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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 Sep 20. 2020

보리 굴비 정식

목포에서 만난 보리굴비와 녹차물

14년 넘게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처분고 새로 장만했다. 몇 개월 전 주문했던 차가  예상보다 빨리 출고되었다. 새 차에 타니 적응이 되지 않아 어색한 면도 있고 좋기도 하였다. 오랜 시간 애용한 기존의 차에게 별다른 작별의 말을 할 겨를 없이 훌쩍 떠나 보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전 차를 처음 빼고서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아이들과 저녁에 수영을 배우는 일이었다. 아이들을 싣고 수영장에 가서 같이 수영을 배운 기간이 6개월 정도밖에 안되었지만 가끔씩 생각이 났다. 지금 봐도 잘한 일인 것 같다. 늦게 수영을 배운 나는 지금도 물을 무서워해서 잘 뜨지 못한다. 반면 아이들은 그때 수영을 배운 후 중간중간 수영을 해서 그런지 자유롭게 물에서 놀 수 있다. 차는  직장과 친정 , 아이들 학원, 병원 등 나와 함께 많은 곳을 오고 갔고 수많은 일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었다. 고마운 베이비.


 " 그동안 고마웠어. 너에게 이 말도 못 하고 보내서 미안해."


사람뿐 아니라 물건도 지낸 시간이 쌓이면 정이 든다. 새 차에 앉아서 이전 차를 생각하며 혼잣말을 했다.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냐며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새 차에 길을 내야 한다고 했다.


"목포나 여수에 한 번 다녀올까?"


폭염경보로 날씨는 뜨거웠다. 자동차를 세팅하고 목포에 갔다. 시간이 이른 관계로 평화공원의 음악분수는 보지 못했다. 바다를 바라보다가 생선이 먹고 싶어서 선미집에 찾아갔다. 맛집을 검색해보니 생선요리로 이곳을 추천한 사람이 많았고 추천 맛집 중에 문을 열지 않은 곳도 있어서였다.


선미집은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아주머니 한분이 밖에 앉아 계셨다. 출입문은 잠겨있었다. 현관 입구에는 재료가 소진되어서 저녁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멘트가 두꺼운 종이에 친근감 있는 손글씨로 씌어 있었다. 아쉽지만 돌아서야 했다.


시간은 6시 넘어서고 있었고 전에 산책코스로 평화공원과 갓바위를 돌았다. 먹은 거라곤  아점으로 10시 정도에 간단히 음식을 먹은 정도였다. 휴대폰과 내비게이션으로 여러 음식점을 검색다. 남편은 고기 싫고 간단히 먹자고 했다. 반면 나는 바다 마을에 왔으니 생선 종류를 먹어줘야 한다고 했다.


휴일이라서 여러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 부안에서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오랫동안 빈둥거리다가 늦게 간 식당문이 닫혀 저녁을 못 먹은 것이 생각났다. 리는 맛집이고 뭐고 간에 어느 식당이든지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 말고 바로 들어가자고 했다. 바닷가 쪽으로 다시 차를 돌식당이 나왔다. 주차장이 널찍했다. 건물은  특색 없이 네모 반듯했다. 아래층에는 건어물 가게가 있었다. 간판에 박혀있는 전화번호를 찾아서 걸어보니 다행히 영업을 하고 있다.


"거 홍어 좋아허요? 멀리서 오신 거 같응게 보리굴비정식을 시키도 홍어를 조금씩 드릴게요이."


남편이 좋아하는 홍어탕을 시키려 했으나 가게 주인이 보리굴비정식을 권하였다. 남도 사투리가 친근감 있게 들렸다. 반바지를 입은 남편의 다리가 추울 정도로 시원한 방에서 식사를 기다렸다. 주인이 권해서 주문하였지만 보리굴비 기대하지 않았고 삭힌 홍어요리만 기다려졌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10여분이 지나자 음식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큰 대접에 시퍼런 것이 들어있었다. 녹차물이었다.


커다란 접시에 따뜻한 보리굴비 두 마리가 먹기 좋게 펼쳐져서 나왔다. 젓가락으로 찢어서 일단 맛을 보았다. 짜지 않고 간이 맞았다. 2년 전 영광의 굴비정식집은 유명 맛집답게 다양한 요리가 코스로 나왔고 참 맛있게 먹었다. 굴비의 향연이었다. 이 있었다는 것 외에 보리 굴비 본연의 맛은 머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최근 경험만이 머리에 남아있다.  한 달 전 우연히 들어간 보리굴비는 오늘과 같은 가격인데도 크기가 작고 맛이 짰다. 보리굴비를 마음속으로 기다리지 않은 것도 이 기억 때문이었다. 녹차물을 이용한 적이 없던 우리는 밥 한 술에 보리굴비 한 점을 얹어서 먹었다. 먹다 보니 녹차물에 말아서 먹으면 깔끔하고 담백한 녹차의 맛과 고소한 굴비가 어울릴 것 같았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것이 한참 지난 후에야 이제야 떠올랐다.


녹차물에 밥을 말아서 보리굴비를 먹었다. 과연 시원한 녹차물에  밥과 보리굴비는 궁합이 맞았다. 굴비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직원들이 모자란 반찬을 보충해주고 서비스로 초밥도 내왔다. 평소 좋아하던 초밥도 녹차와 같이 먹는 보리굴비에는 미치지 못했다. 약속했던 홍어를 찜과 회, 무침으로 내왔다. 식당 주인이 다시 들어와서 홍어가 더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다. 우리는 친절한 주인에게 말하지 못했다. 상에 나온 것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더 줄 수 있다는 말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늦게 먹는 밥은 꿀맛이었다. "이 식당 잘 들어왔네. "라고 서로 웃으며 말했다. 보리굴비를 맛있게 먹고 주인이 운영하는 1층 가게에서 보리굴비를 사 왔다. 내일모레면 남편 생일이다. 보리굴비를 쪄서 상에 내놓으려고 한다. 보리굴비를 먹을 때면 후덕한 식당 주인그때 걸었던 우리 번개 여행이 목포라는 도시와 함께 생각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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