 생각이 드는 상대와의 여행은 그래서 어렵다. 안 친해도 어렵고, 너무 친해도 어렵고. 그러면 반대로, 너무 친한 상대와 갔다고 치자.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평소 서로가 느끼거나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도 아는 사이. 그럼, 굳이 '무슨 생각해?' 정도의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때는 멍하게 바다를 보는 것이 허용된다. 내가 왼쪽으로 걸으면, 그는 오른쪽으로 걸을지 모른다. 조용한 침묵. 어쩌면 시끄러운 침묵. 자유로운 침묵. 그게 가능한 사람과의 여행이라면 어디든 즐거울지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벌써 자유롭다.


나는 어떤 타입인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혼자가 편한 타입이다.


정말이지 나는 혼자가 편하다고 쩌렁쩌렁 외치고 싶다. 아니 물론,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도 편하지. 나는 친구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 파트너 1위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줏대가 없다. 친구들과의 여행에선 더더욱 그렇다.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관광지를 꼭 들려야 하는 친구들이 봤을 때 나는 굉장히 좋은 여행 파트너다. 군말 없이 그 모든 계획을 함께 따르고, 필요에 의해 적절한 리액션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니까. 또 반대로,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고 종일 호텔에 누워 넷플릭스만 보는 친구에게도 나는 완벽한 여행 파트너다. 같이 누워 잠을 자고, 밖에 나가자고 보채지 않고 함께 영화를 보며 깔깔깔 웃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다시. 나는 나에게 어떤 여행 파트너인가. 웅장한 자연을 보며 눈물을 훔치고, 사소한 것에 감동을 받고, 혼자 지독시리 외로워하면서도 결국 혼자만의 여행을 원하는 것이 바로 나다. 희한하지.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속으로는 무진장 시끄러운 것도 나다. 외로워하는 것도 나고,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로 돌아가니 사람이 싫어도 어쩔 수 없도다 웅냐웅냐 어쩌고 하는 말을 믿는 것도 나.


이전 글에 이어 게임을 예로 들어 하나만 더 말해보겠다. 게임상에서는 '그룹 초대'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게임을 같이 하고 싶은 상대에게 초대장을 보내고 답을 기다리는 것이다(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yo, 나랑 게임 같이 할텨? 각진 창은 눈을 깜빡이는 속도에 맞춰 나의 화면에 안착한다. 수락과 거절(회피)을 누르는 시간은 제한이 되어 있다. 10초 정도. 나는 초대장이 나에게 날아오는 순간 숨을 멈춘다. 딱 10초 동안. 카운트다운이 빠르게 줄어들고, 초대장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렇게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것이 아니다. 거절(회피)을 누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겠으니 초대장이 저절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거절을 누르지(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들이 들었을 땐 어처구니없을지도 모른다. 단순하다. 거절하면 거절당하는 사람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까 봐서. 그래서 나는 삶에서 아주 귀한 10초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


어떤 일은 혼자 하는 것이 낫다. 물론, 레벨이 높은 캐릭터의 도움을 받으면 수월한 면도 있겠지. 내가 작은 단검으로 5000번을 찔러 보스에게 모기 물린 자국에 십자가를 만들어주는 것만도 못한 치명타를 주는 것보다 레벨이 높은 캐릭터의 무지막지한 한방으로 옆에서 깔짝거리다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먹는 방법도 분명 있겠지, 쉽지. 그런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정의의 이름으로 그러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 동행이 있으면 물론 좋겠지만 혼자 다니고 싶은 것이다.


혼자 걸으면 좋다. 별 시답잖은 생각도 하고, 눈물도 좀 훔쳐보고, 누구도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도 좀 하고, 혼자 욕도 뱉어보고, 반성도 해볼 수 있다. 싫은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그 사람을 연못에 퐁당 빠뜨렸다가 다시 건져내는 상상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있어도 된다. 우리 모두는 가끔 혼자 일 때가 필요하다.


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혼자 있는 사람은 불쌍하고, 우울해 보이고, 마음 터놓을 친구 하나 없어 보인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혼자 있지만 불쌍하지 않고, 조금 우울하지만 어느 정도의 우울은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해 준다 느낀다. 친구를 붙잡고 마음을 터놓으면 그게 마음 터놓은 친구가 되는 것이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는 언제든 만들 수 있다.


그러니,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나를 불쌍히 여기지 말길.


나는 극도로 소심해서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혼자가 좋아서 그리하는 것이다. 그동안 입으로 떠드느라 귀 기울이지 못했던 속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한동안 나는 속의 이야기가 듣기 싫어 밖으로 나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가끔은 슬픔과 친해져야 할 때가 있다. 슬픔뿐만 아니라 고독, 외로움 이런 친구들과 마주 앉아 모닥불 피워놓고 캠프파이어를 하게 될 순간이 생긴다. 나는 오늘도 슬픔이와 고독이와 외로움과 모닥불에 나란히 앉아 '비바람이 치던 바다~' 노래를 부르며 수건 돌리기를 한다. 이들이 내 뒤에 수북이 쌓아놓은 수건을 모른 척하며 열심히 손뼉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오늘 하루를 넘긴다. 촤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