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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cefarniente Jun 30. 2018

남인도의 맛 a

디디의 카나 - 아침


영국에서 석사과정 중 친해진 인도인 친구와 함께 이곳에 온 나는 방은 근처에 따로 얻어 살고 아침과 점심, 

가끔 저녁까지 친구의 고모댁에서 해결하게 되었는데

밥은 보통 식구들과 함께 지내며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디디'께서 만들어 주신다.


내가 처음으로 배운 단어 '디디(Didi)'는 힌디어로 '언니'를 뜻하는데, 사용법도 한국어의 언니와 비슷한 듯하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디디가 나와 내 친구를 '디디'라고 부르시고, 

나와 내 친구도 우리의 막내 이모 정도로 보이는 디디를 '디디'라고 부르고 있다.  


'카나(Khana)'는 디디를 이어 내가 배운 두 번째 힌디어로 '음식'을 뜻한다.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는 일주일이나 지난 다음에 배웠다. 참 나다운 순서가 아닐 수 없다. -


내가 이곳 생활에 금방 적응하고, 서러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는 데에는 여러 사랑스러운 이유들이 있지만

그중 단연 나를 위로하는 것은 따뜻한 디디의 카나이다.




"아침은 항상 8시 반에 먹으니 그때 오면 돼

언제나 환영이지만 식사시간은 꼭 지켜, 먹을 때 다 같이 먹지 않으면 디디가 힘드니까"


영국에서 출발하기 바로 전 어마어마한 에세이 덤핑(?)을 마치고 와서인지

네 시간 반이라는 애매한 시차 때문인지

-모기에 물려 퉁퉁 부은 발 때문에 먹은 안티 히스타민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도에서의 첫 주는 잠과의 전쟁이었고,

8시 반은 그리 이른 시간도 아니었으나 아침 시간을 지키는 것은 나에게 꽤나 힘든 일이었다.


또 고등학교 졸업 이후 -새삼 느끼는데 참 옛날 일이구나- 대부분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아침을 규칙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하지만 디디의 카나, 특히 그녀의 아침밥에는 새로움 이상의 따뜻한 무언가가 있었고

이에 매료된 나는 일주일 만에

'아침 먹어야 돼'하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게 되었다.




"카나, 디디?"

"예스 플리즈, 땡스 디디."


채소와 버터를 넣은 도사와 커드 (Curd, 조미하지 않은 요거트. 물로 희석시켜 거의 모든 음식에 곁들일 수 있다. 꿀이나 설탕을 넣어 디저트로도 먹는다.)


이미 재료 준비가 된 디디의 아침은

우리가 식탁에 앉으면 그때서야 조리가 시작된다.


디디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뜨끈한 도사, 벨라야빰, 혹은 이들리를  부엌과 식탁을 왔다 갔다 하시며 

우리의 접시에 툭툭 던져주시고 이내 신선한 처트니를 들고 나오셔서 한 국자씩 또 툭툭 덜어주신다.


녹두가 들어간 도사(Dosa)와 처트니(Chutney)

- 간 코코넛(Grated Coconut)에 커리잎(Curry Patta, 커리파타), 손톱 크기로 자른 코코넛 과육, 견과류, 각종 향신료 등을 넣어 만드는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무한한 종류가 있다) 남인도식 처트니는 소스처럼 찍어먹는 게 아니라, 찢은 반죽으로 떠먹듯이 듬뿍 곁들여야 한다. - 

케렐라(Kerala)식 '벨라야빰(Vellayappam)'. '흰 반죽'이라는 뜻으로  흰 반죽을 오목한 팬에  얇게 두른 후 가운데 달걀을  깨어넣고 뚜껑을 덮어 익힌다.
오이와 각종 씨앗을 넣어 쪄낸 디디만의 이들리(Idli)와 처트니(Chutney). 보통 이들리는 흰색으로  맛도 질감도 증편과 비슷하다. 이들리 반죽도 숙성을 거친다


나도 모르게 '앗 뜨거워'를 한국말로 외칠 정도로 뜨거운 음식을 손으로 찢어 차가운 처트니에 묻혀 먹으며

친구의 세 분의 고모 그리고 디디, 이 귀여운 여인들의 이야기를 식사 시간마다 듣는 것은 넘치는 즐거움이다.


디디는 칸나다어(카나타카 주의 공식 언어이)와 힌디만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식탁 위 여자들의 수다는 

내가 끼면서 매번 칸나다 혹은 힌디, 그리고 영어 두 라운드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대화의 주제는 어젯밤 있었던 일부터 50년 전 고모의 어린 시절 이야기 

그리고 채소 가격부터 삶과 죽음에 이르는 심오한 이야기까지 무궁무진하며 누군가가

'벌써 아홉 시 반이야, 출근해야지' 하지 않으면 멈출 줄 모른다.


이 이야기들을 그 들은 두 번씩 반복하면서도 그때마다 또다시 재미있는 부분에서는 깔깔깔 자지러지게 웃고,

슬프거나 안타까운 부분에서는 한숨을 쉬며 아침밥보다 더 맛있게 나에게 들려주었고

말수 없는 나는 

'정말요? 세상에' 

하거나 표정으로 대답할 뿐이었으나 

그 이야기 속에 녹아있던 삶의 면면들을 오전 내내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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