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방콕 가족여행 AI 가이드 활용기
부모님은 해외여행을 늘 패키지로만 다니셨습니다.
정해진 코스, 정해진 식당, 정해진 시간표. 이번 설에 갔던 방콕 가족 여행은 다르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70대 부모님을 모시고, 왕궁이나 사원 대신 쿠킹클래스에서 요리를 배우고, 저녁에는 재즈바에 가는 자유여행. 문제는 그런 여행을 직접 짜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AI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AI에게 "방콕 3박 4일 일정 짜줘"라고 하면, 십중팔구 왕궁과 왓포와 왓아룬이 들어옵니다.
방콕 여행의 정석이니까요. 실제로 AI가 처음 짜준 초안도 그랬습니다. 패키지 여행 일정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 AI가 처음 작성해준 일정 ]
왕궁은 내 계획에 없어.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에서 가는 여행지는 제외하고 싶어. 70대 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셋이 가는데 많이 걷는 코스는 빼줘.
이 한마디를 하자 AI의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많이 걸어야 하는 관광지를 전부 빼고, 체력 부담이 적으면서도 자유여행다운 대안들을 제시했습니다. 짐톰슨 하우스, 아이콘시암, 에라완 뮤지엄 같은 곳들이었습니다.
[ "왕궁 빼줘" -> AI가 대안 6개를 제시하는 대화 스크린샷 ]
재미있었던 건 왓아룬이었습니다.
직접 걸어가는 대신, 디너크루즈를 타고 강 위에서 왓아룬 야경을 보는 계획을 AI가 만들어 준 것입니다.
걸을 필요 없이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감상하는 코스.
부모님 체력 부담도 없고, 오히려 더 멋진 방법이었습니다.
패키지 여행에서 빠진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이게 자유여행의 핵심입니다.
쿠킹클래스를 넣고 싶었는데, 선택지가 너무 많았습니다.
"마이리얼트립에서 쿠킹클래스 찾아줘"
라고 했더니 AI가 직접 사이트에 들어가서 네 곳을 골라 비교해 주었습니다. 가격, 위치, 후기, 수업 방식까지 정리해서요.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데가 어디야?"
라고 물으니 숙소 주소를 기준으로 각 쿠킹스쿨까지의 거리와 이동 시간까지 계산해 주었습니다.
결국 우돔숙 쿠킹클래스를 선택했습니다. BTS로 환승 없이 한 번에 갈 수 있어서 부모님이 편하고, 프라이빗 수업이라 속도를 부모님 페이스에 맞출 수 있고, 마침 설 연휴 할인까지 적용되는 조건이었습니다.
[ 쿠킹클래스 4곳 비교 + 숙소 기준 거리 계산 대화 스크린샷 ]
재즈바도 세 곳을 골랐는데, AI가 각 날의 동선을 고려해서 배치해 주었습니다.
첫째 날은 쿠킹클래스와 마사지를 마친 뒤 숙소로 돌아오는 동선이라, 숙소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색소폰 펍을 넣었습니다.
둘째 날은 선셋크루즈가 아시아티크에서 끝나는데, 거기서 그랩으로 25분 거리인 수쿰빗의 Abandoned Mansion을 배치했습니다.
마지막 날은 아이콘시암에서 쇼핑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기 전, 동선 위에 있는 수쿰빗40의 티추까 루프탑 바를 피날레로 넣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재즈바 세 곳을 여행 계획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 그날의 일정이 끝나는 위치에서 가까운 바를 골라 넣어준 것입니다.
"1일 1마사지, 1시간 반"이라는 원칙도 전달했더니, AI가 매일 오후에 마사지 시간을 자연스럽게 배치해 주었습니다. 관광지를 빼고 여유를 넣은 것입니다. 이게 자유여행의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여행의 단점 중 하나는, 로컬 정보를 직접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패키지라면 가이드가 알아서 해주겠지만, 자유여행은 제가 해야 합니다.
색소폰 펍은 온라인 예약 시스템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네이버든 구글이든 검색해도 예약 방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AI에게 "색소폰 펍 예약하고 싶은데 방법 좀 찾아줘"라고 했더니, 직접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이랬습니다. 전화 예약이 가능하고, 페이스북 DM으로도 문의할 수 있지만, 온라인 예약은 불가능하다고요.
패키지 여행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현지에서 마음이 바뀌면 일정을 바꾸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원래 있던 사원 방문을 취소했습니다. 대신 "방콕의 성수동"이라 불리는 통로/에까마이 지역으로 가고 싶어졌습니다. AI에게 "통로 쪽으로 바꾸고 싶어"라고 하자, 바로 새로운 동선이 나왔습니다. 돈키몰, 더 커먼스, Eight Thonglor를 돌고, 마리엇 호텔 45층 루프탑 바에서 오후를 보내고, 저녁에는 카오산로드로 이동하는 코스였습니다.
[ "통로 쪽으로 바꾸고 싶어" -> 새 동선이 나오는 대화 스크린샷 ]
"오늘 일정 바꿀게요"라고 말하면 바로 새 동선이 나오는 것. 이건 가이드에게도 부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AI와 함께하는 자유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 유연함이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통로 지역을 추천하면서 72 Courtyard라는 복합문화공간을 넣었는데, 2025년 10월에 이미 문을 닫은 곳이었습니다.
[ 폐업한 공간을 추천한 AI ]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빠르게 수정하는 것. 이건 사람이든 AI든 마찬가지입니다.
만능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 오히려 AI를 제대로 활용하는 첫걸음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 원래 계획에 없던 무카타를 먹었습니다.
태국식 바비큐인데, 돔 모양의 불판 위에 고기를 굽고 가장자리 홈에 국물을 끓이는 방식입니다.
세 명이 배 터지게 먹고 약 46,000원이 나왔습니다.
여기는 AI가 추천한 게 아니라 제가 구글 맵을 통해 현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습니다.
AI가 짜준 일정대로만 움직였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경험입니다.
부모님께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쿠킹클래스에서 함께 요리를 배우고, 재즈바에서 라이브 음악을 듣고, 크루즈 위에서 왓아룬 야경을 보는 여행. 패키지 코스에는 없는 경험들입니다.
AI가 해준 건 단순합니다. 내가 원하는 걸 말하면 찾아주고, 원하지 않는 걸 말하면 빼주고, 동선을 짜주고, 식당을 추천해 주고, 예약 방법을 알려준 것입니다. 사람이 하면 반나절 걸릴 검색을 대화 몇 번으로 끝낸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행의 모든 것을 AI에게 맡길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 밤에 우연히 발견한 무카타처럼,
계획 밖의 순간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기억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