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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 Jun 05. 2020

우리 반 학생 상봉? 의 날

곰돌이도 너희를 환영해주고 있단다


‘상봉’이라고 하니 이산가족의 만남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생들이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를 오지 못하고 서로 만나지 못하 현실이 아팠다. '상봉'이라는 제목을 생각하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만남보다는 '상봉'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3월. 혹시나 길어질 코로나 사태를 대비하며  각 가정에 교과서를 가져다주었다. 우리 반 명인이란 아이는 다른 유치원에 다녔고 우리 학교에는 한 번도 와 보지 못했다. 얼굴 몰라서 궁금하던 차였다. 가정방문을 하기로 이틀 전에 약속을 하였다.


논을 지나 마을 입구에 정자나무 한그루가 아담하게 서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집 주소 근처에 여러 집이 있었다. 삼거리 공터에 담 옆으로 차를 바짝 붙여놓았다.    


“안녕하세요. 말씀 좀 여쭤도 될까요. 혹시 명인이네 집 아세요? ”


“명인이요? 저쪽 인디.”


조금 걸어 올라가자 마침 아주머니 한 분이 집 앞에서 화단을 돌보고 계셨다.  아주머니가 가리킨 곳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대문이 없는 집이 보였다. 건너편 골목 입구의 바로 앞집이었다.     


거기에는 눈이 땡그란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나를 보고는 “아빠, 선생님 오셨어.”  하고 큰소리로 말하며 수줍은 듯이 집안으로 쑥 들어갔다. 명인이는 차분하고 예의 발랐다.  그 후 다시 한번 학습 꾸러미를 가져다주러 명인이네 집 갔다. 교실 환경을 사진으로 찍어서 갔다.  명인이에게 설명을 해 주기 위해서다.


사진 속 교실 뒤 환경판에는 곰돌이 한 마리가 있다. 우리 반 아이들 이름이 쓰여 있는 동그라미를 옆에 놓고 ‘입학을 축하해요.’라고 말하고 있다. 한 개씩 나눠주려는 듯이 빨갛고 노란 풍선을 들고 있다.     


매주 금요일 11시. 원격수업이 시작된 후 EBS 방송이 끝나면 교실에 부모와 학생이 다.  지난주에는 명인이네만 부모가 바쁘셔서 학교에 오지 못했다. 쉬웠다. 명인이가 앞으로 생활하게 될  초등학교의 첫 번째  교실접하게 해 주고 싶었다. 명인이는 언제 학교에 오게 될까.    


명인이 아버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모임에 마침 시간이 맞아서 짧은 시간나마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명인이가 온다는 이 기쁜 소식을 학교 식구들에게 알렸다. 모두 보고 싶어 했다. 교장선생님은 명인이가 오면 따로 알려달라고 하였다.     


명인이와 명인이 아버지가 제일 먼저 교실에 도착했다. 명인이는 새로운 환경이라 그런지 조금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큰 눈이 더 커졌고 말소리도 가라앉았다. 교장실과 교무실, 행정실에 가서 인사를 하게 했더니 차분하게 잘하였다. "네가 명인이구나!" 모두  반겨주었고 예뻐해 주었다.    


컴퓨터실, 영어체험실, 과학실 등 특별실을 보여주었다. 명인이 아버지가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컴퓨터실에 들어가서 원격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의 학습내용에 관심을 갖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교실에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부모님도 아이들도 표정이 밝다. 그동안 아이들의 가정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주 학습 안내를 하였다. 매일 집에서 했던 과제를 서로 보여주며 칭찬을 하도록 하였다.


서로 보는 것도 공부다.


효진이의 배움 꾸러미를 열었더니 다양한 색으로 꼼꼼히 했다. 남자아이인 준이가 효진이 것을 보고 “이 쪽을 조금 더 잘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효진이가 “너보다는 잘했어.” 입을 삐죽이며 다. 직은 아기적인 말과 행동이 남아 있다.

 

한 명 한 명 학생들의 활동물을 넘겨보며 부모님과 내가 아이들에게 칭찬을 해주자 '헤헤헤' 귀엽게 웃다.


긴급 돌봄을 하고 있는 준이는 교실 장난감의 위치를 알고 있다. 준이 텀블링 몽키 장난감을 꺼내 놓았다. 아이들은 가위, 바위, 보를 하 순서를 정해서 놀았다. 부모님들은 원탁에 둘러앉아 농사, 자녀 교육  등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갈 시간이 되었는데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셨다.     


“한 번만 더 하면 안돼요?”     


아이들도 서로 떨어져 있던 1주일이 긴 시간 인양 아쉬워하였다. 새로운 친구 명인이를 보아서인지 한결 신나는 분위기였다. “그래. 한 판만 더해라.” 아이들 마음이 읽혀 승낙을 하였다.    


“선상님, 요새 제가 잠을 못 자요.”


신애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울컥해졌다. 나도 모르게 신애 할머니 손을 잡았다.


 “신애 할머니, 힘내셔요.”    


신애 할머니의 구구절절 사연을 들으며 손을 부여잡은 채 주차장까지 가서 배웅을 했다. 효진 엄마는 트럭을 타고 오셨다. 1종 면허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했더니 “전 남자예요. 남자가 하는 일을 다 해요.” 하며 건강한 웃음을 지었다. 버스를 타고 온 신애네를 서로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사람 사는 정이 느껴졌다.    


학교 정원에는 적동백과 자목련이 피어있었다. 신애 할머니를 비롯해  학부모님들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오늘따라 매캐하게 가슴으로 느껴졌다. 그 마음이 파란 하늘에 우뚝 솟은 색조차 선명한 저 꽃처럼 붉으리라 생각되었는지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꽃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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