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몇일 전 쇳물 용기에 인턴이 빠져 유명을 달리했다. 작업 환경은 열악했고 인턴은 미숙했다. 100도씨가 넘는 그 용광로 위를 걸었던 그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없었던 것이다. 20대, 겁없이 도전했던 사회라는 곳에서 그는 검붉은 쇳물에 물들어 갔다. 덧없이 세월을 보낸 어미의 울음소리가 짙다. 사회 곳곳에서는 58년생들의 빈 자리가 보인다. 베이비붐세대의 그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빠져 나갔고, 그 구멍에는 2사람이 해야 할 일을 혼자 맡는 30-40대가 있다. 그도 그랬으리라, 그가 가진 몫 이상의 것을 해내지 않았을까. 한사람 분의 몫이라면서 고인의 명복을 빈 일이 한 두번의 일이던가.
아프고 다친 사람들에게 그 무엇이 중하랴. 그가 무너지면 다른 가족들이 무너지고, 그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에 구멍이 생긴다. 왜 그들은 현장에 돌아가지 않는가? 아마도 그 빈곳에 인턴은 2사람 분의 몫을 다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나은 미래와 목표, 그래서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또는 그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목숨이 잊혀지지 않아서 그 업무에 다시 돌아와 종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단계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던가? 아니면 연차가 차도 같은 일을 반복하기 때문인가? 그 장소를 떠나면 그 사람은 사회속에서 바보가 된다.
현시대의 안전망이란 무엇인가? 나는 사회복지라고 본다. 의료복지 역시 사회복지의 한 축이다. 코로나 이후 의료복지가 오히려 약해졌다. 방역만 신경쓰던 이들이 현장에 복귀하자 그 빈 구멍을 메울 사람이 없어졌다. 그 뻥뻥 뚫어진 곳에는 오히려 의료보험이 들어서버렸다.
잘은 모르겠다. 오히려 이 코로나라는 병을 키운 것이 보험 아닐까? 병이 걸려도 돈을 버는 곳은 업무과가 아닌 보험업아닌가. 보험을 드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병에 걸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드물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사람이 죽어가는 슬픔에 대비해 사람들은 보험을 드는 것이 아닐까? 국민건강보험의 현 실정이 궁금하다. 또한 현재 우리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의사가 많아야 할까라는 질문보다, 왜 의료보험이 안되는 과를 왜 선택했는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복지 외에도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사회복지는 사회 곳곳의 안전망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개개인의 합 이상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안전망이 실현 될 때에는 모두 같이 갈 수 있다고 본다. 누구나 다 깨달아야 하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며, 그 계층이라는 제도속에서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선배들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삭막한 현실속에서 나는 또 공부를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경제학도입니다.
제가 본 시야는 이렇습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따끔하게 질책 해 주세요.
오늘도 구슬땀 흘리시는 분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의사분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