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항상 우리 곁에 있기를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 로라 바카로 시거 글. 그림
초록빛 잎들이 열심히 광합성을 하는 결과, 우리는 생활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초록을 바라보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다. 초록은 동물이 숨을 쉬는데 필요한 공기를 생산한다.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초록은 생태계 피라미드에서 가장 낮은 위치를 차지하는데, 우리에게 먹을거리도 준다.
우리가 초록에게 받는 것을 몇 개만 꼽아 보아도 독일의 슈퍼마켓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표지판의 ‘초록은 생명이다.’라는 문구는 지당한 것 같다. 겨울에 낙엽이 져서 텅 빈 무채색의 산은 봄부터 조금씩 초록으로 변하여 여름에 완전히 초록의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초록을 ‘채워지는 색’이라고 하였나 보다. 자연이 초록으로 채워지면 다양한 생명체의 삶이 왕성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 팔레스틴에선 결혼식 때 신부가 다산과 행복한 삶을 기원하는 뜻에서 초록 드레스를 입었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초록은 부활과 영생의 희망을 상징한다.
여름이 되니 식물의 잎이 더욱 무성해졌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엔 비 피해를 걱정하느라 비 내리는 하늘과 비 자체를 바라보았다. 식물의 잎을 못 봤다. 비가 그치고 도시의 아파트에도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학교의 오래된 나무를 자주 바라보게 되었다. 온통 초록이었다. 초록은 파랑의 수동적인 면과 노랑의 능동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신기한 색이다. 로라 바카로 시거의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을 반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
책의 면지를 보았다. 진한 갈색 속에 초록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마치 땅속에서 막 나온 새싹을 상징하듯 했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구멍이 나 있는데 넘기면 다른 색깔의 형태가 보였다. 아이들은 이 구멍이 다음 페이지에서는 어떤 모양이 될까 궁금해하며 알아맞히기 놀이도 했다. 배경 그림과 어울리는 나뭇잎, 물고기, 라임, 호랑이 눈, 나비 등 다른 모양이 되었다.
로라 바카로 시거는 초록을 연두색, 청록색, 올리브색 등으로 칭하지 않았다. 초록을 단지 초록을 가진 자연 속 사물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그것은 책을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색깔에 더욱 몰두하고 관찰하게 한다. 물감 세트에 있는 색깔 이름으로 정의하지 않고 울창한 초록, 바닷속 깊푸른 초록, 싱그런 초록, 얼룩덜룩 어린 초록, 빛바랜 초록, 나무 그늘 초록그늘 등으로 이름 이 나왔다.
성준이는 나무그늘 초록그늘이 좋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아빠가 일할 때 거기로 들어가면 시원하잖아요." 했다. 아빠를 생각하는 따뜻힌 마음이 느껴졌다. ‘세상 많고 많은 초록’이라고 읽은 부분에서는 여러 칸에 다양한 초록이 나오는 그림을 배경으로 했다. 초록이 참 많았다.
다음 페이지에는 ‘가을 오면 그만 멈춰!’라는 글과 함께 ‘stop’이라는 빨간 표지판 그림이 지면을 크게 차지했다. 배경은 벌써 초록이 자취를 감추고 노랑과 빨강 등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변해 있다. 가을이 온 것이다. 다음 차례는 계절의 변화가 그렇듯이 보지 않아도 겨울이다. 책에는 ‘흰 눈에 덮인 초록’이라고 씌어 있다. 그림에는 온통 흰 눈으로 덮인 땅과 집, 눈사람이 있었다. 초록이 죽지 않고 단지 눈 속에 덮여서 봄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벌써 봄이 온 듯하다. 해와 구름이 떠있고 한 아이가 푸른 풀밭에서 새싹에 물을 주며 기르고 있는 그림이 있다.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었다. 마지막 그림 장면에서는 아빠와 여자 아이가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며 아이들은 "아까 그 아이가 아빠가 되었나 봐요." 하고 알아챘다. 앞 장의 남자아이가 기른 새싹은 많은 시간이 지나 이렇게 큰 나무가 되었고 아이도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것이다. 오랜 시간 나무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모습이었다.
로라 바카로 시거는 ‘우리 곁에 언제나 초록은 영원해’ 하며 글을 마쳤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초록은 언제나 있을 것이며 초록이 있는 한, 인간은 생존하고 있을 것이다.’로 읽혔다. 말을 바꾸어 표현한다면 '초록이 없다면 인간도 없다.’ 슬프지만 이런 말이 된다.
인디언 크리족의 예언에는 마지막 나무가 뽑히고, 마지막 강은 독으로 더럽혀지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혔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은 돈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돈과 편의를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인간의 오만함과 자연의 복수가 느껴져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환경보호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초록들이 자신의 색깔을 뽐내며 우리 주변에 영원히 함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