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주변의 그들과 다르다는 것이 서글플 때
꿈꾸던 유학생활? 글쎄. 꿈을 꾼 것 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기대하던 모습은 있었지. 잔디밭에 둘러앉아 세계정세를 논한다든지, 아름드리나무에 기대앉아 바람 솔솔 부는 그늘에서 읽는 책이라든지. 아침엔 앞에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빵집에 가서 누런 종이봉투 한 가득 빵을 사 와야 할 것 같고, 오후엔 키 큰 나무가 빽빽한 오솔길을 찾아 산책을 하며 사색에 잠겨야 할 것 같았어. 하지만 그런 여유를 누릴 새가 없었지. 혼자라는 사실을 내게 각인시켜준 일들이 많았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유학 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배운 감정이 외로움이었던 것 같아.
한국에서의 나는 완벽한 인싸(?)는 아니었지만 워낙 외향적인 성격이라 시끌시끌하고 복작복작한 주변 인간관계를 유지했어. 그 인간관계 안의 인물들과 내가 100퍼센트 코드가 맞은 적은 없었어도 내가 혼자라고 느낄 일 또한 없었고. 일단 우린 비슷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런데 독일에 가니 내가 외톨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될 때가 많았어. 특히 내 동기들하고 나의 차이가 느껴질 때.
유럽지역학 전공은 우리 학교에서도 좀 특별한 전공이야. 그때가 유럽 연합에서 유로화를 도입한 지 몇 년 안됐을 초창기여서, 통합된 유럽을 주제로 다루는 지역학이 대학에 신설되던 시기였지. 우리 학교는 외국인에겐 어찌 보면 조금 힘든 커리큘럼이었어.
대부분의 수업은 영어와 독일어로 진행됐지만, 졸업을 하려면 로망스 언어 중에 하나, 그리고 슬라브 언어 중에 하나 각각 시험을 봐서 중급까지 마쳐야 했거든. 그 때문인지 아시아인 학생은 없었어. 세상에 중국인 유학생 없는 곳이 없다고 그러던데, 우리 과엔 없더라.
독일이 아닌 외국에서 온 동기들이 몇 명 있었는데(처음에 난 이들을 나와 같이 외국인 유학생으로 묶어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모두 유럽 연합 회원국 출신 - 다시 말해 그들의 모국어가 로망스어 중 하나든지, 아니면 슬라브어 중에서 하나였어. 여기서 상대적 박탈감이 일었지. 이런저런 과제에 치이던 당시의 난 모국어 찬스를 쓰며 언어를 하나만 배우고도 졸업하는 그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
학교를 졸업하기 전엔 유럽 연합 내 다른 대학에서 1년을 다녀야 했는데, 나는 유럽 연합 여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1년 에라스무스 교환 학기를 보낼 수 없었어. 우리 과 친구들이 다 해외 학기를 준비할 때 나는 학교 학생처를 들락날락하며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지. 아무도 내게 답을 줄 수 없었어. 우리 학과가 생기고 나서 비유럽인이 내가 처음이어서 이런 경우를 겪은 적이 없대. 독일 행정 어떤 스타일인지 알잖아.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어. 그래서 난 답을 몰라."로 일관하는 거 말이야.
결국 난 자비를 들여 프라하의 사설 어학원에서 어학연수를 했어. 같은 학기에 같은 프라하 땅에서 지내지만 내 동기들은 까를 대학교에서 정규 수업을 듣고 난 어학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했지. 분명 내가 속한 그룹 -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친구들 -인데 그 안에서 나와 처지가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어.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집 떠나 멀리 혼자서 지내니까 외로워서 같은 한국인 유학생 중에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먼저 유학 떠난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어. 근데 내가 느낀 외로움은 동향 출신 남자 친구를 만든다고 해서 채워지는 그런 외로움이 아니었어. 내 외로움은 향수병에서 기인한 게 아니었거든. 단지, 정말 튀지 않게 평범하게 살아왔던 나인데, 어느덧 이런저런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주변인과 다름을 느끼는 상황이 됐으니까 그게 서글펐어. 때때론 외로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홀로 곱씹어보기도 했지. 비주류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외로움을 안고 가는 것인지, 그때서야 알게 됐어.
림, 너도 거기서 외톨이라고 느낀 적이 있어? 네가 유학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배운 감정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나와 같은 외로움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어느 나라에서든,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겪지 않을 수는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