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김단한', 나의 필명이다. 마음에 남는 단 한 문장, 단 한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망설이지 않고 결정한 이름이다. 이름을 짓고 나니, 써먹을 수 있는 부분이 다양했다. 대단한, 단단한, 간단한. 대단한 작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단단한 작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다들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글을 쓰고 싶기도 하다는 나의 마음이 제대로 부여된 이름이었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든다. 하지만, 요즘은 막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과연, 대단하고 단단한가?
대단하고 단단하지 못한 나날을 보냈다.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단기 아르바이트로 인해서 몸이 상했고(약간), 눈이 더 나빠졌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보다 몸이 받은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 특히 손가락이 심하게 아팠기 때문에, 한동안 쓰기도 읽기도 보기도 싫은 날이 또 이어졌다. 그러면서, 타성에 젖기도 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지? 왜 이러고 있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그냥저냥. 어떻게든.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저러쿵…… 보냈다. 또 한 번 느낀 거지만, 시간은 간다. 어떻게든, 어떤 모습으로든 간다. 느리게든, 빠르게든 간다. 그래서 2024년을 맞이했고, 나는 또 글을 쓴다.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싶지만,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 못할뿐더러, 글로는 아직 만족스러운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여러 알바 사이트를 전전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고를 훑었고, 그럴 때마다 단단해지지 못했고, 대단해지지 못했다. 나는 일단 나이가 어중간하고, 경력이 없다.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일을 해낼 수 있겠으나, 그렇게 되면 글을 읽는 시간과 글을 쓰는 시간을 포기해야 했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벌며 내 모든 시간을 충족할 수 있을지 몰랐다.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았고, 제공해야 하는 노동력은 애매했다. 현실의 퍽퍽함을 다시 한번 온몸으로 (퍽퍽) 느꼈다. 기술을 좀 쌓을 걸 그랬다, 뭐를 좀 많이 해볼 걸 그랬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면서, 자꾸 나를 원망했다.
왜 그렇게 꿈에 사로잡혀서 현실을 못 봤을까, 에서 시작한 생각은 미친 듯이 가지를 뻗었다. 주체할 수 없이. 새벽에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고, 눈을 뜨고 있는 시간, 모든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선생님께 나의 현재 상황을 알렸다.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한 번 이야기해 볼게요. 저랑 단한 씨를 비교하는 거죠. 자, 저는 책을 내지 못했어요. 책을 무척이나 쓰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글은 단 한 자도 못 써요. 그런데, 단한 씨는 책을 내고, 여러 글을 쓰고 있죠. 저는 그렇게 못해요. 저는 불행한 사람일까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를 보던 선생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왜 글을 쓰고 싶으세요?" 나는 답했다.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처음에는 배출의 용도였고, 지금도 배출의 용도지만, 이야기를 만들면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기도 해서요."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초심을 잃지 마세요. 제일 처음 가졌던 마음을 다시 되새기세요."
되새겨본다. 나는 나를 믿고 글을 썼고,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의미가 조금 퇴색된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한다. 초심이 완전히 무너졌다. 나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믿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려 한다. 다시 시작이다. 모든 일을 없던 셈 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안고, 그것이 내가 지금 딛고 있는 땅을 구축하였다고 믿고, 다시 시작하려 한다.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길 원한다. 분석하려 들지 않고 재미있게 책을 읽고, 맛있게 밥을 먹고, 즐겁게 사랑할 것이다. 지금부터. 지금, 이 순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