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박 16일, 아빠와 딸의 뉴욕 미술 여행 준비기
창틈으로 스미는 겨울바람 끝이 제법 매섭습니다.
하지만 그 냉기마저 달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제 마음이 이미 태평양을 건너, 저 먼 뉴욕의 어느 거리를 서성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지도를 펴놓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뉴욕, 그리고 맨해튼.’
누군가는 그곳을 ‘세계의 수도’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욕망이 끓어오르는 거대한 용광로라 부릅니다.
반듯하게 잘린 도로들이 마치 손바닥 안의 지문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
그 이름만으로도 왠지 모를 분주함과 화려함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이번 겨울, 저에게 뉴욕은 거창한 세계의 중심이 아닙니다.
그곳은 이제 막 어른의 문턱을 넘어선 나의 스무 살 딸, 시은이와 단둘이 걷게 될
우리 생애 가장 특별한 산책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지난 몇 달간, 저의 밤은 타임스퀘어의 전광판보다 환했습니다.
모니터 화면에 엑셀 파일을 띄워놓고 분 단위로 이동 경로를 계산하고, 동선을 수정하기를 수십 번.
평소의 저라면 상상도 못 할 치밀함입니다.
누군가 이 빼곡한 일정표를 본다면 “여행을 가는 거냐, 극기 훈련을 가는 거냐”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게 그 파일은 단순한 데이터의 나열이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시은이가 다리가 아프지는 않을까’, ‘이쯤에선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지 않을까’….
그것은 서툰 아빠가 딸에게 건네고 싶은 수줍은 연서(戀書)이자,
우리가 함께 공유하게 될 시간을 위해 그린 정밀한 설계도였습니다.
가장 먼저 저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역시 미술관입니다.
책장 한구석에 꽂힌 패트릭 브링리의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다시 꺼내 듭니다. 형을 잃은 슬픔을 안고 숨어들었던 그곳에서 저자는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통해 치유받았다고 했지요.
저 역시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 속에 딸아이와 함께 푹 파묻히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봅니다.
MET(메트로폴리탄)에서의 3일, MoMA(현대미술관)에서의 2일, 그리고 구겐하임과 휘트니까지….
사실 딸아이에게는 조금 가혹한 일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캔버스 너머에 있는 화가들의 치열한 숨결을, 예술이 건네는 위로와 경이로움을 인생의 선배로서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덴두르 신전 앞, 그 거대한 통유리창으로 쏟아지는 12월의 햇살 아래 우리가 나란히 섰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한 마음들이 그 침묵 속에서 오고 가기를,
그 공간의 공기마저도 아이의 기억 속에 따스한 온기로 남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입장권을 예매합니다.
하지만 여행의 주인공이 오직 ‘그림’일 수는 없겠지요.
저의 시선이 고흐와 모네, 마크 로스코를 향할 때,
사실 저의 마음은 온통 시은이의 입과 발을 향하고 있습니다.
고백하건대, 르누아르의 색채를 탐구하는 시간보다 딸아이가 좋아할 만한 식당을 고르는 시간에
더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이서진의 뉴욕뉴욕’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아이가 좋아할 딤섬 맛집을 찾고,
‘뉴욕 3대 베이글’이나 ‘줄 서서 먹는 피자’ 같은 낯선 단어들을 검색창에 수없이 입력했습니다.
차이나타운의 낡은 식당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딤섬을 한입 베어 물고 “아빠, 여기 진짜 맛있다!” 하며
웃을 아이의 얼굴. 어쩌면 제게는 그 순간이 피카소의 명작보다 더 위대한 예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식의 입으로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는 걸 보는 것만큼 배부른 예술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요.
12월의 뉴욕은 영화 <나 홀로 집에 2>의 어린 케빈이 뛰어다니던 바로 그 풍경이겠지요.
록펠러 센터의 거대한 트리 앞을 서성이고, 센트럴 파크 울먼 링크에서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상상만으로도, 머리 희끗한 중년의 사내는
다시 철부지 아이가 된 듯 가슴이 뜁니다. 케빈이 느꼈던 그 짜릿한 해방감과 축제의 흥분을,
이제는 다 커버린 딸과 팔짱을 끼고 걸으며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알라딘>을 예매하고 ‘결제 완료’ 버튼을 누르던 순간의 손 떨림도 잊을 수 없습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질 마법 같은 이야기, 그리고 객석 어딘가에 나란히 앉아
박수를 치고 있을 우리의 모습. 비록 제가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아이의 모든 소원을 들어줄 능력은 없지만,
적어도 이 여행에서만큼은 아이가 꿈꾸는 세상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충실한 안내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가지 작은 다짐을 더 해봅니다.
12월 20일 인천을 떠나는 순간부터 1월 3일 다시 돌아오는 날까지,
그 15박 16일간의 여정을 사이사이 틈나는 대로 기록해 보려 합니다.
기억이란 참으로 불완전하고 야속해서, 그토록 황홀했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한 잔상으로만 남곤 하니까요.
딸아이와 함께 걷는 브루클린 브리지의 칼바람, 미술관에서 마신 커피의 향기,
길을 잃고 헤매다 마주친 낯선 풍경들, 그리고 우리가 나눈 사소한 대화들….
그 모든 순간이 휘발되지 않도록, 서툰 문장으로나마 꾹꾹 눌러 담아보려 합니다.
어쩌면 그 기록은 훗날 제가 걷지 못할 만큼 늙었을 때,
기억을 데워줄 따뜻한 난로가 되어줄지도 모르니까요.
여행은 떠나기 전, 짐을 쌀 때 가장 설렌다고 했던가요.
캐리어에 두꺼운 옷가지와 비상약을 챙겨 넣으며,
사실은 ‘기대’라는 이름의 부피 큰 짐을 가장 먼저 집어넣습니다.
낯선 도시의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서로의 온기에 의지하며 걷게 될 길.
우리가 함께 걷는 그 길 위에서, 딸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깊어지고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때로는 길을 잃어도 좋고, 때로는 다리가 아파 주저앉아도 좋습니다.
그저 “아빠, 우리 참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한 조각의 추억이면 족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발견하게 될 진짜 명작은 미술관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니라,
뉴욕의 거리 곳곳에 새겨질 아빠와 딸의 발자국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하며,
저는 이제 신발 끈을 단단히 동여맵니다.
곧 비행기에 오릅니다. 나의, 그리고 너의, 우리의 뉴욕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많이 설레는 겨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