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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레워홀러 Apr 09. 2020

특별했던 칠레 인구 조사의 날

서른 살에 떠난 칠레 워킹홀리데이13.인구조사


20대 초반 한창 꿈에 부풀어 있을 시절, 김수영 씨가 쓴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어더랬다. 그녀의 100가지가 넘는 버킷리스트 중에는 “해외에서 살아보기”가 있었는데, 20년을 넘게 한국에서 살아봤으니 그 기간만큼 한국 밖에서 살아보고 싶어 무작정 영국에서 CV를 몇 백장씩 돌리며 일을 구했다고 했다. 그걸 보고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늘 가슴 언저리에 여행 아닌 여행지에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여태껏 전부라고 생각했던 내 세상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사람들과 섞여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문화를 영위하며 살아내 보는 것, 생이 한 번뿐이라면 해 볼만 하지 않은가? 그래서 칠레로 떠나기 전 다시 오지 않을 이 기회를 그 꿈에 연결시키고자 무던히도 애썼고, 흔들리던 내 마음을 하루하루 붙잡았다. 






그렇게 귀중하게 얻은 칠레에서의 삶은 모든 게 궁금했고, 새로웠다. 같은 듯 너무나도 달랐던 지구 반대편 칠레는, 기대만큼 생소해서 좋았다. 그들의 삶 하나하나가 궁금했고, 하루라도 빨리 동화되고자 무던히도 노력했다. 요즘 유행 중인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나 봤던 한산한 거리모습과 무척 닮은 날 중 하나, 그 특별했던 칠레의 일상 "인구 조사의 날"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거리가 무척이나 한산했던 인구 조사의 날. 전 날부터 모든 상점들은 일찍 문을 닫고 당일 역시 하루종일 강제 휴일이었다. 지금 코로나의 거리와 무척이나 닮아 있던 그 날의 산티아고



칠레에서는 10년마다 1회 전체 인구조사를 실시한다. 구역별로 담당 조사관이 집마다 방문하여 약 20여 개의 질문을 직접 하는데, 나 같은 경우 조사관을 기다렸으나 만나지는 못 했다. 조사관은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알바로 운영되는 조사관 역량에 따라 다른 듯하다. 주로 이름, 성별, 직업 등 통상적인 조사의 성격이 강하며 이 하루를 위해 전 날 주류 판매와 공연, 행사, 스포츠 경기 등도 다 금지하는 범 국가적 차원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4월 20일에 실시했으니 다음 인구 조사의 날은 2027년이 되겠다.



<칠레 인구 특징>
1) 칠레 전체 인구 중 원주민이 극소수(4.6% 수준이며, 이중 86% 정도가 마푸체족이다)인 데다가 혼혈의 대륙답게 대부분 남유럽, 그중에서도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에서 온 이주자가 많다(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나 독일 국민들을 국가적으로 이민자들을 받기도 함) KOTRA 자료에는 백인이 29%, 메스티소가 65%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2) 재밌는 건 칠레에서 백인과 메스티소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칠레 통계청에서도 인디오만 구분하고 백인과 메스티소를 따로 구분하고 있지 않는데 사실상 백인과 메스티소의 구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3) 칠레의 거리에는 인디오와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칠레인은 원주민 인디오를 그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다수의 의견은 아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들의 피에 인디오의 피가 섞여있지만 자신들이 조상이 마뿌체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분명 정체성을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세대가 흐르면서 정체성이 계속 모호해져 버렸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백인이니 메스티소니 구분하는 것도 어쩌면 이들에게는 불필요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중요한 것! 조사원 방문 시 부재할 경우 벌금까지 문다고 하니, 이건 뭐 7,80년대를 연상케 한다. 티브이에서도 황금시간대에 CENSO관련된 광고방송을 하기도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10년 만에 한 번씩 한다고 하는데, 구글링 해보니 그건 아닌 듯하다. 여하튼 새로운 경험이라면 사죽을 못 쓰기에 짐짓 설레는 마음까지 안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항상 아침이면 북 치고 장구치고 노래 부르는 뒤편 사립학교가 무척이나 고요했는데, 드디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거리를 보니 일요일보다 더 한산하다. 오늘 민박집주인 누나랑 삼겹살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설마 했던 토투스(마트)며 모든 곳이 문을 닫았으며 그제야 하루 전 일찍 먹거리들을 사놨어야 함을 깨달았다. 
이 시기에 온 여행자는 더욱더 절망적일 것이다. 하필 이 날 와서 강제로 집에 있어야 한다니.. 콘차 이 토르 와인투어라도 있나 전화해보니 역시나 대답이 없다. 그래도 아르마스 광장은 보고 오시겠다며 혼자 나가셨는데 사진에서 느껴지는 만큼이나 공허하고 쓸쓸하다. 늘 사람이 북적이던 아르마스 광장마저 유령도시가 되어버렸으니. 10년에 한 번 있다는 특별한 날을 경험해서 더더욱 잊혀지지 않았던 인구 조사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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