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폭풍의 언덕을 끝내고 선택한 책 클레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단순히 얇아서 선택한 책인데 이토록 얇은 책이 어떻게 이토록 긴 여운을 줄 수 있는지 감탄했다.
일단 난 동명의 영화는 보지 않았고, 책으로 이 작품을 처음 접했다. 그래서 그 영화가 주는 시각적인 분위기라던가,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 같은 것은 모른 채 정말 순수하게 백지의 상태로 읽었다.
일단 다 읽고 난 후 기분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 아 뭔가 계속 답답하고 찝찝한 느낌으로 있다가 아주 조오금 후련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답답한?
- 지하철에서 앞에 서 계신 할저씨(애매한)에게 자리 양보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고민하다가, 몇 정류장 한참 지나서 아무 말 없이 내리는 척 자연스레 일어선 느낌?
그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에 불타오르는 법무팀 직원인 나는, 불의의 상황을 눈감는 것을 못 참아해서 그런지, 더더욱 답답했던 것 같다. 일단 저 수상한 수녀원의 정체를 왜 안 까발리냔 말이다!! 끝까지 이점이 가장 짜증 났다! (특징: 마블영화 좋아함. 불의는 무찔러야 함)
그러나 이 소설의 화법은 아무런 가치판단 없는 시선으로 주인공의 양심과 소소한 일상을 지키려는 마음 사이에서의 갈등을 그저 묵묵히 쫓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현실의 결말들은 권선징악이 아니니까. 사회의 묵인을 뒤로 한채, 개인적의 양심으로 최소한의 할 수 있는 일을 한 주인공이 더 돋보이는 것도 같다.
사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주인공의 삶을 기준으로 보면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따듯하고 소소한 행복이 가득했다.
무엇하나 모자랄 것 없는 삶 속, 석탄을 배달하며 평온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주인공 빌 펄롱.
사랑하는 아내와 기특한 다섯 딸을 키우며, 금전적으로 넉넉하고 평화롭게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이 가정에 부족할 것은 단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따듯하고 평화로운 집안 풍경과 대비되는 시대적인 풍경과, 삶을 힘들게 살고 있는 주변 사람들, 굶고 있는 동네 개들, 수상한 분위기의 수녀원까지... 그가 느끼기에는 자신에게 허락된 행복이 왠지 우연히 주어진 특권처럼만 느껴져 죄스러웠을 것이다.
만약 윌슨 부인이 하녀였던 자신의 엄마와 사생아인 자기를 받아주지 않았었더라면, 그가 누리고 있는 이 행복은 애초부터 허락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는 야적장일을 하며 모두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척을 지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예의 있게 행동한다.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나 역시 피해를 입고 싶지 않은 삶. 그러나 이러한 균형이 이상하게 완벽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소설은 주변 인물들의 아주 사소한 사건들을 통하여 자신의 베풂이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세심하게 보여주는데, 사실 너무 사소한 친절이라 당사자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조차 않는다.
얼어 버린 자물쇠를 녹이기 위해 펄롱에게 뜨거운 주전자를 내어준 이웃 부인은, 자신이 다시 물을 끓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별거 아니라는 듯 선뜻 펄롱에게 주전자를 내민다. 그리고 그러한 친절을 받은 펄롱 역시 퇴근길 그 집 현관 앞에 땔감장작 한 더미를 무심하게 내려놓는다.
그와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농장 일꾼 네드도 펄롱이 자라는 동안 윌슨부인과 펄롱의 엄마와 함께 그의 곁에서 묵묵히 자상한 가르침을 주었던 중요한 인물이다.
펄롱이 자신의 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해 여름 윌슨가에 방문한 부유한 친척들 중 하나이지 않았겠냐'라고 말이다. 그 무심한 말투는 펄롱의 누군지 모를 아버지가 아마도 좋은 가문일 것이라 추측하도록 한 네드의 배려일 것이다.
그와 네드가 닮았다는 것을 주변인물의 말로 듣게 된 펄롱은 네드의 이런 대답을 듣고 생각한다.
그와 엄마를 윌슨가에서 머물 수 있게 해 준 조력자인 네드의 오랜 숨은 노력에 대하여 말이다.
막연히 떠오른 네드와 엄마와의 묘한 관계들과 자신에게 베풀어준 무조건적인 헌신에 대하여 말이다.
그토록 조용한 배려가 평생 그에게 평안한 삶을 유지하게 해 준 시작점임을, 이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들임을 확신하게 된 펄롱.
너무 소소하지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준 이런 작은 친절들이 모아 지금의 자신이 되었기에, 자신 또한 세상에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그의 결심을 더욱 굳게 했을 것이다.
그는 수녀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녀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감금에 대하여 궁금해하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어 했다. 현재의 평화로운 삶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으면서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복잡한 그의 마음속 양심과의 싸움은 결국 윌슨부인에게 배운 사랑을 남에게 베푸는 것으로 승리하게 된다.
결국 그 수녀원으로 가서 세라라는 아이를 구출해 낸다.
그리고 그 소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다.
비록 자신의 가정의 평온함이 이 아이의 등장으로 인하여 깨져버린다 하더라도, 그래서 겪을 혼란과 시련은 지금껏 이 아이가 겪은 시련에 비하여는 아무것도 아니라 판단하며 '최악의 상황은 이미 지나갔다.' 라며 계속하여 되뇌었다.
비록 펄롱이 구해낸 소녀는 수녀원에 갇힌 수많은 여자아이들 중 하나일 뿐이다.
수녀원의 부조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 소녀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지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의 행동에 놀라거나 피하며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펄롱의 행동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베푼 친절로 인하여, 그 소녀의 앞으로의 삶과 그 일을 행한 용기를 본 타인들의 앞으로의 결정들에 큰 영향을 줄 것임에는 틀림없다.
펄롱은 그 암흑기 작은 촛불과도 같은 연약한 희망이었지만, 그러한 작은 불빛들이 하나 둘 더 켜지게 된다면 결국 환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