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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Nov 14. 2024

야근 안 해서 짤린 썰 푼다

야근 안할거면 나가라고? 오히려 좋아!

그나마 요즘 MZ들은 워라밸을 중요시 여기는 추세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아니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 초년생 시절에 강제 야근에 당첨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회초년생이 아니더라도 입사초라던가 회사에 인정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우리는 야근을 한다. 아니다. "우리"라고 표현하면 안 되겠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야근을 하지 않아서 짤려봤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묻어놓았던 그때의 기억을 오늘 처음으로 나눠보려 한다.



야근의 목적


일단 근로계약서에는 분명 근로 시간과 연봉이 명확히 명시되어 있다. 시급 아르바이트만 시간을 지켜 근로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기한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 근로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초과 근로가 당연하다면 이 연봉으로 협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초과근무는 무료 봉사이다. (야근수당이 없는 곳이라면)


일단 야근의 목적은 당연히 과도한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물론, 과도하게 적은 인원에게 많은 업무를 주는 것 자체도 엄연히 말하면 계약 위반이다. 도저히 한 사람이 해 낼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없는 시간 안에 다 끝내도록 강요하는 것. 이것이 바로 팥쥐엄마 사업주이다. 콩쥐처럼 꾸역꾸역 울면서 해내면 두꺼비라도 나타날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도저히 처리 불가능한 양의 업무를 주고, 근로자가 밤을 새워서라도 처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 억지이다. 이것이야말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 근로기준법을 떠나 민법 103조 위반이라 주장하고 싶다.

애초에 "갑"과 "을"이 공정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여하튼 진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의 목적은 과도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여야 한다.

이마저도 아닌 야근이 더 문제이다. 일명 "눈치야근" 또는 "분위기야근",  즉 회사가 만들어낸 "당연야근" 이 그러하다.



당연야근의 해괴한 근무형태


일단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근무시간에 논다. 너무 비약하였다면, 논다기보다는 처언처언히 쓸데없이 느리게 한다. 열심히 노트북으로 딴짓을 한다. 또는 지나치게 자리를 자주 비운다.

모든 업무는 저녁 6시부터 시작된다.

아니다. 또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

대충 7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밤 10시 또는 그 이상까지 그제야 "일"을 한다.

야근을 해본 사람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6시가 넘으면 집중도 잘 안되고, 다른 회사들과 협업이 불가능한 시간이므로 일의 효율도 안 난다. 결국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만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또 다음날로 넘긴다.


대체 왜?


야근시간을 찍기 위해서다.

야근수당을 주나? 전혀 아니다.

단지 퇴근시간을 무조건 6시로부터 머어어얼리 찍어놔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마치 이 야근이 내 능력을 보여주는 것 같고, 뭔가 일을 한 것 같은 포만감을 주며, '난 이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야. 이렇게 야근으로 노오력 하니까!'라는 가짜 안정감을 준다.

더 웃기는 건 이러한 가짜 마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회사는 야근하는 직원들을 좋아한다. 당연히 공짜 일을 더 해줬다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전혀 아니다.


근무시간에 집중해서 업무를 끝내고 퇴근하는 직원 vs 야근하는 직원 중 고르라고 한다면 회사는 대부분 야근하는 직원을 고를 것이다. 심지어 면접 단골질문 아닌가?

저희 회사는 야근이 많은데 야근하실 수 있나요?

이 부당하고 해괴한 질문에, 사실 우리는 정당하게 이렇게 되물어야 한다.

아, 초과근로수당은 당연히 주시는 거죠?

실제 이렇게 묻는다면 당연히 불합격일 것이다.

그래도 차라리 면접 때 이렇게 알려준다면 친절한 편이다. 거르면 되니까.

문제는 이러한 분위기를 모르고 입사했다가 봉변을 당할 때 오는 배신감이다.



초과근무가 인사고과의 50%를 결정한다고요?


인사고과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인사고과(人事考課 / Performance Evaluation)[1]직원의 근무실적, 근무역량(능력), 근무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일을 의미한다. 승진, 강등, 해고, 성과급 지급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무위키 발췌-

근무 실적, 근무역량, 근무태도에 야근이 어떻게 첨가되어야 정상인가.

남들보다 업무처리가 느려서 제시간에 끝내지 못해서인지 의심하고, 업무량이 많은 것이라면 인력 충원을 고려해 주는 것이 회사가 취해야 할 정상적 태도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기성 회사들이 야근을 하면 높은 평가를 한다. 심지어 내가 속해있던 그 어처구니없던 회사의 인사고과 평가방식은 점수의 50%가 초과근무시간이었다.

