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교회 전도사입니다
진짜 사랑해야 하는 존재
예수님께서 교회가 가장 교회 됨을 나타낼 방법은 오직 "사랑"임을 말씀하셨다. 서로 사랑으로 몸 된 교회를 이루어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된 모습의 교회로 이루어 가는 것이 예배자의 참된 삶이라 알려주셨다.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모든 예배자들이 품어야 하는 참된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에 날마다 죄의 형상을 닮아 가는 우리를 뒤로 하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하나님의 형상을 기억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서로 사랑할 때, 사랑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이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과 생각에 선포되는 것, 바로 선한 능력이다.
서로 사랑하자며 말하는 교회가 오히려 각 개인이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많은 충돌이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진짜 교회의 모습은 잃어가기 시작한다. 예배팀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 명예로 변하기 시작하고, 설교자의 언변과 학력의 비례하는 정도를 계산하여 모두가 설교자의 오른팔, 왼팔이 되려고 발버둥을 치며 판단만이 가득한 교회가 되어간다. 그리고 충분한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으로 설교자가 되고 싶어 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는데 그 실수를 눈 감아주는 사람들의 모습에 큰 실망을 느끼기도 한다. 페르소나의 극을 달리는 곳이 교회였음을 예배팀, 목회자, 성도들을 통해 보았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곳으로 모이도록 하는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 교회는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왜 교회는 교회 밖에서도 사랑의 모습은커녕 시기, 질투만 가득한 모습만 보이는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묵상하다가 잘못 해석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씀을 읽지 않는다는 비겁한 변명을 하기 바쁜 교회가 되었다. 그리고 아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예배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적, 신앙적 멘토들이 SNS를 통해 비대면으로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결이 비슷한 사람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기준이 사라지고 포괄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들이 자신의 기준인 것처럼 오해하고,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아서 삶을 살아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기준이 되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내가 원하는 편안함, 평안으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신학이던, 신앙이던, 믿음이던, 삶이던 아무도 개인의 신학, 신앙, 믿음,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각 개인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각 개인을 시대를 향해 어떤 사람으로, 예배자로 만들어가실지 소망을 품고 하나님의 때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삶을 살아내야 한다. 하지만 궁중심리처럼 다수가 움직이는 곳으로 함께 움직여서 그것이 개인의 신앙, 믿음, 삶이라고 판단하게 되면 "자신(self or oneself, ego)"은 사라지는 것이다. 명예를 좇지 말고 영광을 쫓아야 하고, 노하우와 기술보다 지혜를 쫓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오늘날의 모든 예배자는 본질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너무 빠르게 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