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는 글
일곱 살 때 처음 먹어본 한여름 팥빙수. 달달하고도 시원하고 얼음이 와글와글 씹히는 그 맛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홀로 자취하며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던 시절, 어느 가을날의 따사롭고 안온한 햇볕이 걷고 있는 내 얼굴에 드리우던 그 따듯한 느낌을 여전히 종종 떠올린다.
사실 나는 기억력이 정말 좋지 않은 편이다. 특히 구체적이고 세세한 것들에 대해선. 거의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그날의, 그 사건의 분위기와 느낌만 아련하게 남아있다. 그런 내가 신기하게도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들은 많은 경우 내가 몸으로 보고, 듣고, 맛보고, 만져본 감각적인 경험인 것 같다.
엊그제 남편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건물 앞에 선 순간 내가 이곳에 십여 년쯤 전에 왔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의 차가웠던 날씨와 뼛속 깊이 파고드는 진한 한기가 지금 느끼는 것과 똑같다는 사실도 생각났다. 내가 그동안 살면서 경험한 직간접적인 죽음은 대게 추운 가을과 겨울에 찾아왔다.
남편의 외할머님은 오랫동안 치매를 앓고 계셨다. 남편과 한 번씩 찾아뵐 때마다 잊을 수 없는 세 마디 단어를 들려주셨다. 결혼 전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는 나를 보고 "고맙네“라고 하셨다. 임신 소식을 알려드렸을 때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잘혔네"라고도 하셨다. 봄이 오더니 어느새 겨울인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쇠잔해 가시던 외할머님은 백 세 가까운 연세에 늘 계시던 집에서 마지막 숨을 크게 뱉으시고 눈을 감으셨다.
나는 예민해진 아이가 징징대는 통에 민폐가 될까봐 입관식에는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만져볼 그 몸이 얼마나 얼음장처럼 차가울지는 잘 알고 있다. 몸의 기억은 잘 잊히지 않는다. 오늘처럼 이따금 그 기억이 찾아오는 날에는 잠시 멈춰 서서 가만히 들어본다. 찾아온 기억이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사람이 오갈 때 눈이나 비가 오면 좋은 징조라고 했는데, 할머님 발인인 오늘은 온종일 비가 나긋나긋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