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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다 Mar 15. 2018

다섯.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단상

존재를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

수많은 별이 떠 있는 밤하늘을 본 게 언제였을까요?

저는 이십여 년 전 친구들과 선유도에 놀러 갔던 때의 밤하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고 친한 제 친구는 모기 때문에 엄청 짜증을 냈습니다. 그 친구는 결국 다음날 혼자 섬을 빠져나가 집으로 가버렸지요. ㅠㅠ

어쩌면 저는 그 친구를 따라나섰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이후 여차여차 그 친구와는 소식이 끊겼거든요. 아마 서운함이 컸을 겁니다. 

아무튼 저는 그 친구가 가고 난 그날의 밤하늘을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텐트를 쳤던 야산 중턱은 너무 더워서 한밤중에 남은 친구 셋은 바닷가로 나섰습니다. 

그때 올려다본 하늘. 

섬이라 불빛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밤하늘은 온통 작은 불빛들로 반짝였지요. 

아~~ 그때의 감동이란...


그 별들을 가끔 생각합니다.

비록 그 하늘을 다시 보진 못하지만 그 별들은 하늘에 그대로 떠 있다는 걸요.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그리고 내 존재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그리고 이제는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친구의 존재를 생각합니다.


인생을 닮은 그림들로 채워진 <별과 나>

어두운 밤에 홀로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자전거 헤드라이트 정도에 의지해서 말이죠.

사방은 작은 별빛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별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알릴 만큼의 빛일 뿐 어둠 속의 '나'에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전거 헤드라이트도 결국 고장이 나고 마네요. 그래도 계속 페달을 밟습니다.

아름다운 불빛, 반딧불이들을 만납니다. 황홀하고 신비롭습니다.

가로등 길도 만나고 도무지 눈을 뜰 수 없는 기차의 불빛도 만납니다.

아! 이건 뭔가요? 폭죽놀이. 화려하고 놀랍습니다.

아... 비가 옵니다. 별들이 비를 막아주어 '나'는 비를 맞지 않습니다. 

오르막길, 내리막길, 절벽을 지나쳐 허공을 달려갑니다. 별들이 길이 되어주네요.

그리고 갑자기 자전거 헤드라이트에 불빛이 켜집니다.

별들이 순간 사라졌고 순간 다시 반짝입니다.


별들은 여기서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봅니다.

나를 둘러싼 걱정, 근심, 일상, 소소한 즐거움, 행복, 나 자신.... 등등 이겠지요?

늘 존재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늘 나를 따라다니고 내 주변에 존재하는,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을 것이고 내 존재가 사라진 후에도 존재할 그 무엇.

하지만 종종 그 별들이 나에게 도움을 줍니다. 

내가 알아 채지 못하게, 알아챌 수 없게.

그저 나는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그 도움이 있건 없건 상관없지요.


인생이란 건 그런 걸까요?

수많은 존재 속에서 나를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예고 없이 찾아 오는 시련, 기쁨, 행불행을 묵묵히 견디며 페달을 밟는 것.

<별과 나>는 글 없는 그림책이라 더욱 여운이 남습니다.

보고 또 보며 가슴속에 장면 장면을 차곡차곡 쌓아두게 됩니다.

너도 별이고 나도 별이야

존재하는 것들은 다른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를 돕습니다. 그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존재'의 존재 이유(?)인 거지요. '돕는다'는 단어가 이상합니다만, 존재는 하나만으로는 의미가 없으니 다른 존재가 의미 있어지려면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는, 뭐 그 정도 의미일까요?

더 나은 존재 혹은 더 못한 존재는 없습니다. 좀 큰 존재, 좀 작은 존재는 있을까요? 별처럼.

존재한다는 건,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걸 겁니다.

별의 생명이 우리보다 좀 길긴 합니다만, 과학적으로 별도 언젠가는 소멸한다고 하니까요.

존재는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그 어떤 존재도 말이지요.

우리는 그래서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거지요. 존재하니까요.

우리는 모두 별입니다. 



<별과 나>의 뒤표지에는 

익숙하고 당연했던 것들 뒤에 가려진 아름다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가득한 밤하늘의 세계

라고 쓰여있네요. 

제 감상과는 사뭇 다릅니다. ㅎㅎ


by ggu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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