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생일을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민망해진다. 내가 축하받는 것이 맞는지. 나는 나를 낳아준 엄마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고 싶을 뿐이다.
나는 무려 17시간의 진통을 엄마에게 선사한 후, 세상에 나왔다. 아주 크게 울어 장군감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는 매번 생일 때마다 듣는 이야기다. 나는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누군가를 통해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삶 한 조각을 누군가를 통해 듣고 베어 물면, 시큼하기도 하고, 달기도 하다. 기분이 나쁜 적은 없다.
생일에 관련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생일이 포함된 달인 11월만 되더라도 가슴이 들떠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늘 생일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가만히 톺아보니, 나는 나를 축하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축하와 관심을 받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생일에는 누가 나의 인연으로 남아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는지, 누가 연락이 없었는지를 생각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기다리거나 기다리다 지치거나, 실망하는 생일을 맞이했던 것이다.
생일이 연말 가까이에 있으니 그 한 해에 만났던 이, 잃었던 이를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나의 생일 축하가 쓰이는 셈이다. 정말이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생일에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컸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아직 자라는 중이라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아직 알아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 새삼 두렵다. 하지만, 이젠 두려워하지도 않으려 한다. 그저 아직 내 곁에 남아서 생일을 축하해 주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새로 생긴 인연의 수줍은 인사에 답하며 얼굴을 달구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앞으로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걱정스러웠던(?) 생일을 나름 편하게 보내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있고, 흩어질 이들은 또 그러하다. 생일이 되면 감상적인 생각도 유독 많이 들곤 하는데, 그런 것 없이 이번 생일만큼은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내가 나를 축하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그동안, 너무 남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 내가 직접 전하는 생일 축하를 나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생일이라 자부하고 싶다. 내가 더 탄탄해질 수 있기를. 내가 나와 살아갈 앞으로의 나날을 축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를 진정으로 축하해 주고, 축하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을 이제야 가진다. 이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