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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 Mar 18. 2024

오 마이 갓!

하나님 세상에 정말로요?

바람을 가르는 화살처럼 언제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건만 유독 새해의 첫 달은 시간이 더욱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해가 바뀌었다는 사실과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사실은 단지 숫자가 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한 내가 서 있어야만 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하지만 일기장 위에 쓰이는 숫자만 변했을 뿐 여전히 그대로인 나를 바라보며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결국 모두 소중한 나라며 다독여본다.


해가 바뀌면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된 탓일까 올해의 첫 달은 유난히 피곤했다. 다들 그렇다시피 업무든 공부든 기존의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는 사실은 낯선 것에 대한 설렘과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기 마련이고 이러한 약간의 스트레스는 피로감이라는 친구를 데려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해를 맞이하여 크로스핏 운동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남편을 위해서 퇴근 후에는 운동 통역을 다녔더니 거의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일하는 기분이었다. 이러니 피곤하지 않을 리가..


이것이 바로 K-직장인의 만성피로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은 자주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잠은 눈치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쏟아졌다. 한편으로는 꼭 생리 전 증후군과도 맞먹는 피로감을 느끼며 '왜 집을 짓고 안 무너뜨리는 건데! 빨리 생리해서 병원 가서 약 먹어야 한다고!' 라며 애꿎은 아랫배만 노려보곤 했다. 그러다가도 '어련히 불규칙했는데 이번 달은 더 늦어지나 보네 아이 모르겠다 때 되면 하겠지 뭐~'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긴 했지만.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가지고 있어서 규칙적으로 생리를 하지 않는 나였지만 간혹 하는 생리는 대부분 생리 전 증후군을 동반했던 터라 가끔씩 생리가 찾아올 때마다 나의 몸에서는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세 가지 반응이 있었다. 1. 아랫배가 싸르르하게 아픈데 안 아픈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아픈 것도 아닌 것이 알게 모를 싸한 기분을 안겨주는 아랫배 통증 2. 평소와 다르게 예민해지고 부풀어져서 살짝만 스쳐도 찌릿하게 아픈 가슴 통증 3. 이유 없이 자주 느껴지는 피곤함.


몇 주 동안 이런 현상들을 겪으며 언제 시작하려나 오매불망 생리만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날, '어라? 아무리 생리 전 증후군이라지만 내가 살면서 이 정도로 가슴이 예민했던 적이 있었던가?' 라며 가만히 거울 속 모습을 바라보다가 내 몸이 조금 이상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기상 임신은 아닌 것 같은데 묘하게 이러한 증상들이 설마 임신인 것인가 싶은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화장실 다녀오다만 듯한 이 찝찝함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속 편하게 살려면 생리가 맞다는 확신을 얻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임신 테스트기를 구입했다.


오후 시간대에 테스트가 가능한 배란 테스트기와는 달리 임신 테스트기는 아침 첫 소변을 활용해야 정확도가 높게 나온다. 잠도 다 깨지 못한 채 비몽사몽 한 두 눈으로 화장실을 찾아가며 늘 오후 시간대에 배란 테스트기만 주야장천 쓰다가 의미 없으니 사용하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어딘가 구석진 곳에 방치해 버리고 처음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하는 이 기분은 사뭇 묘했다.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칫솔질을 하다가 얼핏 바라본 테스트기는 확신의 한 줄이었고 '역시 생리 맞네'라며 남편을 깨우러 갔다. "오빠 나 이번에 몸이 이상해서 테스트기 해봤는데 역시 한 줄이야" 눈 뜨자마자 "일어나"도 아니고 이렇게 길게 말하는 나를 바라보며 여전히 사태파악이 되지 않은 것인지 남편은 그저 말없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렇게 둘 다 잠도 다 깨지 못한 채 다시 확인한 임신 테스트기는 두 줄이었다.


두 줄..

응... 두 줄....?

두 줄?!

아니 왜 두 줄?

진짜로 두 줄?

초 집중해서 보아야 하는 거 아니고 그냥 봐도 두 줄?

왜?????????????


5분이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분명 선명했던 한 줄은 옆 자리에 고스란히 한 줄을 더 만들어놨었고 남편과 나란히 서서 함께 확인한 테스트기는 '누가 봐도 두 줄=응 당신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우리 두 사람에게 얼떨떨함을 선사했다.


다양한 매체를 보면 다들 임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기뻐서 방방 뛰거나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데 막상 우리 앞에 닥친 테스트기 두 줄은 '이게 뭐야? 임신 맞아? 왜 임신이야?'라는 의문만 남겨주었다. 무엇보다도 임신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첫날에는 반신반의하다가 그다음 날 다시 임신 테스트기를 했을 때도 두 줄이 나온 것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테스트기 상으로는 확실히 임신이 맞다는 것을 차츰 인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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