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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Nov 21. 2024

열심히 일한 당신 '새로운 세계로' 떠나라

퇴사하는 날은 출국하는 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쏟아부은 후 맞이한 퇴사일.

6시까지 풀 근무 후 퇴근하듯 맞이하는 퇴사는 그래도 좀 낫지만, 오전근무만 마치고 적당히 오후 중반쯤 하는 퇴근 겸 퇴사는 그 기분이 참 묘하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그 중간 즈음, 어색함과 해방감의 그 중간 어디 즈음이랄까.

환한 대낮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좋지만도 않은 그런 기분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린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처음 겪는 일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마음들은 다음 입사일에 감당하기로 하고,

일단 퇴사일은 정신없이 어딘가로 떠나버리자!


새로 갈 회사와 퇴사일 사이에 일주일 정도를 벌어 놓고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해외여행을 추천하는 이유는 우리와 다른 문화, 다른 기후, 완전히 다른 장소를 통하여, 기존의 익숙했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도전할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인생의 한 부분 내가 머물었던 회사였다.

익숙한 것을 끊어버렸을 때 오는 허탈함은 해방감보다 더 크게 다가와 '내가 잘한 게 맞나' 하는 '멘붕'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럴 때 쉴 틈 없이 떠난 새로운 도시는 우리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건넨다.

우리가 겪은 그 회사도 하나의 낯선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고, 다시 새로운 도시가 얼마든지 기다리고 있다고, 걱정보다는 기대에 차 맞이하라는 메시지 말이다.


퇴사를 통보한 그날부터 퇴사일 또는 그다음 날 출국하는 일정의 비행기 표를 뒤져보자.

어디든 상관없다.

다음 회사의 입사일까지 여유가 있다면 말이다.



일주일의 여유가 있을 때 선택한 홍콩


우리의 주머니는 두둑하다. 퇴직금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내가 아무리 힘든 곳이라도 1년 이상 버텨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출발을 할 여행자금 마련을 위하여 말이다.

사실 홍콩을 선택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짧은 비행시간에 갈 수 있는 볼거리/먹거리가 풍부한 도시이기에 '한치도 생각할 틈을 갖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예전 삼성을 그만둘 때에는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그때 광안리를 바라보며 한없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하여 고민과 걱정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확실히 한국이라는 장소는 어디로 가든 그 편안함이 내 머릿속에 잡다한 걱정을 거둬내지 못했다.


그래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

야경이 숨 막히게 아름답다는 홍콩을 선택한 것이다.

4박 5일로 비행기 표 일정을 잡고, 세부 일정은 공란이다.

나는 철저한 J로 가계부를 한 달도 빼먹지 않고 쓸 정도의 JJJJ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떠난 퇴사 여행만큼은 아무 일정도 짜지 않았다. 이럴 때만큼이라도 인생을 내 계획대로만 조정하려는 이놈의 성격을 좀 내려놓고 릴랙스를 해 보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파워 J에게 무일정은 불안 그 자체였지만, 아침 조식시간에 하루하루 당일 일정을 즉흥적으로 짜 보니 생각이 꽤 단순해지고 잡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하루하루 타지에서 짜는 즉흥여행은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새로운 출발과 흡사한 형태일 테니 말이다.

여정의 중반즈음에 홍콩에서 배를 타고 마카오로 넘어갔다.

물론 아무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홍콩달러밖에 없어 택시도 타지 못했다. 호텔 셔틀버스들로만 관광지를 왔다 갔다 하다가 들른 베네시안 호텔을 보고 유럽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직 가보지 못한 유럽에 대한 동경.

항공과 대학시절, 발권 시간에 파리 샤를드골공항 코드 CDG를 전산에 입력하며 가상 발권을 했던 그 기억을 떠올려냈다. 무려 20년 전인 그 당시의 나는 20년 뒤 파리 에펠탑을 마카오에서 모형으로 보고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결국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세상은 여전히 너무 많은 것이다. 

그렇게 퇴사와 이직에 대한 마음을 자연스레 대입시켰다. 

용기 있게 기존의 내 세계와 작별한 것에 대한 뿌듯함과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더 이상 새로운 출발이 두렵거나 걱정되지 않았다.


물론 이런 깨달음의 대가로 얻은 건 마카오에서 미아가 된 일이었다.

홍콩으로 돌아오는 페리터미널을 착각해 정 반대편으로 가 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제대로 된 페리터미널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예약한 배는 떠나고 말았다. 다행히 바로 다음 배를 타고 홍콩으로 돌아와 즉흥여행의 긴장감 넘치는 해프닝을 마쳤다.

웃기는 사실은 그렇게 조금 늦게 홍콩으로 돌아왔을 때, 호텔이 있던 침사추이에 발을 딛는 순간, '휴 집에 왔다'라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던 것이다. 

며칠이나 되었다고 여행지에서 잠시 머무는 숙소조차 집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어버린 건지 우습다.

참 쉽게 익숙해져 버린 내 모습에 왠지 안심이 된다.


그렇다.

우리는 어디든 머물 수 있고, 어디에서든 익숙 해 질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 대한 걱정은 나도 모르는 사이 익숙해진 홍콩처럼 사르르 사라져 버렸다.



