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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 Jun 21. 2020

 비오는 날엔 <비가 오는 날은 정말 좋아>

1학년 아이들에게 비에 관한 동화를 들려주다

어릴 적 비 오는 날, 빗소리에 빠져 멍하니 었다. 땅으로 눈이  순간 삘건 실지렁이들이 도로 위에 올라와서 꿈틀꿈틀 했던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많이 있다. 지금도 그 선명한 색깔을 잊을 수가 없다.


지렁이는 또 얼마나 많았는지 비 오는 날이면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땅을 바라보며 걸었던 일들이 뚜렷하머리에 남아있다. 양이 고 그것을 본의아니게 밟게되어 더 처참한 모습을 보게 될까봐  두려웠다. 몹시 싫은 것을 바라보고 걸어야 하는 것, 나에겐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비가 오는 날, 여러분 기분이 어때요? "


비오는 날 딱 좋은 그림책 < 비가 오는 날은 정말 좋아>를 읽어주기 전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물었다.  


효준이는 비 오는 날이면 집안에 있는 빈 공간에서 옆집 삼촌, 해태 할아버지하고 축구하니까 좋다고 하였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혼자 놀거나 형과 놀다가 연년생인 형과 성격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기 일쑤였다. 가족화 그리기에서도 형을 이빨이 뾰족한 커다란 상어로 그려놓을 정도였다. 내가 보기에도 비 오는 날이면 효준이가 까칠한 형, 동생과 놀지 않고 자신을 귀여워해 주는 어른들과 축구하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신애도 집 안에 비 안 오는 곳이 있는데 오빠랑 말뚝박기 등 놀이를 하니까 좋다고 하였다. 바로 위 오빠를 좋아하였으나 보통 때 내색 하지 않았다. 오빠 좋지? 하고 물어보면 싫다고 색하였다. 신애가 오빠를 좋아할 거라고 내가 생각한 일이 있었다. 물고기 가족화를 학급에서 그렸다. 처음에는 자신이 그린 가족화를 책상 속에 넣어놓고 보여주지 않았다. 너의 그림이 궁금하다는 계속된 부탁에 꾸깃해진 그림을 쭈뼛쭈뼛 내놓았다. 눈길을 단박에 끄는 물고기가 있었다. 입술이 붉고 두툼했다. 검은 비늘을 가진 반짝반짝 윤이 나는 커다랗고 탐스러운 물고기였다. 아빠가 없어요라며 자주 말했던 아이인지라 엄마나 언니인 줄 알았다. 신애 오빠였다. 오빠 물고기를 언니나 엄마보다도 화려하고 크게 그렸던 것이었다. 오빠를 싫어한다던 신혜의 말과 그림 내용이 맞지 않아 신애의 행동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입학 첫날, 신애 오빠가 선배로서 교실 청소를 도와주러 처음 우리 교실에 왔다. 우리 학교는 청소에 익숙지 않은 1학년 아이들을 5학년 선배가 와서 도와주는 전통이 있다. 학생 수가 얼마 되지 않은 관계로 1명이 왔다. 간단하게 1-2가지만 하게 하였다.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는 오빠를 보며 "집에서는 청소를 하나도 하지 않는다요." 하며  신애가 눈치 없이 큰소리로 말했다. 1학년 아이다웠다. "집에서 못하니까 학교에서 이렇게 연습하는 거야. 그렇지?" 신애와 신애 오빠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반 아이들에게 다음부터는 교실 청소를 도와주는 고마운 선배에게  '오빠(형) 안녕? 우리 교실 청소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며 인사를 하라고 했다. 나 신애 오빠에게 고맙다고 자주 표현을 하였다. 신애도 "오빠 언제 와요?" 하며 청소시간을 기다렸다. 아이들은 청소를 하러 오는 신애 오빠를 '형, 오빠'라고 부르며 반겼다. 신애 오빠는 첫날 동생의 고자질에 붉어졌던 얼굴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펴지고 환해졌다. 자주 싸우는 오빠지만 서로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오빠 물고기를 신애가 멋지게 그렸다.


