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하면 일주일에 몇 번, 무슨 요일에 연재를 할 것인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독자와의 약속을 하며 스스로에게 마감이라는 걸 줌으로써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브런치 작가 등록을 하고 사이트에 들어와 보니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마감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기간 안에 열 편 이상의 글을 연재하면 프로젝트에 응모할 수 있었다. 응모한 작품 중 대상으로 뽑힌 열 편의 작품들은 상금 500만 원을 받고 출판사에서 종이책으로 출판된다고 했다. 연재 약속을 한다는 건 독자와의 약속이지만, 아직 독자가 0명인 초보 브런치 작가에게는 좀 더 강력한 미끼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프로젝트 응모라는 목표는 내게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스스로를 상금으로라도 유혹하여 글쓰기를 해내게 하고 싶었다. 대상에 뽑히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에게 열 편의 글은 남을 테니까.
프로젝트 응모 남은 기간은 약 3주가량. 지금까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 여기저기 써놓은 조각조각의 글들이나 일기들을 조금 다듬고 늘리면 서너 편은 될 듯했고 나머지는 새로 써보기로 했다. 연재 일정을 주 3회로 잡았다. 처음 연재 글을 써보는 입장에서는 다소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마음이 동했을 때 한번 몰입해서 덤벼 보기로 했다. 글쓰기 수업에서 한 가지 주제와 함께 10분, 5분 오히려 짧은 시간이 주어졌을 때 글이 술술 나오던 경험을 떠올랐다. 마감이 정해지면 오히려 뭐든 써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덜컥, 무리한 연재 일정을 결정했다. 먼저 대충 어떤 글들을 쓸지 열 편의 목차를 정해보았다. 제목을 정해놓고 정해진 연재 일정에 맞춰 글을 쓰고 발행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지금의 나에게는 일단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내 꿈을 찾고 싶어서 작업실을 만들면서 막연히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동안 내가 쓴 글은 서랍 속에 감춰둔 일기장에 혼자 쓴 일기에 불과했다. 내가 쓴 글을 세상에 내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쓰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첫 주에 연재 일정에 맞춰 글을 하나씩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편을 써서 발행하고 나면, 긴장감이 풀리면서 그날은 다음 글을 바로 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매일 연재를 하는 작가들이 정말 대단하다 생각되었다. 다음날 하루는 꼬박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머리를 굴리며 생활했다. 그렇게 글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 넣고 다니다 보면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내가 SNS에 예전에 써놓은 조각 글들을 읽어보았다. 그날의 일정을 단순하게 기록해 놓은 글들 보다는 내 사유가 단 몇 줄이라도 담겨 있던 글들이 좋은 힌트가 되어주었다. 맞아.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지. 이곳 작업실에 오면서 이런 일들을 했고,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어. 그때의 마음과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솟아올랐다. 조각 글에 살을 좀 더 붙여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나갔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질 때 과거의 내가 여기저기 남겨둔 조각 글 속에서 가져 오는 한 문장, 두 문장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매일 뭐라도 쓰자. 조각글이든, 일기든. 그리고 그걸 미래의 내가 다시 찾아보기 쉽게 잘 모아두자.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는 날들이었다.
첫 연재를 시작하고 한 주 동안 세 편의 연재 일정을 지켜내고 나니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원고료를 받고 신문사나 잡지사에 연재를 하고 있는 전문 작가라도 된 것처럼 자긍심과 자존감이 올라갔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마감을 지켜낸 것만으로 성취감에 가슴 가득 기쁨이 차올랐다.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던 삶에서 찾지 못한 내 정체성이 글을 쓰는 순간 분명해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정의 내리고 싶다면,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면 된다고 했던가. 내가 육아에서 자유로워지면, 돈벌이에서 자유로워지면 언젠가는 다시 하리라 꿈꾸던 일은 그냥 ‘지금’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다시 쓰고 있다니. 내가 다시 쓰는 사람이 되었다니. 너무 멋지잖아. 나는 나에게 조금 취했다. 내가 내 정체성을 그렇게 만들어가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이 행복감은 채 열흘을 넘기지 못했다. 글을 써서 발행하며 연재 일정을 지키는 것으로 작가 코스프레를 혼자 즐기고 있었는데, 2주 차가 되고부터는 약속한 연재 요일 자정을 넘겨서야 겨우 글을 완성하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어가면 사실 나는 연재 일정을 맞추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감일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뿌듯함이 덜했다. 그래도 글을 완성했잖아. 스스로를 위안하는 목소리도 마음 한편에 있었다. 마감 시간이 점점 늦어지더나 급기야는 자정이 넘도록 마감을 못하고 끙끙 대다가 다음날로 마감을 미루고 자버리는 날이 생겨났다. 다음날 이미 늦은 글을 마저 마무리해서 발행했다. 그러고 나면 그날은 다음 글을 쓸 에너지가 더는 남아 있지 않았고, 당연히 다음날 마감은 또 미뤄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2주 만에 금세 멋지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내가 만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바닷가 모래 위에 쓴 글자와 같았다. 작은 파도에도 쉽게 지워지고 마는. 마감 시간이 한두 시간 늦어지다가 그다음엔 하루 이틀씩 늦어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열 편의 글을 완성해 보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일에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쪼그라든 마음으로는 글이 더 잘 써지지 않았다. 브런치에서는 연재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자동 메시지가 채찍처럼 날아왔다.
