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하자 내 브런치북은 심사 대상으로 분류되어 더 이상 글을 수정하거나 다음 연재글을 올릴 수 없었다. 발표까지 남은 기간은 약 두 달. 연재 중이던 브런치북이 아니어도 글은 어디든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블로그에도, 인스타그램에도, 노션이나 한글 파일, 혹은 내 일기장에라도. 하지만 나는 짧은 기간 동안 열 편의 글을 쓰느라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부은 탓에 당분간은 좀 쉬고 싶었다. 마감에 집중하느라고 미뤄둔 다른 할 일들도 처리해야 했다. 글쓰기 수업에 마지막으로 글 한 편을 더 써서 제출해야 했고, 미뤄두었던 드라마 유튜브 영상 제작도 해야 했으며, 고 3 아들의 입시에도 좀 더 신경을 써줘야 했다. 브런치 글쓰기를 하는 동안 유튜브 편집은 아예 손도 못 대고 있었다. 비싼 강의를 들었으니 뭔가 빨리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이 상당했다. 그래야 작업실 월세도 내고 살림에 보탬도 될 테니까. 유튜브 수익화를 위해서는 구독자 1000명을 모으고, 1년 내에 누적 시청 시간 4000 시간을 달성해야 했다. 수익화 달성까지 열심히 매달려서 그 고지를 넘기만 하면 작업 속도도 좀 더 빨라져 있을 거고 꼬박꼬박 수입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는 돈 걱정 없이 글쓰기만 하는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다행히 브런치를 시작하기 직전에 공들여 만들어둔 드라마 소개 영상 하나의 조회수가 조금씩 계속 오르고는 있었다. 몇 해 전에 방영했던 드라마인데, 아끼는 드라마라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장면 장면 등장인물의 대사에 내 해설을 붙여 귀로만 들어도 드라마 전체를 다시보기 하는 느낌이 나게 만든 영상이었다. 하루 온종일 틈 나는 대로 편집에만 매달리며 꼬박 일주일을 작업했다.
마감을 앞두고 있을 때에만 집중도가 올라가고 몰아치듯이 빠져들어 일을 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작업 스타일이었다. 늘 벼락치기를 하며 살아왔다는 얘기다. 교정 보는 책의 출간 직전이나 자수 전시회를 앞둔 한 달간은 거의 작업 집중도가 최상이었는데 하루에 10시간에서 15시간씩 작업만 했다. 집안일에 신경을 최대한 덜 쓰려고 집도 미니멀하게 청소 정리해 두고 밥도 간단하게 먹고 치우며 살림에 신경 쓰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때는 첫째만 키우고 있을 때였는데, 방학을 이용해서 시댁이나 시누이 찬스를 써서 아이를 놀러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몰입도를 올리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는 상태 자체가 좋았다. 하루 종일 한 가지 생각에만 빠져서 지내다 보면 현실에 발 딛고 있지 않고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몰입해서 작업한 지 한두 시간쯤 지나면 머릿속에서 모든 잡념들이 사라지고, 심장박동은 느려지고 평온해지는 순간이 왔다. 현실 속의 모든 괴로움이나 근심 걱정들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깨끗한 상태. 내가 좋아했던 건 고요해지는 내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흐름을 잊고 몰두하고 있다가 고개를 들면 창밖으로 붉은 노을빛이 물들어 있곤 했다. 막 꿈에서 깬 듯 몽롱하게 바라보던 하늘. 나는 계속 그 풍경을 쫓고 있었다. 그렇게 한 가지 일에 빠져 살 때 느꼈던 몰입감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유튜브 긴 영상 하나를 제대로 만들려면 보통 30~50시간 이상의 시간이 들어갔다. 애정을 쏟은 영상에는 그 배의 시간이 들어가기도 했다. 사실 숫자와 시간 계산에 약해서 일하는 시간을 정확히 계산하질 못한다. 일에 집중하는 동안 다시 일상 속 할 일들(주로 돌봄과 가사)이나 내 건강과 수면은 뒷전이 되고 말았다. 원래 그즈음 나는 둘째 아이를 주 3회 수영장에 데려다주면서 나도 그곳 2층에 있는 헬스장에서 건강 관리를 하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도 허리가 아픈 중년의 몸뚱이는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여기저기 탈이 나기 마련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초등 어린이를 따라다니려면 체력을 길러야 했다. 