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는 글
녀석이 성큼성큼 걸어온다. 단단해진 두 발로 내 허벅지를 하나씩 딛고 차지하더니 머리를 숙여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 들어 올린다. 그러곤 자기 얼굴을 갖다 대고 부비적 부비적 하염없이 비비적댄다. 내가 웃으며 "에이그. 모하는 거야." 하며 고개를 흔들면 다시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번쩍 잡아 부비적 부비적.
두 돌이 다 되어 가는 아이는 이제 엄마를 더 이상 예전처럼 자기와 한 몸, 한 세트하고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대신 엄마를 자신과 동떨어진 한 존재로 받아들이고(그로 인해 죄절하고 울적하고 짜증도 내고 슬프기도 하지만)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가 친밀감을 느끼고, 사랑을 받고,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엄마와 자기를 항상 같이 있는 동일한 존재로 여기다 저 홀로 떨어진 신세가 되었으니, 저 조그만 아이의 마음엔 지금 어떤 상실의 열매가 맺어졌을까. 엄마인 나는 짐작해 보지만 가늠할 길이 없다.
남편과 내가 아침에 식사 준비 하면서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꺄아" 소리를 내며 싫어하는 내색을 하는 걸 보면, 저 혼자 소외되고 외롭고 싶지 않은 그 처절함이 얼마나 큰 것인 걸까 상상해 보지만. 역시나 짐작만 할 뿐 아이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나는 나고, 너는 너이기에.
남편과 대화가 단절되다시피 하면서 며칠을 보내고 나니, 아이의 조그만 떼에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마흔이 넘은 어른인 나도 이렇게나 단절감, 외로움에는 정신이 빈약하고 초라해지는데. 이제 세상에 나온 지 겨우 두 해가 되어가는 아이에게는 잠시동안의 그 소외감, 단절감, 외로움이 얼마나 괴로운 것일까.
오늘 아이는 엄마와 난생처음으로 떨어져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안겨 교실로 올라갔다. 발버둥 치며 우는 아이에게 "선생님하고 잘 놀고 있어. 엄마 시계 반 바퀴만 지나면 금방 올 거야"하며 손을 흔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얼얼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어린이집 밖으로 어린 아기들이 엄마를 찾으며 소리 지르고 우는 소리가 여기저기 왕왕 울려 퍼졌다.
오늘 아이가 엄마 없이 어린이집에서 보낸 40분은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내내 선생님 품에 안겨 놀았다는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힝-힘들었다는 듯 소리 내며 두 팔 벌려 안겼다. 그리곤 내 얼굴을 한 번 보고, 손으로 내 가슴을 탁탁 두드리며. 엄마가 왔음을, 지금 자기 옆에 있음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