십여 년 회사생활 경험 중 가장 황당했던 그 썰을 이제 풀어본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갑자기 총무팀에 친한 대리님이 탕비실로 날 불렀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다. 대리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내 두 손을 잡더니, 오해하지 말고 들으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무슨 일인지 전혀 예상도 못했다.

"나도 오늘 전달받은 건데, 대표님이 어제저녁에 법무팀장님 부르시더니, 저 야근 안 하는 윤대리 짜르든가 나가게 하든가 하라고 했데"

솔직히 내가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왜냐면 나는 바로 4개월 전 대리승진까지 했던 것이다. 승진이 된 것은 분명 나의 업무와 역량 평가를 좋게 받았기 때문일 터인데, 어떻게 4개월 만에 그 평가가 뒤집어질 수 있는 걸까?

그랬다. 그곳은 야근으로 고과를 평가하는 지독한 꼰대 회사였다.

난 집이 멀다는 핑계로 퇴근을 빨리하는 편이었다. 사실 핑계라고 하기도 웃긴 게 재차 강조하지만 근무시간이 지나면 퇴근하는 게 정상이다.

게다가 회사 내 그러한 야근의 분위기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법무팀 대리라는 자리는 나로 하여금 정의감과 올바른 것에 대한 판단에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게 했다. 매일 새벽 2시까지 상대측 답변서를 정독하던 법무팀장님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난 주어진 업무를 근무시간에 빠르게 끝냈고, 팀장님을 두고 퇴근했다. 물론 팀장님은 은근히 나도 같이 야근을 해 주길 바라는 눈치셨다. 그러나 내 퇴근은 정당했으며, 업무가 밀린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나의 이러한 올곧은 생각이 나를 부러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에게 이 사실을 귀띔 해 준 대리님이 속한 총무팀은 8시 이후 퇴근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짤리지 않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고 운영되고 있었고,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룰에 불만이면서도 그 대리님은 조용히 따랐던 것이다.


그렇게 야근을 하지 않아 난 난생처음 권고사직을 당했다.

직전 회사였던 H그룹 상사와, 동료들과 통화하며 이 어이없는 이야기를 토로했더니, 요즘세상에 아직도 그런곳이 있냐며 펄펄 뛴다. 내가 얼마나 책임감 있게 일을 하는지 아는 분들이었으니, 어이가 없을만하다.


그러나 오히려 좋았다. 이런 부당한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나갈 수 있게 해 준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다.

난 결국 그 권고사직을 받아들였고, 한 달 치의 위로금을 받고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퇴사일 이전에 면접을 다니며 두 개 회사의 면접을 붙었다. 한 곳은 대기업이었는데 아쉽게 최종면접에서 탈락했고,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새로 입사한 곳에서 직전회사의 야근문화 때문에 이직했다고 말하자, 나의 새로운 상사는 황당하다는 이렇게 되물었다.

"아니 퇴근시간 지났으면 집에 가야지 왜 안 가는데요? 돈 주나요?"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닌 게 되는 적이 많다.

정의로운 충고는 때로 회사 입장에서는 그저 '매출에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정도로 받아들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법무팀이며, 회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이 내 일이고 사명이다.

그러나 연차가 더해질수록, 그리고 직급이 오를수록, 그 시절 말없이 야근에 동참했던 법무팀장님처럼 회사에 타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 씁쓸해진다.

이 이야기는 내가 정말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쨌든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여야 할) 권고사직이라는 퇴사의 안 좋은 역사니까.

그러나 이 일이 나에게 남긴 것은 회사를 고르는 눈을 준 것과, 야근으로 인한 가짜 안정감이 아닌, 철저히 내 노력으로 만들어낸 진짜 업적들로 안정감을 가지게 된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책임責任
1. 명사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2. 명사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制裁).
-표준국어사전 발췌-

꼰대세대한테 잘못 배운 젊꼰들이, 야근을 하며 '난 참 책임감 있는 사람이야' 라고 뿌듯해 하고, 윗사람에게 비비는 모습을 보면 불쌍하다.

잘못 배웠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긴 하다.

그러나 이 전제 하나는 참으로 기억하자.


야근을 책임감이라는 단어로 포장시키지 마라.

야근을 하기전 생각하라.  

정말 내 업무를 완료하고자 함인지, 아니면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한 의미 없는 체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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