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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키키 Jun 02. 2020

젠가를 쌓아 올리듯이  

김혜진 <9번의  일>

50대 통신회사의 현장직인 주인공은 퇴사를 종용받는다. 하지만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들, 마트에서 일하는 아내, 병치레가 잦은 양가 부모, 노후를 위해 산 빌라 건물의 대출금 때문에 계속 일을 하기로 한다. 회사는 그런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그가 하루라도 더 일하는 것이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하루라도 더 일을 하려고 애를 쓴다. 그에게 어떤 업무가 주어지더라도. 그는 그저 회사의 78번 구역의 '9번' 일 뿐이다. 


이봐요.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알 필요도 없고요.
통신탑을 몇 개나 더 박아야 하는지, 백 개를 박는지, 천 개를 박는지,
그게 고주파인지 저주파인지 난 관심 없어요.
나는 이 회사 직원이고 회사가 시키면 합니다. 뭐든 해요.
그게 잘못됐습니까?
(p.203-204)


젠가를 쌓아 올린다. 아랫부분의 나무 조각을 빼서 위에 쌓는다. 시간이 갈수록 쌓은 탑은 높아졌지만 곧 무너질 듯 위 태위태 하다. 거의 마지막 무렵에는 한 조각을 빼는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겨우 조심스럽게 빼어 올려놓고 탑이 무너지지 않으면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이번 턴에서는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하며 또 다가올 다음 턴을 숨죽이며 기다린다. 조금만 실수해도 공들여 쌓은 젠가는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김혜진 작가의 <9번의 일>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위태로운 젠가 탑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뭐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이미 시작해 버린 젠가 게임은 오늘도 무사히 이번 턴(Turn)만 넘어가길 바랄 뿐이다. 



뉴스에서 실업자 수를 그래프로 보여준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그래프의 높이는 몇 센티 더 높아졌다. 몇 센티 높아진 그래프의 길이 속에는 얼마나 많은 '9번' 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지 쉽사리 짐작이 안된다. 몇 센티로 표시되어 버리는 경제 그래프는 힘겹게 쌓아 올린 보통의 삶들이 무너져 버리는 처참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는 조심스럽게 젠가를 쌓는다. 20년 뒤, 30년 뒤 그동안 쌓아 올린 젠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지 않기만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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