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역사] 3-4. 로마가 남긴 질문

실용성의 미명 아래 질문이 사라질 때

by 쑥갓선생

476년 9월 4일, 게르만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켰다.


열여섯 살 소년 황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름에는 로마의 시작과 끝이 모두 담겨 있었다. 로물루스, 로마를 건국한 전설적 왕의 이름. 아우구스툴루스, '작은 아우구스투스', 제국을 선포한 최초의 황제 이름의 축소형. 마치 로마의 역사 전체가 한 소년의 이름 위에 응축되어, 그와 함께 무대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


하지만 로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건물은 무너졌지만, 구조는 남았다. 라틴어는 중세 유럽의 공용어가 되었다. 로마법은 유럽 법체계의 뼈대가 되었다. 가톨릭교회는 로마 제국의 행정 구조를 그대로 물려받아―교구(diocese)라는 단어 자체가 로마의 행정 구역 명칭이다―중세를 관통하는 제도가 되었다. 도로는 여전히 쓰였고, 수도교 일부는 여전히 물을 실어 날랐다.


그리고 교육에 대한 하나의 관점도 남았다. 로마가 500년간 실천한, 그리고 그 이전 공화정 수백 년간 발전시킨 교육관. 이것이야말로 로마가 남긴 가장 보이지 않는, 그래서 가장 강력한 유산일지 모른다.


그 유산의 핵심은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된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로마의 답은 명확했다. 좋은 시민을 만드는 것. 제국에 유용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 퀸틸리아누스의 공식을 다시 떠올려 보자. '비르 보누스 디켄디 페리투스'―"선한 사람이면서 말 잘하는 사람." 법을 알고, 연설할 수 있고, 행정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 제국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서 제 기능을 다하는 사람.


그리스의 답은 달랐다. 적어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전통에서, 교육의 목적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었다. '좋은 시민'이 아니라 '좋은 영혼'을 만드는 것.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ho de anexetastos bios ou biōtos anthrōpōi)." 이 선언에서 교육의 목적은 사회에 유용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성찰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화된 대비다. 그리스에도 실용적 교육이 있었다. 스파르타는 로마 이상으로 시민을 국가의

도구로 훈련시켰다. 아테네의 소피스트들도 출세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쳤다. 반대로 로마에도 키케로처럼 진리를 탐구하려 한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주된 흐름은 분명하다. 그리스 교육의 중심에는 "왜"가 있었고, 로마 교육의 중심에는 "어떻게"가 있었다. 탐구가 목적이냐, 기능이 목적이냐. 이 두 가지 교육관은 이후 서양 교육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두 개의 극을 형성한다.


이제 이 로마적 교육관이 오늘날 어떤 형태로 살아 있는지 살펴보자.


한국의 어느 대학 입학식을 상상해 보라. 총장이 연단에 선다. 신입생들에게 환영사를 한다. "여러분은 국가의 미래입니다." "여러분은 글로벌 인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대학은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춘 인재를 길러낼 것입니다." 이 말들의 구조를 분석해 보자. 교육의 목적은 '국가'와 '산업계'에 봉사하는 것이다. 학생은 '인재'다. 인재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퀸틸리아누스의 공식을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다. "선한 사람이면서 말 잘하는 사람" 대신 "글로벌 역량을 갖춘 산업 인재."


이 총장의 연설에서 빠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진리를 탐구하러 왔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아직 아무도 답하지 못한 질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졸업할 때, 여러분은 세상이 제공하는 답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들린다 해도 수사적 장식일 뿐, 교육과정의 실질적 설계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교육부의 정책 문서를 읽어보면 더 선명하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재 양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는 교육 혁신." "산학협력 강화." "취업률 제고." 모든 문장의 주어는 '국가'이고, 교육의 목적은 '국가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 제국이 태학을 운영한 논리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한나라의 태학이 오경을 가르쳐 관료를 길러낸 것과도, 조선의 성균관이 사서를 가르쳐 과거 합격자를 배출한 것과도 같은 구조다. 국가가 교육의 목적을 정하고, 교육 기관이 그 목적에 맞는 인재를 생산한다.


이것이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인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기능이다. 의사가 필요하면 의과대학이 있어야 하고, 법률가가 필요하면 법학대학원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교육의 '유일한' 목적이 될 때 생긴다. 사회에 유용한 인재를 기르는 것과,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을 기르는 것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때.


그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하나의 문장이 있다.


"그게 쓸모가 있느냐?"


이 문장은 교실에서, 가정에서, 정부 회의실에서, 대학 본부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학생이 철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면. "그걸 배워서 뭘 하려고?" 아이가 별을 관찰하며 "왜 별은 빛나요?"라고 물으면. "그건 시험에 안 나와." 대학에서 기초 과학 연구에 예산을 요청하면. "산업적 활용 가능성은 있습니까?" 인문학과의 존폐를 논의하면. "졸업생 취업률이 어떻습니까?"


