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으로 얻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내 사람들
서른의 중반쯤 되었을 때 난 합정역에 있는 한 IT회사를 다녔다. 합정에서 홍대까지 잇는 그 길을 데이트 때 참 자주 걸었더랬다. 그래서인지 회사가 합정역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냥 좋았던 것 같다.
퇴근 후 친구들을 부르기도 하고 맛집도 다니며 그 장소에서 주는 대학가의 젊음을 간접적으로 누렸다.
그러나 동시에 난 그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치도 좋았고, 이미 친구가 되어버린 동료들도 좋았다. 심지어 대표님과 이사님들도 푸근한 동네 아저씨처럼 느껴질 정도로 좋았다.
그러나 페이가 너무 적었다.
일을 왜 하는가?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서다. 다른 부수적인 요소들을 제외하더라도 일을 하는 궁극적 목적은 돈이다. 다른 모든 요소가 좋았지만 그 페이로는 비전이 없을 것 같았다.
나의 직장 생활 중 가장 오래 다녔던 회사였다. 마지막 전사 메일 첫마디에 난 이렇게 적었다.
“벌써 합정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가을이네요.”
그렇게 정들었던 회사와 이별했다.
다음 회사는 한남동이었다.
연봉협상은 원하는 대로 되었지만, 문제는 거리였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버스를 타고 내려서도 걸어야 했다. 다소 복잡하게 갔지만 시차 출퇴근제도로 출퇴근에 부담이 없었다. 9시 12분에 회사에 도착했다면 퇴근은 6시 12분에 하면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1분도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니!
대부분 눈치 보지 않고, 본인의 출근시간에 맞춰 퇴근했다.
힙한 문화만큼 직원들의 평균연령은 낮았다.
다소 밝은 색의 염색을 한 직원과, 충격적인 레게 머리의 남자 직원까지 다양했다. 다가가기 힘든 비주얼에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직을 할 때마다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힘들었던 나는 이번만큼은 이들에게 절대 정을 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밥도 가끔 따로 먹고, 커피타임을 가질 때에도 크게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어린 친구들이라 생각했고, 별로 기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또 2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동료들도 결국 내가 남은 평생 같이 갈 진짜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 이후 이직을 할 때마다 나는 같은 다짐을 했고, 똑같이 실패했다.
그렇게 눈덩이처럼 내 사람들은 늘어갔다.
얼마 전 나의 오래전 팀장님께 SOS를 친적이 있었다.
갑자기 회사에서 해본 적 없는 업무를 받았는데, 팀장님이 그 업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지인이 있다고 해서였다. 팀장님께 그 지인분의 연락처를 받았다.
다짜고짜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무언가를 묻자니 이렇게 뻔뻔스러울 수 없었다.
그러나 민망한 마음은 잠깐이고, 조여 오는 회사에 빨리 대응하고 싶었다.
그 지인분께 전화를 드리고 궁금한 것을 다 여쭤보고 나서, 너무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재차 인사했다.
그분은 괜찮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닙니다~ 유팀장 친구분이라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
팀장님은 그 지인분께 나를 "친구"라고 소개했나 보다.
감히 나에게는 스승 같은 사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된 것이다.
이직만 여섯 번째인 지금 생각해 보니 친구라 칭하는 지인들은 대부분 지난 직장동료들이다.
하루종일 같은 사무실에서 고군분투하며 어떻게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직을 하며 좋은 위치를 얻거나, 좋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인연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이직을 통해 얻은 가장 귀한 것은 돈도 경력도 위치도 아니었다.
평생을 같이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친구를 얻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