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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Oct 10. 2024

이상한 나라의 지아님_2

스타트업 생태계 파해치기 2탄

스타트업의 생태계란 정말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같은 느낌이다.

다른 행성에 발을 디딘 지구인은 적응을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점점 스며들어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물론 스타트업의 생태계가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의 좋은 것들은 이어받았어야 했는데, 좋은 것들 조차 과감히 버려버린 것도 있다.

하긴 이미 나 같은 사람이 "기성회사의 좋은 것들"이라고 표현해 봤자, 그들에게는 꼰대의 잔소리로밖에 안 들릴 것이다. 이쯤 되면 나도 한발 떨어져 조금은 객관적으로 회사라는 단체에서 꼭 필요한 절차들이 어떤 것이고, 어떤 것이 불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품의서, 기안서, 보고서가 뭐임?


기안서, 품의서, 보고서만 쓰다가 하루를 날려본 적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에서는 이러한 문서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 일을 위한 일
- 생략 가능한 절차

물론 나도 보고서나, 품의서를 쓰는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할 시간에 계약서를 하나라도 더 검토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싫고 귀찮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묵묵히 해왔다.

사실 이러한 보고문서들을 써야 하는 목적은 두 가지인데

1. 윗사람이 해당 부서에서 무슨 중요한 결정을 하는지 궁금해하고 관여하고 싶어 함.
-> 이 부분에서 결재라인 기싸움도 존재한다. 안 껴주면 서운해하는 바지 결재자들이 존재한다.
2. 기안을 작성하는 나는 책임을 면하게 됨.
-> 결제자가 해당 결정의 모든 책임을 짐.

이 두 가지 기능은 보고 문서들이 존재하는 목적이자, 결재자와 상신자를 상부상조하는 관계로 만들어주는데, 여기서 핵심은 바로 "책임소재"이다.

결재자는 자리가 자리인 만큼 회사 내부의 중요한 결정에 대하여 관여하고 싶어 하고, 모든 내용을 알길 원해한다. 그리고 상신자는 이미 중요 안건에 대한 보고를 마쳤고, 결재 도장을 받은 만큼 그 결정의 책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문제가 터지면 책임을 담당자에게 미루는 나쁜 결재자들도 다수 존재한다)

이런 상부상조의 문서이기에 다소 불편하더라도, 뭔가 서면의 형태로 남기는 것이 문책을 면하기 위한 과정이기에 귀찮아도 그냥 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타트업의 생태계에서 이런 보고 절차는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구두로 또는 메신저정도로만 언급하고 끝난다.

이러한 보고절차의 생략은 일의 진행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경쟁사회에서 보다 빨리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책임은 모두 내가 져야 한다. 그리고, 확실히 경험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누군가가 봐주지 않은 결정이라 그런지 가끔은 시간낭비/돈낭비 프로젝트로 전락하는 경우들도 많다.

아무래도 쇼츠가 뜨는 이 시대에는 이런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보고 절차를 생략하고 빠른 태세 전환을 하는 것이 더 기회비용적으로 이득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내 의견은 사실 뭐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기안서, 품의서, 보고서 안 써서 너무 편하고 홀가분하다!!!

이다.

익숙해져 버려서 큰일이다. (이제 보고서 쓰는 곳으로 이직하면 못 다닐 것 같다)

그래도 장점은 보고서를 쓸 때 책임을 미루던 소극적 태도에서, 내 결정에 내가 책임을 질 준비를 하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최상의 컨디션에서 최고의 아이디어가 나온다


SNL에서 요즘 MZ들의 사회생활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일하며 툭툭 치지 않으면 옆사람 말을 안 듣는 모습의 콩트를 보았다.

스타트업 사무실의 풍경에 이 부분은 확실히 기성세대와 차이가 있긴 하다.

일단 대부분 귀에 뭔가를 꽂고 있고, 아무도 그에 대하여 뭐라 하지 않는다.


