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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 Apr 18. 2020

아가씨, 휴일에 집에서 놀면 뭐해

점점 붉은색을 더해 연하고 진한 꽃이 나무를 메워나간다.

토요일이다. 일기예보에서 날씨가 춥고 바람이 불며 10-15도 사이라고 했는데 바람이 조금 부는 것 빼고 괜찮은 편이다. 그림 그릴 때 여분의 물을 넣페트병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의 플라스틱 분류함에서 1,2리터 빈 우유병과 음료수병을 찾아서 챙겼다.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먼저 와 있다. 교실에 들어가서 어제 챙겨둔 그리기 도구를 차에 싣고 아이들과 시내 호수 공원으로 갔다. 행사장 근처 주차장에 차를 놓고 각자 도구를 가지고 내렸다.


그림 그 때 사용할 물받기 쉬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다. 지금은 서늘하지만 대회가 시작되는 10시가 넘으면 기온이 올라가 더워질 것이니 좋은 자리였다. 그때는 춥지 않고 시원할 것이다.


돗자리를 깔고 준비물을 쓰기좋게 배열했다. 배부받은 회용 화선지를 정하려 자석을 꺼냈다. 바람이 불어서  화선지가 고정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이동할 때 생각해서 무거서진 대신 자석을 준비한 것 때문이었다. 이들을 생각해서 한 일이 오히려 불편함을 초래한 것에 대해 미안 생각이 들었다.


 지가 생각보다 커서 야단법석을 떨었다.  돗자리에 여러 그리기 용구와 화지 놓고 나니 앉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랑이와 지수는 짜증이 난다, 여기 괜히 왔다는 둥 큰소리로 불편함을 쏟아냈다.


돗자리의 모서리에 서로 마주 보도록 위치를 바꾸어 주어 아이들이 앉을 자리를 겨우 마련해 주었다.


이제 괜찮지?”

 “아뇨, 안 괜찮아요. 짜증 나요.”


런 소리를 이들 둘이 서로 돌아가며 하였다. 속 듣자니 황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교사. 아이들이 활동하기 전, 그들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고 기분 전환을 시켜주어야 한다. 밝은 분위기로 이것저것을 챙다.


  “ 선생님, 그리기 대회가 몇 번이나 있나요? 다음에 제가 대회를 나올까요? 


한창 불평하던 지수가 빙글빙글 웃으며 나를 떠본다.  짜증이 나 있는 상태일 텐데 그나마 화내지 않고 말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상황이었다.


"저는요..." 

“아가씨. 이런 날 집에 있으면 뭐해. 시간이 그냥 지나가지. 대회 나오니까 꽃 보고 맑은 공기 속에서 친구들과 추억도 쌓고 좋잖아요.”


지수의 말을 막다. 다른 아이들도 들으라고 웃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지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감이 왔. 투정하는 말들이 지금 분위기에 도움이 안 되며 자신과 다른 아이들의 기운도 뺄 것이었다. 계속 들어줄 시간도 없었다.


  “안 좋아요. 담엔 절대 안 나올 거예요.”

  “나도.”


 의 노력에아랑곳없이 두 아이가 주거니 받거니 투덜다. 조금 힘이 빠졌다.  아이들은 작년에 나와 즐겁게 일 년을 생활한 아이들이었다. 초긍정 자세의 아이들이었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사춘기가 무섭다더니 이렇게 180도 달라진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냥 미소를 지었다.


공간을 확보하려 화지와 미술도구를 다시 배치했다. 하랑이와 지수 새로 자리를 잡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먼저 연필로 스케치를 하였다. 교실에서 연습을 해선지 거침이 없었다.


"잘했어. 어제보다 구도가 더 좋구나!"

"선이 대담하고 자신감 있어서 멋지다!"


같이 온 배선생님과 함께 큰소리로 아이들에게 칭찬을 하였다. 아이들이 더 열심히 하였다. 사람 진빼게 하는 투정도 거의 없어졌다. 리기에 몰입을 하면서 아이들 표정도 점점 편안하고 밝아졌다.


