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속에서 그려지는 삶 그리고 죽음
생명의 계절 봄이 오고 있습니다.
3월이니까 어쩌면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아직은 쌀쌀한 기운에 정신이 팔려 쳐다봐주지 않을 뿐.
하지만 또 시간이 흐르면 여름이 오고 다시 가을, 또 겨울이 올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생명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걸 알듯이 말입니다.
죽음이 오리 옆에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함께 했지만 오리는 알아 채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죽음을 발견한 오리는 당연히 놀랐지요.
자신을 데리러 왔냐고 묻습니다.
아니라고 합니다. 만일을 대비해서 곁에 있었답니다.
만일...이라....
만.일. 두 글자에서 저는 오래 머무릅니다. 그리고 그림을 봅니다. 죽음으로 형상화된 해골 사람을요.
그리고 슬며시 제 주위를 돌아봅니다. 누군가 곁에 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물론 눈으로 보이지는 않을 테지만 말입니다.
오리와 죽음은 친구가 됩니다. 친절한 미소를 띠고 무언가를 함께 하며 온기를 나누어줍니다.
친구란 어쩌면 가까운 곳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늘 먼 곳에 있는 친구만을 그리워했거든요.
시간이 흘러 오리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은 가만히 숨이 끊어진 오리 곁에 앉아 까칠까칠한 오리의 깃털을 매끄럽게 펴줍니다.
아~ 숨이 끊어진 내 곁에서 누군가 나의 흐트러진 어떤 모습을 이렇게 바로잡아주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런 일을 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기꺼이 나는 그와 친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해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의 제목입니다. 함께 하겠다는 누군가가 '죽음'이라니 오싹합니다.
하지만 그림책을 덮고 나니 그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있는 동안, 그 시간이 거의 다 소멸되어 가는 즈음에도 나의 존재와 함께 해 줄 누군가는 꼭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외롭고 지친 삶이지만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어느 날 문득 죽음을 맞이하게 될 우리지만 결코 슬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의미는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림책을 보았습니다. 다른 날 다시 이 그림책을 보게 된다면 나에게 다른 메시지를 줄 수 있겠지만요.
살면서 '함께'하는 많은 것들을 떠올려봅니다.
'만약'을 대비하여 함께 하는 어둡고 무섭고 두려운 존재들도 가만히 떠올려봅니다.
피하고 싶다고 하여 피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그저 조용히 나를 지켜봐 줄 겁니다. 서둘러 나서지 않고 말입니다.
친구니까요. ^^
아픔도 절망도 외로움도 슬픔도 모두 우리와 함께 하는 친구입니다.
친구가 있다는 건,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by ggu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