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루이스 부르주아 : 덧없고 영원한> 전시를 보고 와서

by 달숲

브런치북 프로젝트 응모 마감과 비슷한 시기에 랄라 도서관에서의 6회 글쓰기 수업도 끝이 났다. 수업 때 합평했던 글을 포함해서 각자 2~3편씩의 글을 써서 모으고, 그 글들을 교정 보고 문집으로 만드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글쓰기 수업 마지막 날, 글을 계속 써보라고,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던 심혜진 작가님의 당부대로 나는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을 먹긴 했다.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하고 프로젝트 응모라는 목표를 세우고 마감을 향해 달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다음은? 그다음은 뭘 해야 하는 거지? 작가 코스프레를 하며 내가 정해놓은 마감을 향해 달려보는 경험을 하긴 했는데, 마감 이후의 삶은 상상해보질 못했던 것이다. 마감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느라 뒤로 미뤄두었던 일상의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한 채 꾸역꾸역 그것들을 내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는 사이 2025년 11월 13일, 첫째 아이의 수능 시험 날짜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수능 이후에 있을 논술 시험도 치러야 하니 첫째 아이의 저녁을(둘째 아이의 학원 스케줄과 별도로) 챙겨 먹이고 학원으로 태워 데려다주는 엄마 역할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수능 이후로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은 논술 시험을 보는 아들을 챙기느라 긴장의 연속인 날들이 될 터였다. 내겐 그 긴장감을 잊기 위해서라도 또다시 몰두하며 빠져들 무언가가 필요했다.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문집까지 나오고 나면 함께 글을 쓰고 합평을 했던 문우들과의 인연도 끝이라는 게 아쉽기도 했다. 글을 계속 쓰려면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글쓰기에서 멀어진 채 오래 살아오던 현재의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귀했다. 문집을 함께 교정 봤던 문우들과 후속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현재 내 상황에서는 조금 무리인 일정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쓰는 삶을 살겠다고 다시 용기를 낸 내 마음의 불씨가 혼자 있으면 금방 사그라들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신나게 읽고 쓰는 모임 ‘랄랄라’를 만들었고, 일단 덜어내는 것은 추후에 하더라도 내 삶에 욕심껏 넣고 싶은 것들을 죄다 넣어보기로 했다. 한번 가보자. 한발 한발.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냥 따라가 보자.


모임은 한 달에 두 번 하기로 했다. 첫 번째 모임에서는 책 한 권을 정해 감상을 나누고 각자 삶에 적용할 점을 이야기 나눴다. 두 번째 모임에서는 그 책을 읽고 실천하면서 쓰고 싶어진 자신의 글(독후감이든 에세이든 장르는 상관없었다)을 한 편씩 써서 합평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첫 모임에서 이반지하 작가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회원의 제안으로 루이스 부르주아 전시를 함께 보러 가기로 했다. 2025년 12월, 그렇게 해서 랄랄라 회원들과 <루이스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 전시를 보러 호암 미술관을 가게 되었다. 호암 미술관의 한적한 분위기는 내 마음과 숨을 차분히 고르게 하기에 적합했다. 한적한 사찰로 나들이를 온 듯한 기분으로 한겨울의 고요한 정원을 걸어 미술관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마음을 텅 비운 채, 입구에서부터 거대하고 강렬한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었다. 명상을 막 마치고 난 후처럼 잔잔하고 고요했던 마음속으로 한 작가의 전 생애가 한꺼번에 밀려들며 커다란 파동을 일으켰다.


부르주아는 다양한 글과 메모, 드로잉, 조각, 바느질, 회화 등의 작품으로 다양하게 자신을 표현했다. 자신의 상처나 트라우마, 서사를 드러내기를 꺼려하지 않았는데, 그 모든 과정이 곧 작품이 되었다. 작품 설명을 들으며 홀린 듯이 전시를 보았다. 1층에는 주로 드로잉 작품들이 많았는데, 루이즈 부르주아는 20대 초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미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안에는 어머니와 관련된 기억과 상처들을 억지로 봉합하고 묻어두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상처를 기억해 내는 고통스러운 그 과정을 작품으로 표현해냄으로써 승화시키려 애썼던 작가의 노력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전시였다. 미술로 진로를 바꾸고 유학을 떠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 위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예술가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는다. 그는 순진하지 않으면서도 속박을 넘어서거나 떨쳐낼 수 없는 아이로 남아 있다. 무의식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도 없다. 그것은 비극적인 운명이다."


예술가로 살아갈 결심을 한다는 건, 어쩌면 일반적인 모든 통과의례를 거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포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묻어두고 잊고 살면 더 마음이 편할 수도 있는 유년의 상처를 들쑤시고, 잠재워야만 편안하게 일상을 살 수 있는 무의식과 트라우마까지 끊임없이 깨우면서 살아야 하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상처와 감정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 놓은 작품들을 보며 점점 그녀의 삶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2층으로 올라가니 그곳에는 거대한 거미가 있었다. 작품 제목은 마망이었다. 거미로 표현되는 부르주아의 어머니 모습. 그 거대한 거미 조형물과 그 뒤로 흐르는 영상 속 퍼포먼스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거대한 거미의 가느다랗고 날카로워 보이는 다리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거대한 거미 앞에 선 나의 존재가 더 작게 느껴졌고, 거미 앞에 던져진 먹이처럼 잡아먹힐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부르주아는 거미의 먹이가 아니라 거미의 자식이었다. 평생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며 작업을 해왔던 부르주아는 70대가 되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미 자신도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의 삶을 살아본 뒤였다. 부르주아는 그 나이에 자신의 어머니라는 존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거미를 만들었을까.