붓에 먹물을 묻혀서 나무의 윤곽선을 그리고 벚꽃의 그림자도 찍었다. 붓에 물을 묻혀 묽은 먹물로 나무줄기를 칠하기 시작했다. 먹물이 필요한 곳은 모두 칠했다.


다음엔 꽃을 그릴 차례. 붉은색 물감에 물을 많이 섞어서 꽃점을 찍다. 점붉은색을 더해 하고 진한 다양한 채도의 꽃색을 사용했다. 깊이 있고 화사 나무가 되어갔다 .


지수는 나무줄기에 표현한 먹물 번짐의 느낌이 좋았다. 세 그루의 벚꽃을 그렸는데 나름대로 느낌이 좋았다. 나무에 갈색을 색칠하여 넣었고 뿌리가 땅 위에 길 짧게 튀어나온 모양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랑이는 정자와 소나무, 풀밭까지 그렸다. 구도가 특이하였다. 상진이는 3학년이지만 차분하게 연습한 대로 잘다. 팝콘 더미 같은 화사한 벚꽃이 완성되었다. 강수는 현대식으로 벚꽃을 그렸다. 연습했던 색을 만들지 않고 오늘은 그냥 있는 대로 색으로 박박 썼다. 색이 너무 진하여 아쉬웠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화를 처음 접한 것 치고는 잘하였다. 그림에 느낌이 있었다.


5-6학년 학생들은 나무를 크게 그렸는데 줄기를 까맣게 하고 꽃을 진하게 색칠하여 채색화 느낌이 물씬 나타나게 그렸다. 세나의 꽃과 루미의 나무뿌리 모양, 흙과 진녹색의 이끼 표현이 좋았다.  


아이들은 제각기 나름대로 개성을 담아 벚꽃 그림을 열심히 완성하였다. 바람이 불던 , 그림도구가 자리잡지 못한 상태의 짜증 난 아이들은 없었다. 얼굴이 발그레하니 무언가에 열심히 몰두하여 성취한 후 느껴지는 환한 얼굴 모습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난 뒤 남은 먹물과 물감을 닦아 종이 쓰레기 불평하지 않고 한 군데로 모아 정리를 하였다. 그림용구와 돗자리 등 많은 준비물을 서로 나눠서 주차장으로 가지고 다. 즐거운 표정이었다.




“조개 먹기 대회가 열렸어요.”

“시작!”


점심으로 강가에 있는 음식점에서 해물칼국수를 먹었다. 다들 후루룩 잘 먹었고 여학생들은 면을 다 먹고 조개를 꺼내어 까먹기도 하였다. 앉아있는 대로 서로 2명씩 편을 나누어 게임식으로  먹었다. 먹는 것도 게임이었다. 큰 그릇에 바지락 껍데기가 금방 수북이 쌓였다. 벚꽃이 포개져 있는 것 같았다.


마을도서관, 집, 부모님과 만나기로 한 커피숍 등 각자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었다.


처음에 바람이 불었지만 전체적으로 날씨가 적당하고 좋아서 그리기 행사에 잘 참여할 수 있다. 평하던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여 마지막까지 힘을 내주어 고맙고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쉬어주어야 하는 휴일에 아침부터 아이들과 대회에 참석해선지 갑자기 몸이 곤해졌다. 시간도 평일 퇴근 시간이 가까웠다. 집에 돌아가는 차속에서 아까 지수에게 한 말을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읊조다. 


“아가씨. 이런 날 집에 있으면 뭐해. 시간이 그냥 지나가지. 대회에 나오니까 꽃도 보고 아이들이랑 추억도 쌓고 좋~잖아요.”


어릴적 일기말미에 쓴 것처럼 즐거웠고 보람찬 하루가 되었다.


............

(작년에 써 놓은 글을 수정해서 올렸습니다. 올해 벚꽃이 피면 올리려 했는데 ㅠㅠ.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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