더 생경한 풍경으로는

- 일단 직원들 중 절반이 없다. 어딘가에 가서 일하고 있거나, 재택근무이거나 그렇다.
- 블루투스 스피커로 잔잔한 배경음악이나, 또는 시끄러운 최신가요를 틀어놓는다. (심지어 단체 메신저로 신청곡을 받는다)
- 그게 듣기 싫은 사람들은 각자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듣거나, 음악을 듣는다.(이어폰 꽂고 일하다가 빵 터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컬투쇼를 듣고 있다)

이렇게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는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MZ세대는 소통할 때에 메신저로 하는 것이 암묵적 예의인 것 같다. 자리가 바로 앞자리여도 일어나서 육성으로 말하는 것보다, 메신저로 얘기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처음에 이 부분이 가장 이해가 안 가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바로 옆자리인데 그냥 의자 돌려서 얘기하면 되지 별얘기도 아닌걸 굳이 메신저로 보내놓고 왜 대답을 기다려야 하는 건지 당최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심지어 점심에 뭐 먹냐조차 말이다)

그런데 그들의 생태계를 파악하며 느낀 전체적인 공통적 이슈 하나는 결국 "개인에 대한 존중"이다.

지금 무슨 일에 집중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직원들에게 갑자기 다가와 말을 건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회사가 당연히 그런 거지. ’라고 생각하면. 역시 또 꼰대이다.

최대한 개인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건드리지 않는 것.

그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하여 음악을 듣는 것을 허용하는 것.

스타트업 회사들은 이것을 개인에 대한 존중이자 곧 일의 능률로 이어진다고 판단한다.



전통이라뇨. 악습이죠.


내가 예전에 다녔던 중견기업에서는 수습기간 3개월이 끝나면 팀원들에게 커피를 돌려야했다. 3개월 동안 감사했다고, 드디어 정직원으로서 일원이 되었다고. 기성회사의 사람들은 그걸 감사하게 받아 마시지도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왜 안 쏘냐는 반응까지 있었다.

우리 회사 전통이 원래 그래~ 수습기간 지나면 스타벅스 쏘는 게 전통이야~

전통일리가 없지 않은가. 스타트업에서는 이런 불필요한 겉치레들은 사라졌다.

밸런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 같은 모른 척 하기 난감한 날들도 기성 회사에서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거리였다. 신입 사원이 어떤 예쁜 초콜릿을 돌리는지 센스를 시험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쓸데없는 겉치레로부터 자유로워지니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심지어 아이를 데려오거나, 동물을 데려오는 것도 허용되었다.

아니, 회사 사무실에서 키우기까지 했다. 출근하자마자 예쁜 강아지나 고양이를 만나 인사를 건네는 하루는 정말 힐링 그 자체이다. 출근이 즐겁기까지 했다.


당연히 복장 또한 완전 자유이다.

시스루를 입던, 반바지를 입던 개인의 자유이다. 업무와 전혀 상관없다.

이 부분이 가장 적응되지 않았던 법무팀은 어느 정도 세미정장을 유지했지만, 이내 곧 적응하여, 재판이 있는 날 빼고는 자유롭게 청바지에 티를 입었다.

정장을 입어야 자세가 바로 나온다는 옛 말을 보기 좋게 무시하며, 자세는 바로 나올지 몰라도 아이디어는 안 나온다는 게 MZ피셜이다.



난 그 이후 직원이 30명 이내인 더 작은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이런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확실히 공통적인 것은, 스타트업들은 발 빠르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불필요한 절차들을 확실히 없애는 특징을 보인다는 것. 불필요한 겉치레를 하지 않는다는 것. 회식이나 워크숍 등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워라밸을 중시하고 개인 자체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기성기업들이 틀리고 스타트업이 맞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 스타트업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생리적 특징일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자신이 있는 행성이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행성 밖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어떤 곳이 자신에게 더 맞는 곳인지 꼭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나와 맞는 회사에 다닐 때 정말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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