브런치북 응모 마감을 앞둔 주말, 응모 조건인 열 편의 글을 채우려면 아직 네 편의 글을 더 써야 했다. 토요일 아침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던 터라 집에서 글을 써볼 참이었다. 어떤 글을 쓸지 주제를 정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글의 얼개를 대충 생각하고 이제 막 도입부 한 문단을 겨우 썼는데 늦잠을 자고 일어난 둘째 아이가 침대 옆자리가 빈 걸 확인하고 엄마를 찾는다.
“응, 엄마 여기 있어. 잘 잤어?”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남편도 모처럼 주말 늦잠을 자고 일어나 화장실을 오가며 전날 밤 투석한 투석백을 비우고 복막투석을 준비 중이다. 제일 마지막까지 자고 있는 아들은 맛있는 음식 냄새를 풍기면 절로 눈을 뜨고 이불 밖으로 걸어 나올 터였다. 그래, 그만 쓰고 일어나서 점심 준비를 해야지. 점심은 뭘 하지? 머릿속은 금세 메뉴 고민으로 가득 차버린다. 주방으로 가서 일단 밥을 안치고 김치찌개를 준비해 가스불 위에 올려두었다. 밥이 될 동안 잠깐이라도 써볼까?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지만 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한 줄도 쓸 수 없다. 머릿속에는 온통, 밥과 김치찌개, 계란프라이 생각뿐이다.
“이제 남은 글 몇 편이야?”
점심을 먹으면서 남편이 물었다.
“네 편”
“그럼 응모는 어렵겠네”
남편의 말에 발끈하며 오기가 생겼다.
“아니야. 할 수 있어. 꼭 열 편 다 쓸 거야. 내 500만 원.”
남편이 웃었다. 밥을 먹고 남편에게 설거지를 맡겨두고 다시 컴퓨터 앞에 가서 앉았다. 그때 둘째가 오늘 뭐 하면서 놀 거냐고 내게 물어왔고, 동시에 나는 고 3인 첫째를 몇 시까지 논술 학원에 데려다줘야 하는지 시간을 헤아려보느라 머릿속이 온통 아이들 일정 생각으로 가득 찬다. 글쓰기는 또다시 저 멀리로 가버렸다. 일요일에는 아이들과 무한리필 대패 삼겹살도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도대체 글은 언제 쓴단 말인가.
내가 첫째 논술 학원을 차로 데려다줄 동안 남편은 둘째를 데리고 집 앞 키즈카페를 다녀오기로 했다. 엄마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조르는 아이에게 오빠 학원 데려다줘야 해서 안 된다고 해놓고, 첫째를 데려다주고 와서 조용할 때 얼른 아까 쓰던 글을 마저 쓸 생각이었다.
“키즈카페 잘 다녀와. 아빠랑 재미있게 많이 많이 놀고 와~”
아들을 30분 거리 학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글을 이어서 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키즈카페에서 놀기로 한 2시간이 벌써 다 된 것이다.
“재미있게 놀고 왔어?”
다시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아이를 맞이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콩밭에 가 있다. 아까처럼 식구들과 한 집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중에는 도저히 글이 안 써질 것이 뻔했다. 안 되겠다. 나가야지.
“응. 이것 봐. 아빠가 뽑기 많이 시켜줬어. 키카에서 친구들도 만났어. 재밌었어.”
아빠가 사준 초콜릿도 한 손에 들고 있는 딸은 기분이 한껏 좋아져 있다. 때는 이때다.
“그럼 샤워하고 잠깐 아빠 옆에서 책 읽거나 만화 보고 있어. 엄마 작업실 가서 글 좀 쓰고 올게.”
집에 있으면 또 저녁 식사를 차려야 하고, 먹고 치우고 나면 글을 쓸 시간도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다. 잠시 쉬러 침대에 누운 남편에게 좀 쉬다가 첫째가 학원에서 오면 셋이서 저녁 좀 챙겨 먹으라고 했다. 나는 일단 작업실에서 글을 쓰고 와서 늦게 먹든 굶든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 작업실에 가서 두 편을 쓰고 오고, 내일은 둘째가 성당에 가 교리 공부와 미사에 참여하고 있을 동안 나는 다시 작업실에 가서 집중하면 마감 시간까지 총 네 편의 글을 쓸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어떻게든 해내고 싶었다. 내가 마음 속으로 약속한 그 열 편의 글조차 써내지 못하면, ‘쓰는 사람’이 되겠다던 내 선언은 일상의 파도에 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파도가 오기 전에 얼른 다시 쓰자. 쓰는 사람이라고. 그런 다음 파도가 지나가면 그 위에 다시 또 쓰자. 그렇게 자꾸자꾸 다시 쓰는 사람이 되자.
그날 나는 계획과는 달리 한 편의 글을 겨우 쓰고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왔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음 날 오전부터는 눈 뜨자마자 바로 작업실에 나가 글을 썼다. 마감의 압박이 주는 몰입감은 놀라웠다. 그렇게 연 달아 두 편의 글을 쓰고 집에 잠시 돌아와 아이들과 삼겹살 집에 가는 약속도 지켰다. 배불리 먹고 작업실로 다시 가서 마지막 글을 써서 열 편의 글을 채웠고 프로젝트 응모를 했다. 열 편의 글을 써보겠다는 나의 목표는 달성했으니 이미 당선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마감의 힘은 그렇게 놀라운 것이었다. 문예창작을 전공하고도 20년이 넘도록 글을 쓰지 못하고 있던 사람에게 드디어 글을 쓰게 만드는 것. 마감이 그렇게 나를 쓰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