"그게 쓸모가 있느냐." 이 질문의 힘은 그것이 합리적으로 들린다는 데 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모든 것에 투자할 수는 없다. 쓸모 있는 것에 먼저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로마인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수도교를 지어야 하는데 "왜 물이 흐르는가"를 탐구할 여유가 어디 있는가. 군대를 이끌어야 하는데 "정의란 무엇인가"를 토론할 시간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이 합리적으로 들리는 질문이 반복될 때마다, 질문의 공간은 조금씩 좁아진다. "쓸모 있는 것"의 정의는 언제나 현재의 필요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늘 쓸모 있는 것이 내일도 쓸모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반대로, 오늘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내일의 혁신이 될 수도 있다.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했을 때, 영국 재무장관이 물었다.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패러데이가 대답했다. "각하, 조만간 그것에 세금을 매길 수 있을 것입니다." 전기였다. 오늘날 인류 문명의 기반. 하지만 발견 당시에는 "쓸모 없는" 호기심에 불과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이 발표되었을 때, 그것이 쓸모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 GPS 위성은 상대성이론의 보정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을 때마다 우리는 한때 "쓸모없는" 질문의 수혜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실용성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당장의 실용만 추구하면, 장기적인 혁신을 잃는다. 그리고 장기적인 혁신은 거의 언제나 "그게 쓸모가 있느냐"는 질문을 견뎌낸 '쓸모없는'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로마는 이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로마는 기술의 정점에 있었지만, 새로운 과학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수도교를 지었지만 유체역학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콘크리트를 발명했지만 화학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기술은 있었지만 이론이 없었고, 이론이 없었기 때문에 기술은 그 자리에 머물렀다.


이 로마적 유산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현대적 제도가 있다. 국립대학이다.


대학의 기원에 대해서는 4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여기서 한 가지를 미리 짚어두자. 근대 대학에는 두 가지 상반된 이상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


하나는 훔볼트적 이상이다. 빌헬름 폰 훔볼트가 1810년 베를린 대학을 설립하면서 제시한 원칙. 대학은 연구와 교육이 통합되는 장소다. 교수는 자유롭게 연구하고, 학생은 그 연구에 참여하며, 국가는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대학의 목적은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적 이상의 근대적 부활이다. 플라톤의 아카데미가 국가 기관이 아니라 독립적인 탐구 공동체였던 것처럼, 훔볼트의 대학도 국가로부터 독립된 지적 탐구의 공간이어야 했다.


다른 하나는 제국적 이상이다. 대학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국가가 재원을 제공하고, 대학은 그 대가로 사회에 유용한 전문인력을 배출한다. 이것은 로마적 이상이다. 태학이 오경 박사를 두고 관료를 양성한 것, 로마의 수사학 학교가 법률가와 행정가를 배출한 것의 현대적 버전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립대학은 이 두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그리고 갈등의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는, 솔직히 말하면, 꽤 분명하다. 대학 평가 지표를 보라. 취업률, 산학협력 실적, 기술 이전 수입, 특허 건수. 이 지표들은 모두 "대학이 사회에 얼마나 쓸모 있는가"를 측정한다. "대학이 얼마나 깊이 있는 질문을 던졌는가"를 측정하는 지표는 없다. 논문 수나 인용 수가 그 역할을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논문의 양과 질문의 깊이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기초 과학과 인문학의 위축은 이 경향의 직접적 결과다. "그게 쓸모가 있느냐"의 논리가 대학을 관통할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당장의 쓸모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야다. 철학과, 사학과, 문학과, 물리학 이론 연구, 순수 수학. 이 분야들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정원이 줄고, 예산이 삭감되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반면 경영학, 컴퓨터 과학, 공학, 의학 같은 "실용적" 분야는 팽창한다. 대학이 점점 더 직업 훈련 기관에 가까워지고 있다. 로마의 수사학 학교가 웅변가와 법률가를 배출한 것처럼.


여기서 한 가지 역사적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과학혁명이 일어난 곳은 직업 훈련 기관이 아니었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하늘에 들이댄 것은, 더 좋은 항해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목성 주위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쓴 것은, 더 정확한 포탄 궤적을 계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왜 달은 떨어지지 않는가"를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닌 것은, 더 나은 축산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왜 이렇게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는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도약들은 거의 예외 없이 "쓸모없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만약 갈릴레이에게 "그게 쓸모가 있느냐"고 물었다면, 그가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답했다면, 그래서 망원경을 내려놓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안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로마는 이 "쓸모없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은 문명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금지한 것은 아니었다. 키케로가 철학서를 쓴다고 해서 처벌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무게중심이 실용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기에, "왜"를 묻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리고 주변부로 밀려난 질문은 결국 사라졌다.


3장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로마는 질문이 불필요한 문명이었다. "왜"보다 "어떻게"를, 탐구보다 기술을, 철학보다 법률과 공학을 우선시했다. 키케로는 질문의 등대를 지키려 했지만, 포럼의 연단 위에서 침묵당했다. 스토아 철학은 살아남았지만 내면의 위안으로 축소되었다. 기독교는 새로운 질문을 가지고 왔지만,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교리로 닫혔다. 교육은 훈련이 되었고, 훈련은 기존 체제를 재생산하는 데 최적화되었다.


그리고 이 유산은 오늘 우리 안에 살아 있다. 대학이 취업률로 평가받을 때, 학생이 "그건 시험에 나오나요"라고 물을 때, 정부가 "산업적 활용 가능성"으로 연구비를 결정할 때, 부모가 아이에게 "그걸 배워서 뭘 하려고"라고 말할 때.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로마의 언어를 쓰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로마가 무너진 뒤, 질문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외의 장소에서 살아남았다. 수도원의 어두운 필사실에서, 양피지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베껴 쓰는 수도사의 손끝에서. 그리스어 원전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이슬람 학자의 서재에서. 비잔티움의 도서관에서. 질문은 겨울잠에 들었다. 그리고 수백 년 뒤, 르네상스라는 이름의 봄이 왔을 때, 다시 깨어났다. 그 이야기를 4장에서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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