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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Oct 03. 2024

이상한 나라의 지아님

스타트업 생태계 파해치기 1탄

나의 스타트업 첫 경험은 서른네 살 때였다.

상장사 중견기업에 근무하다가 지속되는 야근과 반복적 보고서류들에 지쳐갈 무렵 나름 100명 이상의 스타트업 치고는 규모가 좀 있는 힙한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외식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하는 젊은 기업. 나이대는 대부분 20대 중반~ 30대 초반

가장 충격적인 건 그때 나이 순위 난 위에서 2등이었다.ㅠㅠ

그들이 보기엔 나는 그냥 꼰대. 옛날사람.

올드하고 낡은 기업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 스타트업 회사는 말 그대로 이상한 나라였다.

나는 그 이상한 나라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대학교 동아리 같은 곳.



생각보다 정말 수평적인 '님' 문화


일단 요즘 기성회사들에서 이 부분을 많이 따라 하는데, 비슷도 안 하니 '우리도 수평적이다!'라고 하지 말길.

말만 '님'이 아니다. 진짜로 개개인을 존중해 주는 게 느껴지는 '님'이다.

심지어 대표도 이름에 '님'을 붙여 불렀고, 단 한 번도 대표님이라고 부른 적 없었다.

처음엔 굉장히 어색하고 적응이 되지 않았으나, 그 호칭 때문인지 정말 편하게 의견을 주장할 수 있었다.

대리님, 과장님, 차장님 이런 호칭을 버리고 나니 한결 가벼워진 느낌.


그리고 이런 문화가 행동을 지배하는 것도 느꼈다.

예를 들어 입사 초, 점심 때 팀원들끼리 피자를 시켜 먹고 뒷정리를 할 때였다. 당연히 내가 최근 입사자이니 앞장서 치우려 했으나, 시니어(팀장급)가 "지아 님, 저 주세요." 라며 빼앗아가버렸다.

그 이후에도 워크숍 때 식사준비라던지 설거지 같은 막내가 해야 할 일도 연차, 직급 상관없이 서로 배려하며 돌아가며 했다.

스타트업 MZ직원들은 윗사람/아랫사람의 개념 없이, 모두 하나의 개인으로 존중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건 수직적 문화 속 예의라는 정의에 익숙한 나에게 굉장히 파격적이고, 비 전형적인 부분이었다.


진정한 예의는 직급이 아닌,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게 맞다. 

기성회사에서 가끔 상사에게 한소리를 들을 때

"아 저 사람 회사 안에서나 팀장이지, 밖에선 그냥 아저씨인데"

라고 생각해 본 적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 MZ직원들에게는 그게 회사 안이건 밖이건 동등하게 존중해야 할 개인으로 대한다.

다소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결국 내가 오래된 군대식 회사문화에 세뇌당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회식은 대학 과모임처럼, 워크숍은 대학 MT처럼


회식. 단어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난다.

자고로 회식이란 억지로 가는 술자리. 윗분들 비위 맞춰주고 술은 못 마셔도 술잔을 꼭 들고 있어야 하는 자리.

2차 노래방만은 제발 안 가길 기도하며, 집이 멀다는 핑계로 튀고 싶은 그런 행사.

그러나 스타트업에서 회식은 모두가 환호성을 지를 만큼 신나 했다.

거의 대부분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분위기를 보고, 처음엔 가식인 줄 알았다.

'와 얘네들 사회생활 좀 하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식자리에 가보니, 이들은 진심으로 그 자리를 즐기는 것이 아닌가.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 이거 진짜임???? ’


워크숍 또한 마찬가지.

워크숍이란 자고로...(라떼는) 우웩크샵.. 아닌가?

낮시간 동안 쓸데없는 보고성 발표들을 하며 의미 없는 박수를 친다거나,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는 강연을 듣는다거나 말이다. 사실 이 정도도 양반이고, 체육대회 같은 걸 하거나 협동심을 키워준다는 이상한 게임을 시키는 게 가장 최악이다. 거기에다가 밤엔 무조건 술. 토할 때까지 술 아닌가?


반면 스타트업의 워크숍은 ‘단체’에 집중하지 않고 ‘개인’에 집중하는 것 같다.

팀원 하나하나가 만족할 활동을 고르고, 장르도 참 다양하다. 도자기 만들기라던가, 명상수업 참여하기, 독도 다녀오기 등. 뭔가 버킷리스트 해내기에 가까운 느낌이다.

무조건 토 나오는 워크숍은 어디로 간 건지, 이래도 정말 아무한테도 안 혼나는 건지 진정 꼰대는 당황스럽다.



텅텅 빈 사무실. 모두 어디에서 일하는 걸까?


기성 회사들의 출근 후 사무실 모습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일단 모두 자리에 앉아 무언가 바쁜 척 모니터를 째려봄
-자리를 비운 시간이 길어지면 어디서 농땡이 피운다 생각함
-심지어 아침 단체 체조 시간 존재
-심지어 아침 단체 청소 시간 존재
-만약 자리가 비워져 있다면 그것은 단체 회의임

공감한다면, 당신도 꼰대 회사에 익숙한 것!

”아니 이게 당연한 거지 이거 말고 뭐 다른 이 세계가 존재함? “이라 물으시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 세계 회사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 “

무슨 소리냐면, 말 그대로다.

회사 내 책상에 앉아있을 필요 없고, 기분 내키는 대로 노트북을 들고 아무대서나 일한다.

회사 근처 카페일 수도 있고, 회사 로비 일 수도 있다.

급한 미팅이 생길 경우 달려올 수 있는 정도의 거리라면 오케이.

심지어 재택근무도 활발하게 허용된다.

다만 물리적 업무 요소가 없거나 미팅이 없는 날짜를 잘 피해서 활용한다.

텅텅 빈 사무실을 보고 다 농땡이 피운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두 최선의 컨디션을 유지할 환경을 찾아 원정 간 것뿐이다.




이 이상한 나라의 생태계가 라떼에겐 너무 파격적이라 대학교 동아리라고 비꼬았지만, 이상하게 겪을수록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효율적으로 업무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할 땐 확실하게 프로페셔널하고, 놀 땐 자유롭게 진심으로 즐기는 진국들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설명이 너무 길어져 한편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나머지는 후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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