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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Nov 07. 2024

아름다운 이별

입사보다 중요한 퇴사 예절

이번에 이직 한 회사는 대기업의 특징을 품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대기업 퇴사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문화가 동시에 퓨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나의 이직의 경험들로 데이터화하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회사를 많이 겪어봤어도, 역시 난 아직 멀었다.

이번에도 적응하려면 시간 꽤나 걸릴 것이다.

이렇게 업무적으로, 감정적으로, 체력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많이 들어가는 이직을 자주 하다 보니 사직서를 내는 거나, 면접을 보는 것보다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그 처음이 제일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의 시작만큼이나 어렵고 중요한 건 사실 떠나는 회사에서의 마지막 정리이다.



퇴사의 다양한 유형


퇴사유형은 다양하다.


- 연락을 끊고 나오지 않는 잠수형 -> 보통 첫 출근 다음날 발생하며, 마치 내일도 올 것처럼 밝게 인사하고 퇴근하지만, 자리에 아무 소지품도 남겨놓지 않았을 때 예측이 가능하다.
- 자신이 만든 모든 업적을 지우고 나가는 포맷형 -> 퇴사 예정자라 업무도 없을 텐데, 자리에서 뭐 저렇게 진지하게 하고 있지? 그렇다. 구석구석 영혼까지 다 지우고 있는 것이다.
- 인수인계 할 틈 없이 나가버리는 빠른 도망형
- 그동안 쌓인 거 다 터뜨리고 나가는 화산폭발형-> 남은 자들은 퇴사자가 뿌린 재를 뒤집어쓰게 된다.
-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고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떠난다는 짤던짐형


훨씬 다양했지만, 생각나는 것만 이 정도이다.


우리는 처음 시작만큼 마지막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려워한다.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만큼이나 깔끔하기 어려운 무언의 뻘쭘함이 있다. 이미 퇴사를 통보했다면, 책상에 앉아있기가 불편하기도 하다. 그건 마치 적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느낌과 비슷하다.

그러나 사람의 인상은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하는지로 결정되기에, 우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만 한다.



예의를 지키자


세상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예의 있게 퇴사하는 유형을 별로 보지 못했다.


법대를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1년 동안 했었다.

여기저기 지원한 모든 회사에서 떨어지자, 결국 마음이 급해 원하지 않는 곳을 지원했다.

그곳을 붙고 나서 첫날 출근하자마자 깨달았다. 난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급하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는데, 편입해서 전공까지 바꿔가며 노력했는데'

이미 점심시간 이후부터 내일 나오지 않을 거라고 결심이 섰지만, 도통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첫째 날을 보내고 다음날 문자로 퇴사를 통보할까 생각도 했지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2시쯤 상사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하고 싶은 업무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고. 첫날 이런 말씀드려 죄송하다고. 한 것도 없으니 오늘 하루치 임금은 받지 않겠다고.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고는 6시까지 자리에 앉아있다가, 정상 퇴근시간이 되었을 때 사무실에 있는 한 분 한 분께 따로 인사를 드리며 죄송하다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은 나에게 행운을 빈다며, 이렇게 예의 바르게 나가는 분은 처음 봤다고, 나중에 다른 업무 포지션이 나게 된다면 꼭 부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이후 난 H그룹에 원하는 직무로 입사해 경력을 쌓았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사람인 어플에 이력서 열람 알림이 떴다. 지원한 곳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력서를 열람해 본 회사명이 낯익었다. 바로 내가 하루 출근했던 그곳이었다. 원하는 곳에 잘 다니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함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원하는 포지션이 오픈되어 나를 생각해 낸 것일까.

중요한 건, 내 인상이 그들에게 좋게 남았다는 건 확실하다.


예의 바르게 퇴사하는 것.

너무 당연하지만 생각보다 어렵다.

통상적으로는 퇴사를 통보 후 약 2주 정도 업무를 정리하고 대무자를 채용하는 부분을 돕고 인수인계에 힘써야 한다. 기왕이면 업무가 많이 없을 시기에 이직하는 것이(타이밍이 맞는다면) 회사도 퇴사자도 부담이 없다.

이직할 회사도 2주간의 말미를 주는 것은 관례로 생각하는 편이다. 정말 특수하게 급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요지는 떠날 회사에 예의껏 마무리를 아름답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떠난 뒤 남는 것


마무리해야 할 것은 업무만이 아니다. 나의 상사 그리고 동료의 시원섭섭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그들도 나의 미래를 응원해 준다면 보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쉬움이 클 것이다.


회사는 사람으로 이루어졌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결국 우리의 헤어짐은 마지막이 아닐 수 있다. 동종 업계로의 이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동시대를 살며 비슷한 직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는 한정되어 있고,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더라도 반가울 수 있도록 그들에게 피해가 갈 행동은 하지 말자.

하기 싫었던 일을 쌓아뒀다가 퇴사할 때 동료에게 폭탄으로 던진다던지, 불만이나 이간질을 폭로한다던지 그런 태도는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이다. 그 침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

내가 나가고 난 다음날, 동료들이 내 빈자리를 그리워하도록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한다.


진부하지만 공중화장실에 붙은 단골 메모가 퇴사의 경우에도 딱이기에 강조해 본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었던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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