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별로 AI를 나눈다
결정적인 순간은 투자 리서치 중에 찾아왔습니다.
관심 종목의 최근 실적과 뉴스를 정리해달라고 했는데, AI가 엉뚱한 답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직전에 여행 일정을 짜달라고 했거든요.
숙소 비교하던 맥락이 남아 있었는지, 종목 분석에 "가성비"니 "후기 평점"이니 하는 표현이 섞여 나왔습니다. 대화를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고, 결국 그날 저녁 시간이 통째로 날아갔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한테 모든 일을 시키면 안 되듯이, AI도 마찬가지라는 걸.
그래서 실험 삼아 관심사별로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투자는 투자 전용 대화창에서, 여행은 여행 전용에서. 그랬더니 같은 AI인데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복잡한 종목 분석 요청에도 한 번에 정확한 결과를 내놓는 걸 보고,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날부터 하나씩 역할을 나누기 시작했고, 지금은 열 명의 전문가 봇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어떻게 봇을 나누고, 어떻게 협업시키는지, 그리고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ChatGPT든 Claude든 하나의 대화에서 여러 주제를 다루다 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AI에는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는 대화량에 한계가 있습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맥락이 섞이면서 답변 품질이 떨어집니다. 특히 전문적인 작업일수록 이 문제가 심합니다.
데이터 분석에 필요한 테이블 구조를 알려줬는데, 한참 뒤에 다시 물어보면 이미 까먹고 있는 식이죠.
사람으로 치면 이런 겁니다.
회사에서 한 명한테 회계도 시키고, 마케팅도 시키고, 개발도 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못합니다. AI도 똑같습니다.
역할을 명확히 나눠주면 각자의 전문성이 놀라울 정도로 올라갑니다.
봇을 분리하면 가장 먼저 느끼는 건 응답 품질입니다. 데이터 분석만 전담하는 봇에게 DB 구조와 자주 쓰는 쿼리 패턴을 미리 알려주면, 복잡한 분석 요청에도 정확한 결과를 내놓습니다. 처음 분리했을 때, 같은 AI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었습니다. 마치 아무 일이나 다 하던 인턴이 갑자기 전문가로 변한 느낌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동시 작업입니다. 한 봇이 테크 뉴스를 수집하는 동안 다른 봇은 블로그 소재를 찾고, 또 다른 봇은 공공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대화창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죠.
지금 운영 중인 봇은 열 명입니다. 처음부터 열 명을 계획한 건 아닙니다. 하나가 잘 되니까 "이것도 분리하면 좋겠는데?"가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늘어났습니다. 크게 보면 정보 수집, 데이터 분석, 콘텐츠 제작, 관리의 네 영역으로 나뉘는데, 각각이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어떤 순간에 "나눠놓길 잘했다"를 느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텔레그램을 열었더니 투자 브리핑이 이미 와 있었습니다.
관심 종목의 시세 변동, 주요 뉴스 요약, 전일 대비 등락률까지. 예전에는 매일 아침 직접 증권 앱을 열고 뉴스를 검색했는데, 지금은 투자 브리핑 봇이 알아서 정리해둡니다.
같은 시간에 테크 트렌드 봇은 해커뉴스, 레딧, 깃허브 트렌딩에서 기술 소식을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정리된 정보가 와 있으니, 아침 루틴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데이터 분석 영역에서 봇 분리의 효과가 가장 극적이었습니다. 데이터 분석 봇에게 DB 구조를 미리 알려두니, 복잡한 SQL 쿼리도 한 번에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매번 테이블 이름부터 설명해야 했는데, 지금은 "지난달 신규 가입자 중 7일 이상 체류한 비율 뽑아줘"라고 하면 바로 결과가 나옵니다. 옆에서 통계 분석 봇은 웹 로그를 수집하고, 공공데이터 봇은 정부 공개 데이터를 분석합니다.
각자 자기 일만 하니까 정확도가 확연히 다릅니다.
콘텐츠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서치 봇은 블로그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노션에 정리합니다. 문서 동기화 봇은 노션에 있는 문서를 사내 위키 형식으로 자동 변환합니다.
이 봇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주 4회 블로그 발행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봇을 관리하는 메인 봇이 있습니다. 목표 관리 봇은 블로그 성장 전략을 스스로 리서치해서 제안하고, 앱 개발 봇은 관리용 대시보드를 빠르게 만들어줍니다. 처음에는 "봇이 봇을 관리한다"는 게 좀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열 명이 되고 나니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모든 봇에 같은 모델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고품질 글쓰기가 필요한 블로그 봇에는 Claude Opus처럼 성능이 높은 모델을, SQL 분석처럼 정확성이 중요한 봇에는 Claude Sonnet을, 투자 브리핑처럼 여러 소스를 빠르게 종합하는 봇에는 GPT-4o를 씁니다. 데이터 수집이나 트렌드 정리처럼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봇에는 무료 모델을 배정해서 비용을 크게 줄이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전체적으로 가벼운 모델을 우선으로 쓰고, 평일에는 성능 중심 모델로 전환하는 방식도 병행합니다. 작업 특성에 맞는 모델 선택이 멀티봇 운영의 핵심입니다.
