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아 Oct 17. 2024

나는 변호사가 되지 않기로 했다.

비변호사 법무팀 팀장의 결심

그렇다. 사실 로스쿨에 들어갈 돈도, 시간도, 실력도 없다.

변호사가 되지 "않겠다"가 아니라 "못한다"가 맞는 말일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오늘 내 적성과 꿈의 괴리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법대를 나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왜 사시 안 보셨어요?", "왜 변호사 도전 안 해 보셨어요?"이다.

일단, 사법고시는 이미 내가 법학과에 재직중일 당시 폐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고, 졸업 후 몇 년 안에 폐지되었다. 그 몇 년을 내 중요한 취업의 골든타임에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왜 로스쿨에 가지 않았냐.

로스쿨 입학시험은 LEET를 치러야 하는데, 이 또한 법학문제와 전혀 상관없는 적성평가와 비슷한 시험이다. 과탑이었던 내 법학 성적으로 전혀 들어갈 수 없는 무관한 시험이고, 준비만 1-2년 걸린다.

결국 난 졸업 후 취업을 택했다.

그 당시 난 막연히 기업에 속해 월급쟁이로 법을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두리뭉실해 보이지만, 정확히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몰랐던 것 같다.



졸업 후 나는 대기업 송무팀에 입사했다.


2년 전문계약직이었고 페이가 좋았다. 담당하는 법원이 생겼고, 수백 건의 소송건을 관리했다.

하루에 몇십 개의 소장을 밀어 넣었고, 그렇게 홀딩된 소송 건들은 종결될 때까지 계속하여 숙제를 쏟아냈다.

단순 주소보정을 해야 한다거나, 소송대리위임장을 제출해야 한다거나, 서면을 써야 했다.

사실 일은 너무 재미있었고, 적성에 맞았다. 다소 단순한 업무가 반복되긴 했으나, 그 안에서 나름 내가 다룰 수 있는 가능한 일들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서면을 완벽하게 쓴다거나, 변론을 완벽하게 해 낸다거나, 그렇게 내 노력이 소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때 난 희열을 느꼈다.

그때 알았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건 좀 더 넓게 법을 접하는 일이라는 걸.

그게 변호사일까 생각했다. 잘 모르겠다.



연봉과 맞바꾼 기업법무


2년 계약 종료시점이 다가오고 난 이직을 준비했다. 비슷한 연봉과 비슷한 업무로 이직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았다. 그러나 만약 다시 또 다른 대기업의 송무를 하게 된다면, 영원히 그 일만 하게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게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소송의 과정과 절차를 이행하는 일이 아닌, 좀 더 법을 만지는 업무가 하고 싶었다. 결국 난 무려 연봉을 1000만 원이나 깎으면서까지 일반 중견기업의 법무팀으로 이직했다.

다들 잘못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에 일부 동의한다. 그때 깎은 연봉을 다시 회복하는데 거의 8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연봉과 커리어를 맞바꾸었을 것이다.


기업법무 업무는 송무만 했던 이전의 업무보다 더 광범위하고 재밌었다.

회사의 예정 사업들이 합법적인지 관련법령을 검토하느라 팀장님과 몇 날 며칠 고민하며 온갖 법령을 다 뒤졌던 일, 타 부서 요청 계약서를 검토하며 오류점을 찾아내었던 일, 법령이 개정될 때마다 회사에 영향을 끼치게 될 부분을 공고하는 일.

어려웠지만 끊임없이 법을 공부하면서, 회사에 맞게 적용시키기 위한 지침을 만들어 내는 일까지. 송무만 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법이라는 공식에 맞춰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 해석해 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연봉을 희생하며 배운 법무는 그만큼 값진 경험이었다.



결국 라이선스인가.


그러나 법무로 커리어를 쌓을수록 실력이 늘어감과 동시에 라이선스에 대한 갈망은 계속 됐다.

법무팀 내에 변호사와 비변호사가 함께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팀장은 경력에 따라 정해지지만 말이다.

그러나 질의회신서를 쓴다거나 소송대리를 할 때에도 확실히 변호사 라이선스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결국 라이선스를 따지 못했다는 사실이 끝까지 내 발목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의 팀장님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시며 미국변호사를 준비하셨다. 팀 내에 다른 과장님도 로스쿨로 진학하며 회사를 관두셨다.