부르주아의 어머니는 태피스트리로 일하며 평생 실을 만지며 복원작업을 해왔다. 부르주아는 영상 속 퍼포먼스에서처럼, 불안했던 유년의 기억과 상처를 안고 살며, 돌봄 받지 못했던 상처의 시간을 원망하는 대상으로 어머니를 공격하기도 한다. 가정교사와 바람이 났던 아버지, 그 관계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듯했던 어머니. 살얼음판 같았을 가정의 분위기가 상상이 되었다. 그런 공기 속에서 아이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함께 엄청난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떠나면 자신들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유기 불안 속에서 고통받았던 그녀. 자신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행복하지 않은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라야 했을 부르주아의 고통스러운 유년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자신의 결혼과 육아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난 후의 부르주아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불행한 얼굴을 하고 아버지의 외도를 묵인하며 살며 무기력해 보이던 어머니는 사실 온 힘으로 자신의 고통을 견디며 자신의 가정을 지켜내던 거대한 거미와 같았다는 것을. 부서질 듯 가녀린 몸과 마음을 가졌던 어머니는 사실 자신의 몸에서 뽑아낸 실로 집을 짓고, 쉽게 부서질 것만 같은 그 집을 수없이 고치며 지켜내려 애쓰던 커다란 거미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부르주아는 그렇게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을 거대한 거미로 표현해 내었다.


예술가의 길을 걷는 긴 세월 동안 부르주아 스스로도 어머니가 되는 경험을 한다. 자신은 어머니에게 받지 못했던 따뜻한 모성, 안정된 돌봄, 평온한 가정을 자신은 자식에게 주려고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성의 돌봄은 자기 자신을 갈아 넣는 엄청난 희생과 헌신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예술가로 살아가길 원하는 부르주아의 자유로운 자아에게는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 수많은 감정들이 작품에서 느껴졌다. 나 역시 십 년 터울의 아이 둘을 키우며, 내가 유년에 느꼈던 외로움과 불안을 주지 않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런 평안한 유년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이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를 모성 안에 옭아매며 견뎌내는 것으로 이뤄지는 좋은 엄마라는 역할. 예술가라는 정체성으로 살고자 하는 이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어야만 만들어지는 돌봄의 시간과 좋은 엄마라는 정체성. 예술가와 엄마라는 두 정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괴로워했을 작가의 마음을 표현한 듯 보이는 <좋은 엄마>라는 작품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머물렀다.

부르주아가 경험한 한 가정의 어머니 역할,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무릎 꿇으며 선택하고 받아들인 시간이기도 하지만, 또한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견디는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온몸으로 만들어낸 젖을 먹여 돌보는 가족들. 부르주아는 자신이 그 역할을 거부할 수 없게 스스로의 팔도 잘라버린다. 묵묵히 그들을 먹이고 돌보며 다섯 실타래로 만들어낸다. 부르주아의 어머니 거미가 자신의 몸에서 뽑아낸 실로 집을 지었던 것처럼. 하지만 부르주아는 이 시기를 그냥 견디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천을 바느질하고 조형물을 만들어 작품으로 표현해냈다. 꿈을 기록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오는 모든 고통들까지도 모두 작품으로 표현하고 기록했기에 그녀의 삶은 곧 예술이 되었다.


부르주아가 자신의 젖으로 키운 그 실타래들은 무럭무럭 자라 각자의 집을 짓거나, 상처를 꿰매 치유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수놓게 될 것이다. 거대한 거미의 딸로 태어난 부르주아가 자신의 상처를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재해석하며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낸 것처럼.


상처를 주기만 했다고 여겼던 부모, 어머니의 존재를 다양하게 표현하며 결국 70대가 되었을 때에는 어머니를 이해하고 존경에 이르게 된 부르주아. 마망이라는 거대한 거미 조각 시리즈를 만들던 부르주아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끌어안고 트라우마까지도 자신의 예술 세계에 쏟아부었던 그녀. 그렇게 모든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킴으로써 그녀는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 모든 치유의 과정에 예술이 있었다. 평생에 걸쳐 작품으로 계속 말하고, 기억하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모든 발자취가 예술로 남았다. 어떤 삶이든 그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그 안에서의 성찰을 작품으로 표현할 때 그것이 예술이 된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의 한가운데에 서 있을까. 마음이 체한 것 같아 괴로운 날들. 이 체증이 다 가라앉고 나면 무언가를 할 수 있으리라 여기며 미루고 있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부르주아가 자신의 전 생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네 고통을 이야기하라고, 네 상처를 꺼내보라고, 더이상 도망치지 말고 현실에 온전히 발딛고 서서 지금 네가 보고 느끼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 말하라고 부르주아가 내 등을 두드렸다. 나는 내 생애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떤 이름으로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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