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중고등학교 도서부원을 6년간 했으면서, 이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성한다.
성인이 되고, 연애와 결혼을 거쳐 육아에 에너지를 쏟는 마흔을 앞둔 시점에 드디어 집어든 이 책은, 사랑이 아니면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20대의 어느 시점을 떠오르게 했다.
편지 형식의 이 책은 주인공인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를 보내는 독백만 무성하다.
빌헬름의 답장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가끔 베르테르의 편지 속 빌헬름의 회신내용에 대한 언급을 보면, 이 둘은 정말 서로를 아끼는 친구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평범하고 교양 있는 베르테르의 삶은 직장생활에 조금은 지친 전문직 직장인과 겹쳐 보였다.
먼 타지의 시골의 풍경을 설명하는 장면들과, 조금은 여유롭게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장면에서 그의 인품과 인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핑퐁 없는 독백만 무성한 편지글을 계속 읽자니 슬슬 지루해졌는데, 그러던 찰나 갑자기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대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로테와의 만남이다. (난 이상하게 남의 연애얘기는 그렇게 재미있다.)
이제 그의 삶은 로테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나뉠 뿐이다.
이미 알베르트라는 정혼자가 있던 로테를 사랑해 버린 베르테르는, 이 한쌍과 함께 어울려 우정을 쌓는다.
심지어 알베르트에게조차 그는 깊은 존경을 느끼며, 로테를 자신의 방식으로 짝사랑하는 것이다.
알베르트와의 "자살"에 대한 말다툼에서 둘의 확연한 사고의 차이를 느낄 수 있지만, 감정적이고 섬세한 베르테르는 그래도 그런 알베르트와의 우정을 소중히 하면서도 그가 그녀를 차지했다는 사실에 질투도 느끼며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짝사랑에 대한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베르테르는 로테가 직접 하인을 통해 건네준 총에 자살하고 만다.
나는 책 내용과 더불어 책 후미의 작가인 괴테의 사랑에 대한 부분에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작품은 괴테의 지인인 예루잘렘이 실제 유부녀를 짝사랑하고 그녀가 건네준 총으로 자살을 하게 된 사건을 본인이 유부녀를 짝사랑하는 경험에 덧입혀 서술했다는 것이다.
괴테는 친구 예루잘렘의 사랑을 순수한 베르테르의 로테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하며, 자신이 경험한 사랑의 감정을 쏟아내었다. 책 내용 중 주인마님을 사랑하는 종의 살인과 자살을 베르테르가 열심히 항변하는 장면은, 친구인 예루잘렘의 죽음의 가치에 대한 괴테의 존중과 추모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괴테는 이후 나이가 들 때까지 아홉 차례나 다른 여자들과 사랑을 경험했다고 한다. 심지어 73세 노년에 19살 소녀까지 사랑했다는 내용은 로테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 순순하게 노래한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사랑이 자주 변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들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하나 진심 없이 사랑하지 않았던 괴테의 사랑 일대기가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괴테는 베르테르처럼 짝사랑에 목숨을 바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이 작품을 통해 죽을 만큼 사랑했던 본인의 경험을 쏟아내어 사랑했던 본인 자신과 더불어 사랑받았던 누군가의 한 때를 생명만큼 고귀한 추억으로 포장해 준 것이다.
베르테르는 죽은 후 천국에서 로테와 다시 만나기를 소망했고, 로테의 어머니와도 만나기를 소망했다. 결혼이라는 테두리가 없는 그곳에서 다시 만나 다시 한번 사랑할 것임을 확신했다. 몸은 죽어 없어져도, 그 정신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베르테르의 말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불멸의 감정인지 깨닫게 해 준다.
생사를 뛰어넘는 사랑에 대한 감정은 세대를 뛰어넘어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시와 노래와 글들로 표현해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유독 사랑에 대한 가사가 많은 가요를 들으며, 왜 노래는 다 사랑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나의 질문에 엄마가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결국 이 세상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고 계속될 신비한 감정이 사랑이니까."
이게 바로 괴테가 표현해 내고 자 한 불멸의 사랑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