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남는 가장 중요한 스킬
에이전트에게 역할도 줬고, 기억도 시켰고, 스킬도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가끔 엉뚱한 결과가 나옵니다.
투자 봇에게 "이번 주 관심 종목 뉴스 정리해줘"라고 했더니
한 종목만 달랑 가져오고 나머지는 빠뜨리질 않나,
비서 봇에게 "내일 일정 알려줘"라고 했더니 모레 일정까지 섞어서 보내질 않나.
처음엔 AI 탓을 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열에 아홉은 제 질문이 문제였습니다.
"관심 종목"이 몇 개인지도 안 알려주고, "내일"이 정확히 언제인지도 안 짚어줬으니까요.
AI의 성능은 매달 좋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한 AI라도 질문이 모호하면 답도 모호합니다.
결국 인간에게 남는 건, 질문하는 능력입니다.
팀 회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후배가 ChatGPT에게 "분기 매출 보고서 좀 써줘"라고 물었더니, 가상의 숫자가 들어간 템플릿이 나왔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구체적인 성장률 계산, 원인 가설, 깔끔한 보고서 형식까지.
AI가 달라진 게 아닙니다. 질문이 달라진 겁니다.
후배가 "뭐가 다른 거예요?"라고 물었을 때, 저도 처음엔 딱히 설명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냥 여러 번 써보면서 체득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제가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던 것들을.
정리해보니 제가 AI에게 뭔가를 시킬 때 반복적으로 넣는 요소가 네 가지 있었습니다.
역할(Role) - AI에게 전문가의 관점을 부여합니다.
"10년차 마케터로서 답해줘"라고 시작하면 답변의 깊이가 확 달라집니다.
5편에서 에이전트에게 SOUL.md로 성격을 부여한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일회성 대화에서도 역할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맥락(Context) - 배경 정보입니다.
데이터, 상황, 제약 조건 같은 것들. "우리 회사는 B2B SaaS이고, 타겟은 중소기업이야"라는 한 줄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AI는 독심술사가 아닙니다. 알려줘야 압니다.
지시(Instruction) - 구체적인 행동 요청입니다.
"분석해줘"보다 "전년 대비 성장률을 계산하고, 상위 3가지 원인을 추정해줘"가 훨씬 좋은 결과를 냅니다.
출력 형식(Format) - 결과물의 모양입니다.
표로 줄지, 글로 쓸지, 몇 줄로 요약할지. 이걸 지정하지 않으면 AI는 기본적으로 장문의 글을 쏟아냅니다.
"3줄로 요약해줘" 같은 문장이면 훌륭하게 결론을 도출해냅니다.
네 가지를 매번 다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마음에 안 들 때, 이 네 가지 중 뭐가 빠졌는지 따져보면 대부분 답이 나옵니다. 저도 처음엔 이걸 몰랐습니다. "AI가 멍청하네" 하고 넘겼는데, 돌이켜보면 제 질문이 멍청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직장에서 가장 많이 쓰는 상황 다섯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괄호 안만 자기 상황에 맞게 바꾸면 바로 쓸 수 있습니다.
3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읽고 팀장에게 한 페이지로 보고해야 할 때. 가장 자주 쓰는 패턴입니다.
마지막 줄이 중요합니다.
AI는 친절해서 없는 내용도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문에 없는 건 쓰지 마"라는 제약을 걸어두면 훨씬 안전합니다.
영어 이메일, 거절 메일, 독촉 메일. 톤 잡기가 어려운 이메일일수록 AI가 빛납니다.
톤을 지정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정중하게"만 쓰면 너무 딱딱하고, "친근하게"만 쓰면 너무 가벼워집니다.
"정중하되 비굴하지 않게" 같은 미묘한 톤 지정이 결과를 크게 바꿉니다.
엑셀 데이터를 던져주고 인사이트를 뽑아야 할 때. 분석 방향을 구체적으로 적는 게 핵심입니다.