효진이는 어느 날 삼촌이랑 집 앞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치다가 비를 만났다. 우산을 쓰고 창고 밑에 서 있었다. 지붕에서 비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툭 툭 툭 떨어지는 소리도 좋았고 아래에 물이 땅을 파며 떨어지는 것이 재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장면이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 싫은 점도 있다. 엄마 트럭에 빗물이 들어왔다. 언젠가는 발아래에 물이 있었다.


종민이는 비가 오면 흙이 장화에 철떡 철떡 묻고 자꾸 넘어지니까 싫었다. 발이 무거워지고 걷기가 힘들었다. 빗물이 흥건한 땅을 걷다가 미끄러져서 웅덩이에 빠진 적도 있다. "하얀 옷을 어떻게 빨았어?" 신애가 물었다. 넘어진 친구의 빨래 걱정까지 하니 의외였다. 하늘에서 뭔가 오는 날 중 좋은 날도 있는데 겨울에 우박이 오면 오도독 씹어 먹는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거기(우박)에 코로나 균이 있어서 먹으면 안 좋다고 종민이에게 알려주었다.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빗속을 헤엄치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종민이가 그거 꿈꾸는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웅덩이 속을 바라보며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장면에서 "너희도 이런 적 있니?" 물으니 "네. 반사!" 신애가 말했다. 책이 거의 끝날 무렵 '비가 그쳤다.'라고 읽었다. "선생님, 저는 비가 그칠 때가 제일 좋아요." 종민이가 말했다. "무지개! 무지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갑자기 생각난 듯 무지개란 단어를 큰소리로 말했다. 언젠가는 마당 쪽에 무지개가 있었다고도 했다. 효진이는 왠지 거길 넘으면 보석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집 뒤에 무지개를 발견해서 무지개를 타고 싶었는데 무지개가 도망갔다고 효준이는 말했다. 무지개 색깔 중 종민, 신애는 노랑, 효준이는 빨강, 효진이는 연보라를 좋아한다고 했다. 신애가 연보라가 아니라 찐 보라예요. 하며 효진이 말을 정정해주듯이 말했다. 나는 보라색 여러 가지 색 품고 있으며 모두 말이 맞다고 하였다.


너희 '자생그'(자꾸 생각나는 그림 장면)는 무엇이니? 물었다.

"저의 자생그는 무지개가 뜬 장면이에요." 종민이가 말했다.

"저도 거기요."

"저도요. 무지개가 예뻐요."

"선생님의 자생그도 여긴데."

"와~~" 아이들이 시킬 것도 없이 모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자생그'가 오늘은 모두 일치했다.

"비가 그쳤네. 자, 얘들아! 밖에 나가서 무지개를 찾아보자." 꿈꾸듯이 내가 말했다.

"선생님, 무지개 찾지 말고 밖에서 놀면 안 돼요?" 현실적인 신애가 말했다. 그래, 이렇게 달라야 재밌지. 마구마구 말하자. 무지개를 적당히 찾아보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자. 자주 볼 수 없는 무지개보다 지금 바로 놀 수 있는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가 지금 너희에게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지렁이는 피부로 호흡을 하므로 흙이 몸에 묻지 않게 하기 위해 땅 위로 올라온다고 한다. 입과 코로 호흡하는 우리도 발에 진흙이 묻으면 무겁고 힘들다고 하는데 작은 생명체인 지렁이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땅 위로 나온다고 생각하니 처절함이 느껴졌다. 사람은 징그럽다고 하는데 그 시선을 감수하고 땅으로 나오기까지 지렁이는 얼마나 고민했을까. "징그러워" 꽥꽥 소리를 질러댔던 어린날, 아니 지금의 나를 생각해보니 지렁이에게 사뭇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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