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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Mar 11. 2020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소도시의 매력을 깨달아 가는 중

두려운 마음이 앞서서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소도시의 매력을 새삼 깨달아 가고 있다. 동양인이 별로 없어서, 불친절하고 조그마한 도시가 답답해서 매일 툴툴거렸는데. 오스나부르크 생활 3개월 만에 집 근처 카페에 처음 발을 딛었다. 왜 이제서야 와 본 거지? 너무 근사하다. 빛바랜 나무 의자와 책상도 좋고, 음악 대신 사람들의 대화소리만 잔잔히 들려오는 것도 좋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것도 이곳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서로의 말에, 커피에, 또는 책을 읽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으니까.



카페라떼와 파운드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카운터에 서있는 두 여자는 서로 자매인 것 같다. 머리칼의 색과 이목구비 분위기가 너무 닮았다. 그 중 한 분이 친절한 얼굴로 내게 커피를 가져다줬다. 커피를 주문하니 내어주는 작은 쿠키도 그저 귀엽다.




카페 2층에서 보이는 소소한 풍경도 예쁘다



한참 동안 일기를 쓰고 공부를 한 뒤 한껏 상쾌해진 기분으로 카페를 나온 뒤 자전거를 끌며 천천히 동네를 걸었다. 저번엔 뭣도 모르고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경찰의 "Absteigen!"이라는 외침을 듣고 뻘쭘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사전에 그 단어를 검색해보니 자전거에서 내려오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자전거에서 내리기는커녕 더 빨리 페달을 밟아 쌩 도망가 버렸으니. 경찰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지.




이 도시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거리


학교 앞 넓은 공원과 분수대



천천히 걷다 보니 이제야 보인다. 이 도시는 굉장히 아늑하고 소박한 도시였다는 걸. 적당한 인파의 사람들, 버스킹을 하는 사람, 문을 활짝 열어둔 길가의 가게,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4층 정도의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푸르른 나무가 많아 어딜 가도 시원한 그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왜 항상 사람이 많은 길에선 괜히 움츠려들어 페달을 빨리 밟기 바빴던 걸까. 뭐가 그렇게 겁이 났을까.



초반에 당한 몇 차례의 인종차별이 너무 강렬해서 이곳의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 한국에선 혼자서도 잘만 돌아다녔으면서 이곳에선 겁이 먼저 앞섰다. 혼자서 동네 구석구석을 걷는 일도 무서웠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그 차가운 시선이, 이유 없는 조롱이 두려웠다.



나는 작은 것에 쉽게 겁먹고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이곳에 와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남들보다 아주 많이 그렇다. 조금만 날이 어두워지면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고, 하루에 서너 번은 들려오는 구급차 소리가 공포스러웠고, 밤늦게 무리로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경계했고, 직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까 봐 늘 긴장했다. 내가 독일어를 더 잘했더라면. 독일어를 소홀히 대하면서 그들에게 친절함을 원했던 내가 더 오만한 걸지도 모르다.



이런 내가 교환학생을 온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그렇게 겁쟁이면서 왜 그렇게 간절했던 건지. 오로지 호기심만이 나를 결국 이곳까지 이끌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 때문에.




언제 보아도 예쁜 우리 학교 본관 건물.




어쨌든, 오늘은 그래도 의미 있는 하루였다. 아까 갔던 카페도 갈지 말지 집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나왔던 건데. 안 갔으면 평생 이 기쁨을 알지 못했겠지. 앞으로 나의 단골 카페가 될지도 모른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차분한 이곳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여름은 벌써 코앞에 와 있다.


2018년 6월 19일.






그렇게 나는 오스나부르크를 떠나기 전까지
그 카페를 열심히 들락날락했다
더 많이 가지 못한 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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