"분석해줘"라고만 하면 AI가 알아서 방향을 정합니다.
그런데 그 방향이 제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1, 2, 3으로 분석 항목을 지정하면 원하는 답이 나올 확률이 확 올라갑니다.
회의 끝나고 메모를 정리해야 하는데, 빠뜨린 게 있을까 불안할 때 씁니다.
여러 선택지를 놓고 결정해야 할 때. 기획서에 비교표를 넣어야 할 때도 유용합니다.
비교 분석 시에는 비교 기준을 제가 정하는 게 핵심입니다.
AI한테 "비교해줘"라고만 하면 AI가 기준을 정하는데, 실제로 우리 팀에게 중요한 기준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에이전트를 몇 달 운영하면서, 그리고 회사에서 동료들이 AI를 쓰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패턴이 있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솔직히 저도 초반에 다 해본 실수들입니다.
"마케팅 전략 짜줘." 이러면 AI는 교과서 같은 일반론을 내놓습니다.
우리 제품이 뭔지, 타겟이 누군지, 예산이 얼마인지 모르니까요.
"시장 조사하고, 경쟁사 분석하고, 전략 짜고, 실행 계획까지 세워줘." 이러면 어느 것 하나 깊이가 없습니다. 사람한테도 이렇게 시키면 대충 하잖아요.
큰 작업은 단계를 나눠서 하나씩 요청하는 게 결과가 훨씬 좋습니다.
"먼저 경쟁사 3곳을 분석해줘" -> 결과 확인 -> "이걸 바탕으로 우리 차별점을 3가지 뽑아줘" 이런 식으로요.
"분석해줘"라고만 하면 A4 두 장짜리 장문이 나옵니다.
"표로 정리해줘", "3줄로 요약해줘", "팀장에게 보고할 수 있는 형식으로" 같은 한 마디를 추가하면 결과물의 완성도가 확 올라갑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걸 안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프롬프트를 아무리 잘 써도 첫 결과가 완벽한 경우는 드뭅니다.
중요한 건 대화를 이어가며 다듬는 과정입니다. 실제 사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투자 봇에게 주간 리포트를 요청했을 때 일입니다.
세 번 만에 원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프롬프트를 쓰려고 30분 고민하는 것보다, 일단 물어보고 두세 번 다듬는 게 훨씬 빠릅니다. 저는 이걸 "70점에서 시작해서 95점으로 올리기"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에이전트를 쓰면 이 과정이 더 편해집니다. 3차에서 잡은 형식을 에이전트가 기억하거든요.
다음 주에는 "주간 리포트 부탁해"라고만 해도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줍니다.
한 번 고생하면 그 다음부터는 자동입니다. 이게 에이전트의 기억이 빛나는 순간입니다.
AI를 몇 달 쓰면서 느낀 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별도의 기술이 아니라는 겁니다.
상사에게 보고할 때 배경부터 설명하고, 핵심을 먼저 말하고, 원하는 피드백 방향을 제시하는 것.
그 능력이 AI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코딩이나 프롬프트 기법이 아닙니다.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걸 명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입니다.
이건 사람과의 소통에서도, AI와의 소통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에이전트를 운영하면서 재미있는 걸 느꼈습니다.
AI에게 지시를 명확하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사람에게 업무를 전달할 때도 더 잘하게 됐습니다.
제가 뭘 원하는지 스스로 정리하는 습관이 생긴 거죠. 예상치 못한 부수 효과였습니다.
오늘부터 AI에게 뭔가를 물을 때 딱 하나만 시도해보세요.
역할 한 줄을 앞에 붙이는 겁니다. "10년차 기획자로서", "데이터 분석가 입장에서", "까다로운 고객 입장에서". 그것만으로도 답변이 달라지는 걸 체감하실 수 있습니다.
한 번 체감하면, 맥락을 추가하고 형식을 지정하는 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리고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대화로 다듬어보세요.
AI와의 대화는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함께 완성해가는 과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