법무로 커리어를 쌓을수록 결국 라이선스를 따야 할 필요성을 느끼긴 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능력


회사 내 소송을 메이저급 법무법인에 위임하고 변호사님들과 미팅을 가질 때였다.

어느 순간 그분들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그렇게 말씀을 잘하실 수가 없었다.

말하는 것, 글 쓰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던 나는 역시 변호사 라이선스를 따는 것이 내 최종 목표인 줄 알았다.


좀 더 작은 회사로 이직한 후 담당 법무법인은 변호사님이 두 분 계신 작은 곳이었다.

1인 법무팀이었던 나는 회사 내 이슈 거리들을 질의로 정리하여 법무법인에 올리곤 했는데, 문제는 이런 절차를 무시하는 우리 이사님이었다.

이사님은 법무법인과의 계약 시 책정된 질의 시간들을 모두 무시한 채, 아무 때나 이상한 질문을 변호사님께 하시곤 했다. 가끔 너무 무식한 태도에 내 얼굴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변호사님은 묵묵히 사람 좋은 얼굴로 다 들어주시며, 질문자의 수준에 맞추어 답변도 쉽게 해 주셨다. 법적으로 정말 가치 없는 질문을 들으러 회사에 발걸음 하셨을 바쁜 변호사님에게 난 언제나 고개 숙여 사과만 했다. 그때 변호사님은 껄껄 웃으시며, 더 한경우도 많다며, 이 정도는 전혀 실례도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가끔 회사에 있다 보면, 주변 지인들이 전화로 법률 상담을 요청해 올 때가 있다.

난 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법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의의 아이콘이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앞장서 도와주었다.

그런데, 1시간 동안 전화기에 대고 법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계속하는 지인을 보며, 정말이지 난 도망가고 싶었다. 적당히 말을 끊고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난 사람 좋은 표정으로 껄껄 웃으시던 그 변호사님 얼굴이 문득 생각났다.

그리고 난 그때 깨달았다.

변호사는 말을 잘하는 직업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들어주어야 하는 직업이었던 것이다.

의뢰인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도 듣다 보면 의미 있는 단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난 그것을 끝까지 들을 끈기도 참을성도 없었던 것이다. 난 변호사에게 꼭 필요한 그 능력이 없었다.

그때 난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 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신해철 님과 크래쉬의 노래처럼,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해 봐야 할 정말 중요한 메시지가 이거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살았던 게 맞다.

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되고, 간호대를 나와 간호사가 되고, 항공운항과를 나와 스튜어디스가 되는 것이 반드시 정답은 아닌 것이다.


친척 중에 간호대를 나와 메이저급 병원에서 간호사를 하다가 도저히 적성에 안 맞아 그만두고는 필라테스 강사가 된 언니가 있다. 필라테스 강사와 간호학 학위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지만, 얼마 전 신체의 각 부분을 의학적인 설명과 함께 필라테스 자세가 주는 효과에 대한 책을 냈다.

언니는 자신이 배운 기술을 정형화된 정답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다른 일에 접목시켜 더 확장된 커리어를 가지게 된 것이다.


세상이 만든 공식에 따를 필요는 없다. 세상이 만든 정형화된 대답이 정답은 아니다. 직업의 종류는 많고, 내가 정말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만 고민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정말 어렵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남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모르는 게 정말 아이러니하지만, 우린 그 답을 찾아내야만 한다. 어쩌면 이 고민은 수세기 전 헤르만헤세가 데미안을 통하여 이미 제시한 과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내 안에서 답을 찾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어쩌면 난 비변호사 법무팀 팀장으로서 영원히 라이선스를 갈망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소지하고 있어야 업무에 더 유용한 것은 확실하니까.

그러나 난 내가 변호사가 될 그릇이 못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것은 내 꿈이 아니다.

앞으로도 난 지금의 커리어에서 더 발전시킬 무엇인가를 계속하여 찾아다닐 것이다.


40이 다가오는 나도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아직도 너무 궁금하다.

그러니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가 그 대답을 몰라 절망할 필요는 없다.

모르는 게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2-30대 때의 경험들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한 일종의 모험이다.

그러니 그 모험의 불확실함과 불안함은 걱정할게 아니라 즐겨내야 한다.


우리의 목적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깨닫는 것이 먼저다.

내 우주인 알껍질을 먼저 깨야 한다는 막스 데미안의 말처럼 말이다.





이전 10화 이상한 나라의 지아님_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