봇들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업무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열 명의 봇을 운영하려면 누군가는 전체를 관리해야 합니다. 그 역할을 메인 봇이 합니다.
매일 아침 8시가 되면 메인 봇은 모든 봇의 세션을 초기화하고, 밤사이 크론 작업이 정상적으로 돌아갔는지 점검합니다. 혼자 열 개 봇을 일일이 확인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실제로 어느 날 아침, 메인 봇이 세 건의 이상을 동시에 감지한 적이 있습니다.
문서 동기화 봇이 타임아웃으로 멈춰 있었고, 투자 브리핑 봇은 메시지 전송에 실패해서 브리핑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메인 봇은 각각의 봇에게 문제 상황을 전달하고, 해결을 요청했습니다.
제가 출근해서 텔레그램을 열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정리된 뒤였습니다.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자는 동안 이 봇들끼리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니.
팀장이 알아서 팀을 돌리는 느낌, 이게 진짜 팀이구나 싶었습니다.
메인 봇이 하는 일은 이렇습니다. 아침에는 봇들의 상태 점검과 세션 초기화, 낮에는 45개에 달하는 자동화 작업의 실행 현황을 점검하고, 저녁에는 데이터 동기화를 확인합니다.
여기에 더해 각 봇의 기억 관리까지 맡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메인 봇은 다른 봇들의 대화를 복기하면서 반복 실수가 있었는지, 새로 배운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필요하면 해당 봇의 스킬 파일을 직접 수정합니다.
말그대로 봇이 봇을 가르치는 구조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건 봇 사이에도 자연스러운 업무 파이프라인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설계한 건 아닙니다. 어느 날 블로그에 투자 관련 글을 쓰려는데, 투자 브리핑 봇이 매일 아침 정리해둔 데이터가 떠올랐습니다. "이걸 자동으로 넘기면 되지 않을까?" 밤 10시에 투자 봇의 정리 내용을 리서치 봇으로 전달하는 예약 작업을 하나 만들었더니, 파이프라인이 완성된 겁니다.
의도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긴 협업이라 더 신기했습니다.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실제로 투자 관련 블로그 글 두 편이 만들어졌습니다. 투자 봇이 수집한 데이터를 블로그 봇이 정리하고, 제가 최종 검토해서 발행하는 흐름입니다. 사람이 데이터를 옮겨 붙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봇들끼리 알아서 릴레이를 하는 걸 처음 봤을 때, 이건 자동화가 아니라 진짜 팀워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순탄하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봇 수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종류의 문제도 생겼습니다.
여러 봇이 동시에 메시지를 보내려 할 때 전송이 충돌하는 현상이 반복되었습니다.
투자 봇과 트렌드 봇이 같은 시간대에 브리핑을 보내면 한쪽이 누락되는 식이었죠.
이건 사람 팀에서도 똑같은 문제입니다. 두 명이 동시에 보고하면 하나는 묻히니까요.
메인 봇이 원인을 분석해서 전송 방식을 통일하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지금은 같은 에러가 반복되면 메인 봇이 알아서 원인을 분석하고 해당 봇에게 수정을 요청합니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팀 내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겁니다.
멀티봇 시스템이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시작은 간단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ChatGPT나 Claude에서 용도별로 대화를 분리하는 것입니다.
"데이터 분석" 대화창, "글쓰기" 대화창, "리서치" 대화창을 따로 만들고, 각각에 맞는 맥락을 시스템 프롬프트나 프로젝트 설정으로 넣어주는 거죠. 이것만으로도 응답 품질이 확 달라집니다.
다음 단계는 자동화입니다. 매일 반복하는 브리핑이나 보고서 같은 작업을 크론으로 예약하면, 사람이 신경 쓰지 않아도 봇이 알아서 일합니다. 처음부터 열 개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많이 하는 작업 하나부터 전담 봇을 만들어보세요. 효과를 체감하면 자연스럽게 늘리게 됩니다.
한 달 전, 저는 하나의 AI에게 모든 걸 시키고 있었습니다.
데이터 분석도, 글쓰기도, 투자 리서치도. 대화가 길어지면 앞에서 한 말을 잊어버리고, 맥락이 꼬이면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투자 브리핑과 테크 뉴스가 정리되어 있고, 데이터 분석을 부탁하면 테이블 구조를 다시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결과가 나옵니다. 밤사이 문제가 생기면 팀장 봇이 알아서 해결해두고, 봇끼리 데이터를 넘기며 제가 읽을 수 있는 리포트를 만들어놓습니다. 한 명의 AI를 쓰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AI 열 명을 관리하는 게
사람 팀을 관리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역할을 나누고, 협업 구조를 만들고, 실패하면 원인을 찾고, 잘하면 그 방식을 유지시키는 것. 결국 같은 원리입니다. 다만 AI 팀은 불평 없이 새벽에도 일하고, 한번 배운 건 절대 잊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내일 ChatGPT나 Claude에서 대화창 하나를 새로 만들어보십시오.
가장 자주 하는 작업 하나만 전담시키고, 그 분야의 맥락을 알려주세요. 일주일만 써보면 느끼실 겁니다.
"왜 진작 나누지 않았을까." 라구요.
그게 AI 팀 빌딩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