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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다 Feb 20. 2018

셋. 마음을 끄는 그림 한 페이지

누구에게나 인생의 최고 명장면이 있다.


그 명장면은 내가 살아있는 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지만 나처럼 중년 즈음 이후부터는 큰 이변이 없는 한 그 장면이 바뀌기 힘들다는 걸 안다.

나에게도 그런 장면이 있다.

그건 그저 나만이 간직하는 장면이고 언제고 갑자기, 문득, 느닷없이 그 장면이 떠오르면 때로는 오열로, 때로는 감동의 눈물로, 때로는 회한으로 그렇게 다시 재생되어질 것이다.

그걸 나는 안다. 

이 그림책을 보면 나는 나의 그 '명장면'은 아니지만 꼭 그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헨리가 결국에는 자유를 찾았고 그 전의 삶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았을게 분명하지만 헨리의 인생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다시 돌아간다면 주저 없이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게 분명한 장면.

나는 목이 메었다.

비록 노예의 삶이었지만, 행복이 순간은 분명 존재했다.

나는 신을 부정하는 1인이지만 문득 '신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줄 그 무언가는 분명 존재해야 마땅한 것이니까.

그것이 꼭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그림책의 내용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림이 주는 여운은 책이나 영화에서 느끼지 못한 다른 무언가가 있다.


헨리 가족은 주인님이 사는 저택에서 일했어.

주인님은 친절하게 대해 주었지.

하지만 헨리 엄마는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이 보이니? 저 이파리들은 나무에서 떨어지게 될 거야. 어린 노예들이 가족과 헤어지게 되는 것처럼."


같은 풍경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느끼는 것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같은 엄마로서 나는 이 장면에서 가슴이 메어졌다.

어린아이를 안고 바라보는 풍경 속에, 그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엄마의 말이라는 게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그게 세상의 이치라는... 

아~~~ 아직도 이 세상엔 수 없이 많은 헨리의 엄마가 존재할 것이다.

그저 한 마디로 속.상.하.다.

내가 줄 수 없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도 해본다.


미국의 남북전쟁, 노예제 폐지 등은 과거 즉 역사 속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이 그림책이 아프다.

그리고 그 속의 몇몇 장면이 가슴에 박혔다.



- 꾸다꿈의 그림책으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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