헬스를 하는 틈틈이 2층 통유리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수영장에서 강습 중인 아이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몇 달을 그렇게 주 3회씩 근력 운동과 러닝을 하니 조금씩 근력이 붙어 허리 통증도 많이 줄어들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유튜브 편집에 집중하면서 다시 예전의 벼락치기 스타일이 돌아오고 일상의 루틴은 깨졌다. 헬스장으로 올라가는 대신 센터 내에 있는 카페에서 유튜브 관련 작업을 했다.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할 시간도 뒤로 미뤘다. 일단 이번 영상을 올릴 때까지만 시간을 좀 아끼자는 생각이었다. 시간을 아낀 것이었는지, 낭비한 것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완성한 영상의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으니 성취감이 차오르고 몹시 기뻤다. 올라가는 조회수만큼 도파민이 나온다더니. 나 역시 그러했다. 비싼 강의에서 배운 대로라면 이 도파민의 힘으로 다시 새로운 영상을 만들기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바로 그럴 엄두가 나질 않았다. 또 그렇게 내 일상을 포기해 가며 영상을 만드는 것이 고통으로 느껴졌다. 어딘가에 중요한 무엇인가를 두고 온 느낌이었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우리 나이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해.”
남편은 자주 내게 말했지만 나는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선택을 하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병 속에 든 열매를 꺼내려고 손을 넣어 욕심껏 움켜쥐고는 병 목에 손이 끼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짐승처럼, 모든 것을 움켜쥐고 어느 것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놓치게 될까 봐 불안해했고 잠을 잘 수 없는 날들이 늘어갔다. 끊었던 수면장애 약을 다시 먹어야 하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이 늘어갔다. 잠이 안 와서 괴로운 밤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며 불안을 달랬다. 그렇게 몇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쉽게 새벽이 왔다. 엉망진창의 날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다시 일상을 일으켜 세우고 싶어 빈 종이를 꺼내고 하루의 계획표를 작성해 보았다. 움켜쥔 주먹을 더욱 꼭 쥐는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일단 명상과 독서를 하자. 정신력을 최대로 끌어올려서 하루의 일정을 다 소화해 내는 거야. 그다음에는 아침 경제 기사와 일정을 확인한 후, 그날의 트레이딩 포지션을 정하자(나는 작업실을 구하기 전까지 몇 년 동안을 주부이자 전업투자자로 지내왔다). 9시 국내 장이 시작한 후 한 시간 정도만 차트를 보면서 환투자에 집중하는 거야. 그렇게 그날의 일당을 벌고 나면 이 불안도 좀 가라앉을 거야. 그런 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살자. 남은 오전 시간에 글을 쓰거나 자수 작업을 하는 예술가로 살고, 그다음에는 점심을 먹고 유튜버의 정체성으로 변신해서 편집 일을 3시간 하자. 계획은 완벽해 보였다. 현재 돈벌이를 위해 트레이더로 일하는 나와 내가 가장 이루고 싶은 자아를 실현하는 나, 그리고 미래의 돈벌이를 위해 현재의 시간을 투자해 공부하며 일하는 나, 이렇게 세 명의 자아로 나를 나누어서 하루를 살아보기로 했다. 아차, 하나가 빠졌네. 그렇게 3명의 자아가 순차적으로 작업실에서 할 일을 하다가 오후 3시쯤이 되면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 다시 아이들의 곁에 있어주는 살뜰하고 따뜻한 엄마로 일상을 살자. 그렇게 나는 나의 정체성을 네 명으로 나누어서 살기로 했다. 그야말로 자아분열의 스케줄이 아닐 수 없었다. 불안해서 잠이 잘 안 왔고,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 내일의 계획을 세우며 밤을 새웠고, 피곤한 아침이면 아이들을 대충 챙겨 학교에 보내놓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짧은 수면 뒤에 작업실에 부랴부랴 나갔지만 새벽에 새운 계획을 실천할 시간은 늘 부족했고, 쫓기는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늘 목구멍 끝까지 뭔가가 차올라 있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체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