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는 글
우리 집 남편은 귀가 시간이 늦다. 밤늦은 시간, 때론 새벽까지 일을 하다 들어오기 때문에 아이는 평일 저녁에는 아빠를 보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 아빠를 깨우러 간다. 오늘은 눈이 많이 내린 덕분(?)에 남편이 일찍 귀가하는 깜짝 이벤트가 있었다. 아이에게 줄 저녁을 준비하느라 콩나물을 함께 다듬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인가 잘못 들었겠지. 싶은 순간 중문이 드르륵 열리고. 남편이 짜잔-하고 나타났다. 아이와 나는 모두 깜짝 놀라 기쁨의 소리를 지르며 남편의 귀갓길을 열렬히 환영했다.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먼저 손을 흔들며 아빠를 반기는 모습에 내 마음이 일렁였다.
짧은 찰나였지만 아주 선명하고도 확실한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싶은 순간이었다. 돌아갈 아늑한 곳이 있다는 것, 반겨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벅찬 인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문득 오늘 남편의 깜짝 귀가 이벤트를 맞으며 내가 가지고 있었음에도 당연하게 여기고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늘 갖고 있는 것보단 갖지 못한 것, 해야 한다고, 채워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내 인생을 꽉꽉 채우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부족함과 결핍을 동력으로 삼아 일상을 꾸려나가다 보니 때때로, 아니 자주 불안하고 긴장하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가진 것들은 이미 충분한데, 그것들을 미처 알아보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 막막한 미래만 곁눈질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잘 알아보고, 감사하며, 그 기쁨을 내 삶의 동력으로 삼아 살아가보면 어떨까.
문득. 어느 날 갑자기. 늘 돌아가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누군가의 귀갓길이 떠올라 슬픈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