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과 함께 찾아온 당혹감
림, 역시 너도 일명 "멘붕"의 시간을 겪었구나.
아무리 내가 독일어를 할 줄 알았다고 하더라도, 6개월 배우고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란 역시 쉽지 않았어. 초반엔 수업이 어려워서 매시간 통째로 녹음해서 집에 와서 다시 들으며 노트 필기 빠진 부분을 채워넣었더랬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렇게 공부를 하나 싶을 정도로 들리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집-학교만 왔다 갔다 하면서만 살지는 않았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는 게 내가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고, 나를 편견에서 벗어나게 해 줄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도 꽤나 공을 들였어. 그런데 친구를 만든 다는 것도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더라. 다들 나와는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었으니까.
친구를 사귀면서 처음으로 어려움을 겪은 건 D를 만나면서였어. D는 모스크바에서 왔고, 우린 전공은 달랐지만 같은 반에서 독일어를 배웠어. 이전부터 러시아의 대중음악을 종종 들어왔던 나는 D와 러시아 가수들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졌고 종종 서로의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해주곤 했지. 난 D를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해주고 D는 나를 초대해서 러시아 음식을 해줬어. 우리가 나누던 이야기는 그냥 시시콜콜한 거, 여기에 오기 전에 고향에서의 생활은 어땠는지, 가족 이야기 등등. 여기까지만 보면, 해외 나가서 - 유학이든, 이민이든 간에 - 외국인 친구를 만나서 친해지는 전형적인 단계로 보이지? 난 그렇게 생각했어. '이제 D와 친구가 되는 거구나!'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어. 오후가 되니 누군가 벨을 누르는 거야. 내가 살던 기숙사에는 종교를 전파하러 오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기에 난 약속이 되어있지 않은한, 벨소리를 무시했었어. 그런데 너무 연달아 울리는 거야. 그래서 누군고~하고 내다보니 D가 문 앞에 서 있더라. 그녀의 손엔 빨간 장미가 가득했어. 불쑥 찾아온 D를 보고 놀랐는데, 그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내게 주는 거야.
"많이 아파? 얼른 나아서 수업에 다시 나와."
내가 기침을 심하게 해서 옮을까 봐 안으로 초대하지도 못했고, D는 어정쩡하게 복도와 문 사이에 선채로 꽃다발을 건네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어. 난 D가 이렇게 거창한(?) 문병을 올 정도로 나와 친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좀 당황했지만, 타지에서 홀로 아픈데 이렇게 누군가 나를 걱정해준다니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어. 그래서 고맙다고 하고 다음에 학교에서 만나자고 했지. 난 그렇게 고마움으로 갈무리하려 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 약 안 먹으면 7일이라는 말이 있듯, 나도 낫는데 까지 한 일주일은 걸렸던 것 같아. 그런데 놀라운 건, D가 매일매일 문병을 왔다는 거야. 장미 꽃다발을 주고 간 다음날 D는 또 꽃을 가져왔어.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오는 길에서 내 생각을 하며 꺾었다나? 매일 꽃 종류도 바뀌더라. 대부분 장미 아니면 이름 모를 들꽃이었어. 난 점차 마음에 부담감이 쌓이기 시작했지. 내가 친구를 처음 사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 처음도 아니고. (한국에서 있었을 때도 내 친구들은 외국인이 더 많았으니까..) 그런데도 친구 사귀다가 컬처쇼크를 겪을 거라곤 생각 못했어.
D는 사이코인가? 지금 나한테 집착하는 거야? 왜 이러지? 제발 우리 집에 오지 마.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야. 수업시간에도 쿨한 아이였고, 다른 친구들한테 질척거린다는(?) 이상한 소문을 들은 적도 없는데, 큰 병도 아니고 그냥 감기에 걸렸는데 매일 꽃을 가지고 오니까 조금은 겁이 났어. 혹시 레즈비언인데 혼자 김칫국을 마시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 근데 그걸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잖아? 그렇다 보니, 약간 거리를 둬야 이 친구가 다른 생각을 안 하겠다 싶은 거야. 그래서 거리를 두려 했는데, 쉽지가 않았어. 매번 초대를 거절할 수도 없었고, 또 다른 친구들하고 같이 만나는 자리도 많았으니까.
여차저차 학기는 지나가고, 시험 기간엔 그 때문에 바쁘고, 그 후엔 과제 때문에 바쁘고. 그래서 자연적으로 조금 멀어졌을 때쯤, 방학을 맞아 D가 모스크바로 돌아갔어. 그런데 모스크바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엽서를 보내는 거야. 매번 From Russia with love 라면서. 나는 답장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 방학이 끝나고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D가 또 인사를 왔어. 그동안 내게 썼지만 우편으로 부치지는 않았던 다른 엽서들을 전해주더라. 독일어로 쓴 것도 있고 러시아어로 쓴 것도 있었어. 당시 D는 영어를 거의 못했었어. 그래서 대화를 독일어로만 했는데, 내 독일어도 이런 상황에선 완벽하지 않았으니까, 이럴 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 그래서 약간은 어색한 채로 지냈었어. D는 여전히 나를 이상하다 여기고 있었을지도 몰라. 어쨌든 D가 독일 남부의 다른 학교로 옮기기 전까지 나는 D의 성 정체성에 대해 묻지 않았고,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지도 묻지 않았어.
나중에 러시아에서 온 다른 친구가 내가 아플 때 똑같이 꽃을 꺾어오는 일이 생겼어. 그때 처음으로 병문안 꽃다발을 받았던 기억만큼이나 당혹감을 느꼈어. '앗, 여기 사람들은 친구한테 다 이렇게 하는 건가?' 다행히 이 친구는 영어를 잘하는 친구라, 내게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어. 병문안엔 꽃다발이 최고라며... 어쩌면 D는 나처럼 외로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고, 그냥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어. 괜히 거리를 뒀나 싶었지.
장미꽃과 함께 날 당혹감에 허우적대게 만든 D, 덕분에 난 친구 한 명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음을 배웠어. 이젠 SNS에서나 연결된 친구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D에게 엽서를 써 줘야 할 것 같아. From HongKong with love라고 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