이주일의 여유가 있을 때 드디어 유럽


사실 우리는 그렇다. 직장생활을 하며, 일주일 이상 연차를 내는 일은 쉽지 않다.

황금연휴에 또는 퐁당퐁당 휴일에 며칠 이어 박은 연차들은 해외여행을 떠나기에는 너무 성수기라 비용의 부담이 컸다.

특히 2주 정도의 장기 여행은 신혼여행을 제외하고는 직장인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러니 지금이 기회이다.

이번 이직은 새로 갈 회사에서 여유 있게 입사일정을 잡아 주었다.

유럽 패키지 상품가격이 무려 400만 원에 가까웠지만, 시간은 돈보다 귀하니 8박 10일 서유럽 일정을 덜컥 잡아버렸다.

이번만큼은 자유일정을 포기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유럽이었기에 패키지여행으로 알차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파리같이 낭만적인 곳에 이 주일간 죽치고 계획 없이 머무는 자유일정도 너무 좋았을 것 같다.

아쉬움이 조금 남긴 하지만 그런 여유 넘치는 자유일정은 다음번으로 미뤘다. 

그렇게 마주한 에펠탑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불과 몇일 전까지만 해도 계약서류를 검토하였고, 소장을 썼던 나지만, 지금 만큼은 지구 반대편에서 말 그대로 투어회사 깃발만 쫓아다니는 관광객이다.

무언가 리드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이런 느낌이라니.


난 몇십 년간 TV와, 여행 책자에서나 봐 왔던 비현실적인 파리의 풍경을 그저 온전히 감상만 하면 된다는 것.

그저 내가 지금 이곳에 서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하고 감사했다.


건축물뿐 아니라 유럽 곳곳 특히 스위스에서 받은 자연이 주는 웅장한 느낌은 더 경이로웠다.

자연을 별로 즐기지 않는 여행스타일을 가진 나 조차도 스위스의 압도적 풍경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윈도우 배경화면이 따로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일정 중 이탈리아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피사의 사탑, 콜로세움. 바티칸의 천지창조까지 눈이 황홀했다. 

그리고 유치하게도 나 역시 피사의 사탑을 한 손으로 미는 사진을 찍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손바닥을 펼쳐 들고 몇백 년 전의 건축물을 한 프레임에 담는다.

나는 몇 백 년 동안 삐뚤게 서있는 저 사탑보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한대모여 모두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에 더 흥미를 느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는 유일하게 패키지 일정에 끼지 않고 유유자적 산책을 해 보았다.

말 그대로 사랑의 도시였다. 아슬아슬 바닷물이 찰랑거리던 그곳의 풍경은 한참 동안이나 기억에 남았다.

산마르코 광장을 배회하며 카페 플로리안에서 흘러나왔던 첼로 연주가 배경음악이 되어 더 황홀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베네치아가 배경이 된 영화인 [투어리스트 - 주연 안젤리나졸리, 조니뎁]를 몇 번이나 돌려보았을 정도이다.  

나는 여행지의 과일가게를 엿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자라난 모양과, 색과 맛을 가진 각각의 과일들과, 무심한 듯 꽂아 둔 가격표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다.

나는 이곳을 떠나도 이 가게는 이곳에서 계속 저 가지각색의 예쁜 과일들이 매일 새롭게 더해질 것이다.


새로운 장소에서의 다른 것. 그리고 비슷한 것.

그리고 다른 각자의 삶 속에서 겪는 비슷한 삶의 양상.

몇백 년 전 누군가가 남긴 건축물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조화.

그리고 아직도 내가 모르는 가 보아야 할 장소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


해외여행이 가져다주는 묘미는 이런 것을 느끼는 것 아닐까. 

결국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세계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경험하기 위하여 일상을 끊어내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도 말이다.  



성장시키시는 하나님


앞선 화에서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지금 이 회사에 왜 있는지에 대하여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을 때, 결국 모든 것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께서 언젠가 내가 필요할 부분에 대하여 미리 단련시키고 계셨다는 것 말이다.


퇴사와 이직의 텀에 새로운 도시를 경험하고 인간이 지어낸 위대한 건축물들도 보았다.

그러나 거대한 대 자연 앞에서 역시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에 대한 경이로움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자꾸만 우리는 퇴사가 일종의 실패라고 은연중에 인정한다. 버티지 못했다고 말이다.  

때로는 업무나 환경이 버티기 힘들어서 퇴사하였고,

때로는 계약직이라 기간만료로 퇴사하였고,

어이없게 권고사직을 당하여 퇴사하였고,

결국 이어가지 못하고, 견뎌내지 못한 실패의 한 종류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도 유익하게 하신다.

그 모든 퇴사의 험난하고 어색하고 불편한 실패처럼 보이는 과정들을 통해 우리를 성장시키시려는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고개를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퇴근길 지하철 창밖으로 스치는 먼 산을 바라볼 때면, 이 찬양의 멜로디가 떠오른다. 내가 현재 어느 위치에 있든,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되든, 그 모든 것은 계산하고 있는 내가 한 일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


낯선 여행지에서도 안전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

그리고 그 여행을 통해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주신 하나님께 오늘도 감사드리며 새로운 곳에서의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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