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나는 내가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하지 않은 감정을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노, 좌절, 절망, 후회, 자책, 슬픔과 같은 것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한 두려움, 혹은 지레 걱정하여 실천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행위는 정말이지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 감정을 어떻게 했냐면…… 무시하려 애썼다. 그런 감정이 찾아오려 하면,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다. 눈을 감고 보지 못한 척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의식하지 않으려 함으로써, 나는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스스로' 판단하곤 했다.
감정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지 마! 소리친다고 해서 오지 않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아픔, 좌절, 일이 잘 되지 않는 것에 있어서의 절망, 스스로 매번 상기하는 자책감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우울감. 그런 것들에게 오지 마! 멈춰!라고 말한다 해서, 정말 그 감정이 오다가 멈출까? 아니다. 그런 감정은 불쑥, 아주 큰 형태를 가지고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 몸집을 매번 불리기 때문에, 우리가 모른 척하는 과정에서, 이미 그 감정들은 굉장한 힘을 발휘하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바라보고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내가 이 감정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했어'라고 생각하며, 자책하고 절망하는 것이 바로 이럴 때 꼬리를 물고 바짝 쫓아온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이 감정을 막아보려고 해도, 나를 힘들게 하는 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해도, 그걸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는 내 감정 하나 제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참 바보처럼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숨을 한번 크게 마시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자. 우리의 감정은 눈에 보이는 물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 무엇인가로 표현이 되게 마련이다. 슬플 땐 눈물이 나오고, 가슴을 치기도 한다. 화가 나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각각의 표현 방법은 다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표현'을 '배출'이라는 단어로 바꾸고 싶다. 물론 소리를 지르거나 우는 것은 좋다(앞서 쓴 글인 '울음을 참지 않겠다는 마음'을 참고하셔도 좋다). 누구는 이런 감정이 들 때, 봤던 영화를 또 보거나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하는 방식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이게 바로 내 감정을 내가 다스릴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무작정 소리를 지르고 분노를 표현하고 나면, 다가오는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미, 우린 다 겪어보았지 않았나.
이런 감정을 자양분 삼아 뒤로 물러서거나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그 걸음이 터벅터벅, 혹은 발을 질질 끄는 행위일지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다. 잠시 쉬어가도 좋지만, 이런 감정은 다른 감정보다 꽤 무게가 있어서, 주저앉아버리면 짓눌린 형태로 언제 일어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나의 세계를 조금 더 넓히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한 발자국이라도 더 걸어야 한다. 왔던 길을 되짚어보는 것도 좋고, 옆에 샛길이 있다면, 거기로 한번 가봐도 좋다.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 곳이라도 가고 싶다면, 일단 가보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쓸데없는 감정은 없다. 어떤 감정을 마음의 땅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필터는 분명 우리 마음에 있다. 다들 하나씩 갖고 있다. 가동하자.
그렇게 나의 가능성은 한 단계 더 커지고, 시야는 넓어지고, 우린 조금 더 다양하고 이상한 것이 많은 곳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나의 세계는 내가 구축하는 것이다. 오늘은 나의 세계에 어떤 감정과 물성을 새길까, 어떤 것으로 가볼까, 살짝 고민해 보자. 하루가 즐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