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임을 받아들임
당신은 당신의 생각을 얼마나 억제할 수 있습니까?
궁금하다면 지금부터 아래의 사고 실험을 따라 해 보세요.
당신은 지난 일주일 동안 코끼리를 얼마나 떠올렸나요?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몇 번이든 상관없습니다.
지금 그 코끼리를 잠시 머릿속에 떠올려봅니다.
자 이제 5분 동안 코끼리를 절대 생각하지 않도록 하세요.
여유가 있다면 타이머를 맞추고 시간을 꼭 지키시길 권합니다. 코끼리 떠올리기 외에는 어떤 것을 해도 괜찮습니다.
5분이 다 지났나요?
당신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동안 코끼리에 대한 생각이나 이미지가 머릿속에 몇 번이나 떠올랐나요?
5분 동안 단 한 번도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남들보다 뛰어난 엄청난 억제 능력을 소유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지시에 매우 충실히 임하는 성격의 소유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사고를 얼마나 억제할 수 있는가를 테스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반대로 생각을 억제하려 하면 할수록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체험적으로 깨닫기 위한 것이 목적입니다.
보통 우리가 일상에서 코끼리를 떠올릴 일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 생각이 더 나는 것이지요. 떠올리지 않으려면 다른 생각으로 열심히 회피를 해야만 합니다.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는 인지행동치료의 제3세대 치료 모델로, 심리적인 고통을 싸워서 이기거나 물리쳐 없애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수용해야 할 삶의 필수 조건으로 바라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크고 작은 고통을 피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온전히 체험하고 수용해야 할 경험으로 보는 것이죠.
따라서 이전 심리 치료 모델에서 심리적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어 이것을 고치고 수정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봤다면, 수용전념치료에서는 이 같은 노력 대신 고통을 체험하고 마음챙김하며 관찰하여 흘려보낼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합니다. 이는 인간의 고통이 언어를 기반으로 구성되고 개념화되어 사람들의 의식에 붙들려있는 동안 주관적 고통이 더욱 심화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코끼리 실험은 이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입니다. ‘고통’을 절대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이에 대한 생각을 억제하는 데 더 큰 에너지가 쓰일 뿐 아니라, 억제하려 할수록 생각은 더욱 거센 힘으로 되돌아옵니다.
수용전념치료에는 고통을 마주하는 자세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은유들이 있습니다. 그중 또 한 가지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지금 괴물과 힘겹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 앞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놓여있습니다. 줄은 매우 팽팽하고 당신은 힘이 점점 빠져갑니다. 이대로 가다간 구덩이에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만약 당신이 위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장 현명한 답은 괴물과의 줄다리기를 중단하고 지금 당장 줄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도 분명하고 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큰 문제, 괴물과의 사투를 벌이느라 바로 앞에 있는 구덩이를 보지 못한 채 계속 그 괴물에 매달려 있는 것이지요. 그러는 사이 줄을 놓을 타이밍을 놓치고 결국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줄을 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단순한 이유는 ‘줄을 놓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줄을 놓는다는 것이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줄을 놓는다는 것, 내가 들고 있던 문제, 고통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현 상황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고통을 즐기는 인간은 없으니까요. 인간은 아픈 걸 무지하게 겁내 하고 싫어하는 족속입니다. 오죽하면 술이나 담배, 약물처럼 고통을 줄이고 회피하기 위한 여러 가지 도구들을 만들어냈을까요.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고통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것을 정면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이것이 의식에서 자연히 흘러가게 됩니다. 마치 잔잔히 흐르는 강물 위에 떠 있는 낙엽처럼 흘려보내는 겁니다. 그런 상상을 해봐도 실제로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흘려보낸 고통이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일찍이 부처님이 통찰하셨듯 인생은 고해, 고통의 바다이니까요. 또 다른 고통이 계속 밀려들어올 겁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또 흘려보내는 겁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지긋한 나이가 되어 있겠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받아들임의 마법을 삶에서 경험해 보았습니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줄을 놓지 못하고 있던 마지막 최후의 벽에 다다르니 거기엔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억울하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고통을 가지고 그동안 그렇게 힘겹게 살았는데, 나보고 이걸 그만 내려놓으라니, 너무 억울한 겁니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데 혼자서 말이죠. 그렇게 제 생각의 끝까지 다다르니 그게 얼마나 바보 같고 어리석은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저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이 그토록 오래 싫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나 자신이 문제라고 여겨진다면, 내가 만들어내는 주관적인 고통에 허우적대고 있다고 느낀다면, 이 받아들임을 받아들여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단, 고통을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억지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니, 진심으로 내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눈을 감고 누워서 맑게 흐르는 강물을 떠올리고, 그 위에 호젓이 떠가는 낙엽을 그려보세요. 그 위에 나의 코끼리, 고민, 짐 덩어리, 스트레스, 고통, 혹은 즐거움, 행복감, 그 무엇이든 올려놓고 흘려보내 보세요. 무엇이든 우리에게 그렇게 왔다가 흘러간다는 것을 한 번 느껴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