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의 기적

by 배우는 여인
"우린 끝까지 싸울 것이다" 살아남는 것이 승리다!


1940년 5월, 독일군은 영국 해협을 향해 서쪽으로 밀고 나갔고, 그 과정에서 연합군은 둘로 갈라져 영국군은 퇴로를 차단당한 채, 해안에 고립되고 말았다. 영국군 사령관이었던 육군 원수 고트 경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사명은 병사들을 구출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린 뒤,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해안으로부터 철수 계획을 세웠다.

다이나모 작전, 고트는 남쪽 측면의 칼레와 불로뉴를 희생하여 독일군 탱크들이 해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저지시킨 뒤 경계선을 설정했다. 계속해서 옥죄어오는 이 경계선 뒤로 영국 해군은 프랑스군과 함께 덩케르크 항구와 인근 해안으로부터 철수할 수 있었다. 독일 공군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철수하는 군대나 이들을 나르는 선박은 거의 보호받을 수 없었지만, 5월 28일부터 6월 4일까지 계속된 다이나모 작전은 성공리에 33만 8,000명의 병사를 잉글랜드로 철수시켰다. 그중에는 12만 명의 프랑스 병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덩케르크 정신.

귀족, 상인, 선장, 소년 할 것 없이 민간인들의 요트와 어선들까지 나서 고립된 병사들을 구출해낸 것이 덩케르크 정신의 정점을 찍는다고 할 수 있다. 병사들을 나르기 위해 투입된 선박들은 바다를 건너는 동안 적기에 대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어가며 선원으로 승선하길 자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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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인간의 정신을 극한으로 몰아 그 바닥을 드러내게 하는 가장 강력한 사건이다.

참혹한 상황에 대한 공포심과 생존에 대한 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과 이타심.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아들, 형제이자 친구인 이들을 위해 위험도 무릅쓰고 나서는 행동은 대단하다 못해 경이로웠다.

하지만 어딜 가나 대립점은 있는 법.

영화 상영 시작부터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잉글리시 온리'(English only)라는 말은 계속된다.

같은 연합군, 같은 병사, 같은 고립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과 벨기에 등의 기타 연합군보다 영국군을 우선하여 배에 태운다. 살아남기 위해 한 프랑스 병사는 죽은 영국군의 옷으로 갈아입어 '깁슨'으로 위장하고, 한 영국 병사는 배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우리'가 아닌 자부터 배 밖으로 몰아내려 내부의 타자(他者)를 설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행동들이 이해되고 용인되는 것은 그들의 공포감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라면 비겁하다고 비난할 행동들은 전쟁의 당연한 부산물이다.

하늘에 적기가 뜰 때마다 긴장과 공포로 몸을 움츠리고, 배에 폭격이 가해지면 살기 위해 바다로 뛰어내리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남아서도 전쟁을 겪기 전과 같은 정신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그 감정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직접적인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 터다.

그렇지만 영화를 통해 덩케르크 작전을 단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어난 대규모 철수작전으로 보는 거시적인 시각이 아니라 간접적이지만 개인의 희망과 희생 생존과 죽음의 열망과 공포를 리얼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각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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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교에서의 일주일, 선상에서의 하루, 공중에서의 1시간


하나가 된 시공간.

영화는 특별한 극적인 요소나, 뚜렷한 주인공은 없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시간 구도다.

친절하게도 글자로 '공중에서 한 시간, 선상에서 하루, 잔교에서 일주일'을 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포탄 소리에 쫄아있었던 탓인지 세 개의 공간이 하나로 모이는 지점인 공군 콜린스 구출 시기에서야 겨우 알아차렸다...^^


일주일, 하루, 한 시간.

세 방면에서 흘러가는 절대적인 시간은 다르지만, 영화 러닝타임에서 다루는 시간과 우리가 느끼는 상대적인 시간은 세 방면의 시간이 동시에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복되는 절망과 배가 뜰 수 있도록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려야 하는 초조함 외에는 시간이라는 것은 비교적 잔교의 병사들에게는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는 듯해 보인다. 그들은 배에 올라 무사히 귀향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공군의 경우 한정된 연료로 적기를 추락시켜야만 한다. 남은 연료로 비행할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 연료계가 고장남으로써 무전을 통해 수시로 시간을 체크하는 파리어로 가장 짧은 1시간이 가장 더디게 흘러가는 느낌을 준다. 비교적 평이한 속도의 선상의 하루. 하루임에도 불구하고 표류되어 있는 군인을 구해주기 바빠 그들의 시간은 여유롭지 못하다.


나아가, 시선의 상대성.

시간의 상대성에서 나아가 시선의 상대성도 특징적이다.

민간 선박을 직접 운행하여 덩케르크로 향하는 선장은 우연히 표류되어 있던 병사를 구해낸다.

폭격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로 시야가 차단된 선실로 들어가는 것조차 거부하던 병사는 지옥 같은 덩케르크로 향한다는 것을 알자 당장 방향을 바꾸라며 고함친다. 선장은 그를 안정시키기 위해 일단 알겠다고는 하지만, 그의 신념은 바뀌지 않는다. 함락당한다면,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어진다.

전형적인 타자화를 보여준 알렉스. 자리가 있을 땐 하나가 되어 탈출하지만, 자리가 부족할 땐 '우리'가 아닌 자부터 배척해 나간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자신을 비난할 것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들지 못하지만,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


"수고했네."

"그냥 살아서 돌아온 것뿐인데요?"

"그거면 충분해!"


한 노인이 건넨 말. 살아온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

알렉스는 노인이 자신을 똑바로 보지 않았던 것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그는 맹인이었을 뿐이다. 혹시 모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이 살아 돌아올까, 도착하는 젊은이들의 얼굴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본다. 그에겐 정말 살아 돌아온 것이 충분할뿐더로 차고 넘쳤을지도 모른다.


등장인물은 누군가를 대신해서 목숨을 희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가 가득 찼을 때 가라앉기 때문에 태워주지는 않지만 줄을 내려 끌고 가주기는 한다. 현실적이고, 억지 감동이 없다.

연합군은 개인의 목숨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적군인 독일군들의 모습 또한 악랄하지 않다.

마치 독일인도 연합군처럼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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