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과연 청인들만의 소유물일까요?
미국의 <슈퍼볼 하프타임 쇼>라는 행사에서 가수 리한나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서 수어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 수어통역사 저스티나 마일스가 이슈였던 적이 있다. 처음 그녀의 영상을 보았을 때 나는 아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처럼 아주 작은 동그라미 화면 속이 아니라 리한나 바로 옆에서 5:5의 비율로 영상이 나온다는 점 그리고 리한나가 어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지 생생하게 느껴지는 저스티나 마일스의 생동감 넘치는 수어가 너무 멋졌기 때문이다.
불현듯 생각났다. 한국에도 이렇게 멋지게 수어로 노래를 할 줄 아는 농인들이 있다는 것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영상으로 종종 접하는 농인 예술단체 <핸드스피크>. 이들은 노래를 수어로 표현하는 단체로서 그들의 수어 노래는 저스티나 마일스만큼이나 힙하고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같은 농인으로서 너무 멋지게 활동하는 그들을 보면 가슴이 웅장해진달까 농인들도 음악을 즐길 줄 안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서 새삼 깨닫는다.
농인들이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음악을 즐길 수 있냐고 의아해한다. 잘 알다시피 청각장애인이라 해서 모든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청력의 잔여정도에 따라 들을 수 있는 정도가 저마다 다양하기 때문이다. 수술을 한 사람들은 보조기기를 활용하여 음악을 듣고, 보청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보청기가 키워주는 소리를 통해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전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뿌연 안개 같은 것이 자욱하고 현란한 조명이 이리저리 빛나는 클럽에 들어서면 귀가 얼얼하게 느껴질 정도로 쿵쿵거리는 음악이 들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흥겨운 비트에 맞춰 울리는 진동이 몸속 세포 하나하나를 일깨우듯이 둥둥거린다. 이처럼 강렬한 음악 진동은 듣지 못하는 농인들도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한다.
클럽뿐만 아니라 농인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차 안에만 타도 창문을 모두 닫고 음악을 크게 틀면 그야말로 그곳이 우리들만의 클럽이다. 자동차 안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지루한 운전을 한껏 신나게 끌어올려주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농인들은 귀에 이어폰을 착용하고 소리를 최대로 올려 귓가에 울리는 진동으로 음악을 즐기기도 한다. 청력이 저하될까 걱정할 것 없이 언제든 본인이 원하는 흥겨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것은 감각으로 음악을 느끼는 농인들만의 특권이다.
무엇보다도 청인들이 노래가사를 말로 듣는다면 농인들은 농인의 언어인 수어를 통해 본다. 노래가사를 리듬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면서 수어로 표현하는 그 순간, 노래는 귀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된다. "도대체 노래가 어떻게 눈앞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거야?" 믿기지 않는다면 폴킴의 <너를 만나>라는 노래를 수어 버전으로 한번 보시길 바란다.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만큼이나 부드러운 손짓이 노래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잘 나타내고 있다.
사람들은 음악을 소리로 듣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음악이 들린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소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나는 음악이란 소리를 넘어 몸과 마음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음악을 들었을 때 아무리 신나는 음악이 귓가에 울리더라도 와닿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사운드가 아니라도 음악은 우리를 얼마든지 움직이게 한다.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손가락으로 무릎을 톡톡 치는 순간, 날카롭게 각 잡힌 양복을 입은 무뚝뚝 사람조차 책상 아래서 발끝을 까닥거리게 만드는 순간들이 바로 음악이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순간들이라 할 수 있다.
음악을 소리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바라보면 음악은 더 이상 청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청인과 농인 구분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이 된다.
리한나의 노래를 멋지게 통역하는 저스티나 마일스처럼 '아, 노래가사를 수어로 통역하고 있네'가 아니라 '와! 리한나가 저렇게 노래 부르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생생하게 표현하는 수어통역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에도 수어통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들이 늘고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는 음악프로그램이 늘어나야 하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신호대기 중 열린 창문 틈새로 새어 나오는 강렬한 음악소리에 '저 차주는 농인인가 보네'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를, 유명한 가수 싸이의 콘서트에서 "음악에 미치는 네가 챔피언!"이라고 외치는 싸이만큼이나 파워풀하게 수어를 하는 통역사들을 볼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앞에서 누가 청인이고 누가 농인인지 모르게 수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순간을 즐기는 농인들이 많아지기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