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와 질투를 양분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것에 있어 참으로 많은 에너지를 쓴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곳은 각각 다를 테지만, 거의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랑하는 것에, 미워하는 것에,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할 때. 우리는 다양한 에너지를 끌어내어 각자에 맞게 사용한다. 에너지의 농도와 깊이는 모두 다를 것이며, 그것을 제때 끌어내는 방식 또한 다를 것이다.
나는 유독,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써왔다.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저런 글을 쓸까, 저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저렇게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칠까, 그저 바라보며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에만 거의 한평생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내가 소설이라는 장르를 접하게 되고, 소설을 직접 쓰게 된 것도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정말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다. 다들 소설을 어떻게 쓰게 되었냐고 물었을 때마다 나는 적절히 웃음을 지으며 '그냥, 쓰다 보니……' 우물쭈물, 어버버 하곤 했다.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소설을 쓰고, 소설을 좋아하길래, 그걸 따라 하다 보니, 그걸 계속 주시하면서 나도 그 책을 읽고 나도 그 사람처럼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라고.
여기서 나는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나의 능력'이었다. 내가 가진 능력, 그리고 쓰고자 하는 마음, 뭔가를 골똘히 공부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건 그냥 에너지 낭비였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질투하는 과정에서 생긴 에너지를 동력 삼아 나도 무언가 하고자 했고, 결과적으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앓았다. 나보다 잘 되는 사람이 있으면 너무나 부럽고, 왜 나는 되지 않는 것인지 자책하기 바빴다.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지 못하고, 혼자 쓰라린 속을 식히느라 에너지를 많이 써야 했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에너지를 나에게로 돌리는 방법. 나의 마음에 있는 '에너지 화로'에 에너지를 넣고 달구는 방법을 정말 조금은 알 것 같다. 시기와 질투를 나의 양분으로 삼아, 내가 조금 더 뭔가를 하는 것에 쓰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무작정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말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느 나라 명언처럼 멋있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다. 사람은 누구나 누구를 미워할 수 있고 시기와 질투를 겸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말은. 그 에너지를 약간씩 떼어내어 나를 위해 써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떼어내다 보면, 내가 어떤 순간에 어떤 에너지가 얼마만큼 필요한지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기와 질투를 하는 에너지가 온전히 나의 동력이 됨을 어느 순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 마음이 편하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과 나의 차이를 정확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도 밤낮없이 노력할 것이고, 엉덩이를 꼭 붙인 채 무언가를 읽거나 구상하는 시간을 아주 많이,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의식하지 않기로 한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로 한다. 남을 부러워하면서, 나의 에너지를 헛되이 쓰는 것을 이제 그만하기로 한다.
남을 부러워하지 않고, 진정으로 축하해 주면서, 기꺼이 나의 길을 다듬을 수 있는 에너지가 우리 몸에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마구 생성될 수 있다. 끊임없는 자원을 품고 있는 몸을 헛되이 쓰지 말자. 나를 위해 생성된 에너지를, 나를 위해 쓰면서, 자책하지 말고, 오늘 하루도 잘 살아보기로, 스스로 다짐해 보자. 어떤가.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고 싶거나, 떠오르는 게 있지 않는가?
그럼 지금 시작하면 된다. 당신의 에너지가 달아오르는 신호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