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관은 작은 그 회사이다.
처음 사회로 나왔을 때 회사를 고르는 나의 기준은 사실상 네이밍이었다.
내가 회사를 고를 수준도 아니기에, 회사가 나를 골라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시절이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명함만 내밀면 누구나 아는 그런 곳에 들어가기만 하면 인생은 탄탄대로일 줄 알았다.
나의 첫 직장 삼성생명은 그런 점에서는 그 기준에 부합했다. 심지어 사람들도 좋았다. 좋은 회사가 좋은 인사를 한다는 것이 항상 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였다. 수차례의 시험들로 검증된, 일정 수준 이상의 사람들로만 이루어져서 그런가.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삼성을 퇴사하고 나서부터 업무 스트레스보다 심하다는 사람스트레스가 뭔지 슬슬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 중에서 가장 뭐 같았던 상사는 누구였나요?"
"네?"
가장 최근 면접에서 들었던 질문이다. 이런 비속어 질문은 처음 받아보아 잠깐 당황하였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중소기업에 프리토크 하듯(심지어 개그까지 포함) 질문해 주셨던 이사님의 비속어 포함된 그 질문은 뭔가 정말 진정성 있는 대답을 내뱉고 싶게 만들었다.
'뭐 같다................ 흠..................'
그런데 정말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그 정도의 상사는 없었다.
언제나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 해 주시는 엄마 덕분인지, 정말 난 좋은 사람들만 만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포인트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다 좋은 사람이었다.라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마음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던 상사가 있었다. 그 당시 사원이었던 내 눈으로는 그분의 모든 언행이 다 가식 같았고, 위선적이여 보였다. 지나고 보니 그 자리의 무게감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주신 분들이었어요."
나의 미적지근한 대답에 이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아직 이상한 사람을 못 만나셨나 보네요. 껄껄껄"
희한하게도 이 이상한 수다 같은 면접에서 난 두 가지를 깨달았다.
- 아...! 여기에 그 "이상한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 그렇다 해도 이 이사님 밑이라면 그 "이상한 사람"을 욕하며 즐겁게 다닐 수 있을 것도 같다.
언제부턴가 회사를 결정하는 요소 중 네이밍, 사람, 근로조건 등으로 단순화되지 못하는 무슨 추상적인 포인트 같은 게 추가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그 포인트는 다른 정형화된 조건들보다 우선하여 그 회사를 결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면접관이 풍기는 그 회사의 분위기이다.
면접관의 언행, 태도, 질문, 복장에서 이 사람과 하루 반나절을 있으면 참 재밌게 일할 수 있겠다. 또는 뭐든 배울 수 있겠다. 또는 마음이 편안하다.라는 느낌이 드는 면접관들을 찾게 된다.
심지어 이런 분위기는 까칠한 척하는 면접관들에게서 느낄 때도 있는데, 사람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몸에 그 태도와 분위기가 묻어져 티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좋은 상사가 될 것 같은 면접관을 만났다면, 그 회사의 정형화된 조건들이 별로일지라도 나와 잘 맞는 곳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라, 면접관도 같이 느껴 합격으로 이어지기 쉽다. 결국 면접은 대화이며 대화는 상호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면접도 대화이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면접관이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장 힌트가 된다.
이 사람과 궁합이 맞을지 아닐지.
몇 년 전 집에서 가장 가까웠던 회사를 합격했음에도 거절했던 사례가 있다.
"법무로는 양이 적은데, 재무, 총무 이것저것 같이 업무가 주어질 수도 있어요. 저도 원래 다른 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법무로만 지원한거라, 죄송하지만 다른 분야의 업무까지는 어렵습니다."
"우리 회사는 공장이 있는 회사예요. 공장직원들이 파업이라도 한다면, 사무실 직원들이라도 다 레일에 뛰어들어야죠."
유일하게 싸우다시피 했던 면접이었다.
모든 분야의 일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그 팀장님에게 결국 나는
"집 앞이라 너무 오고 싶었는데, 아쉽네요."라고 말했고, 그분도 "법대 성적이 우수해서 좋았는데, 저도 아쉽네요"라고 말하며 서로 맞지 않음을 인정했다.
웃긴 건, 그래놓고 합격을 시켰다.
역시 난 가지 않았다.
이렇게 면접관 본인의 히스토리는 그 사람과 그리고 그 회사와 내 궁합을 알 수 있는 힌트가 된다.
다른 이유보다도 상사와 너무 맞지 않아서 이직을 고려한다면, 면접관을 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면접관의 구성원은 결국 나에게 업무를 지시할 사람도 포함되어 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대기업의 경우는 아닐 수 있다.)
많은 면접관들을 만나보았지만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는 면접관들이 있다.
면접을 다녀온 지 1-2주가 지났음에도 이상하게 그때 했던 대화들이 떠오른다거나, 면접관의 얼굴이나 말투가 떠오르는 경험말이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가깝거나 먼 지인들도 아닌, 그냥 스친 인연인데도 계속 생각날 때.
왠지 또 만날 것만 같은 생각에 피식 웃게 된다.
면접장소를 가는 길이 매일 가게 될 길인지, 오늘 한 번의 외출길인지 생각해 보았던 것처럼, 그 면접관의 얼굴도 자주 보게 될 얼굴인지 아닌지 생각해 볼만하다.
어찌 됐건, 일은 사람이랑 하는 것이다.
회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회사를 이루는 한 조각인 면접관을 유심히 관찰하라. 내 인생의 중요한 지인이 될 수도 있을 그 사람과의 앞날을 떠올려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